“팬들을 외면한 우승은 의미가 없어요”

선수 시절 별명 ‘탱크’. 쉴 새 없는 돌파로 상대진영을 휘젓는 플레이스타일과 가꾸지 않았던 외모. 별명과 인상에서 ‘투박하다’, ‘딱딱하다’는 느낌을 줬을 수 있다.

하지만 선수 시절 매일같이 ‘훈련 일지’를 쓰며 ‘내가 감독이라면 이런 움직임을 요구할텐데’라고 생각하던 이 선수는 프로 생활을 하며 경희대학교 스포츠 경영대학원까지 마치고 박사까지 취득하는 보기드문 ‘박사 선수’가 되기도 했다.

10년 전 성남 일화 유니폼을 입고 탄천종합운동장을 누비던 이 선수는 10년 후 감독으로 성남FC 지휘봉을 잡은 지 한 시즌만에 2부리그만

2년째 있던 성남을 다시 K리그1(1부리그)으로 원상 복귀시켰다.

K리그 역사상 첫 승격 2회 감독의 타이틀을 단 남기일을 지난 20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모두가 ‘안될 것’이라던 성남, 자동승격까지

지난해 아쉬운 4위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성남에 박경훈 전 감독이 물러나고 남기일 감독이 지휘봉을 잡자 팬들은 지지를 보냈다.

성남에서 4년(2005~2008)을 뛰었던 ‘탱크’ 남기일 감독은 광주FC 감독으로 있던 2014년 광주의 승격을 이뤄낸 경험까지 갖춘 ‘성남에서 뛰어본 젊고 유능한 지도자’였기 때문.

그러나 시작은 암울했다. 김두현 등 핵심 선수들이 떠나고 시즌 시작과 동시에 자신을 성남에 데려온 전 대표이사의 사퇴, 국가대표까지 승선했던 김동준 골키퍼의 1년짜리 부상 등이 겹쳤다.

하지만 남기일 감독의 엄격한 지도 아래 개막 후 12경기 무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이어가자 주위에서 다들 ‘지금 잘해서 승격해야 한다’는 기대 섞인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한다.

“시즌 전만 해도 기대 안 하시던 분들이 생각보다 잘하니까 ‘더 잘해라’고 말하는데 상당히 부담되더군요. 도리어 유지하고 지키고 새로운걸 보여줘야 하는 1위를 달릴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라며 한시즌을 회상하는 남기일 감독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시즌 막판 아산 무궁화에게 1위를 내주며 2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경찰청 팀 아산이 내년부터 의경 선수 수급을 하지 않고 체육팀을 없애기로 하면서 뜻밖의 변화가 찾아왔다. 인터뷰가 있기 전날인 19일, 프로축구연맹은 아산 대신 2위팀 성남이 1위가 가져야 하는 K리그1 자동승격권을 이양받는다고 발표했다.

“아산의 존폐 위기는 같은 축구인으로서 안타까웠죠. 그래도 저희팀이 자동승격을 할지 플레이오프에 갈지 모를 일이라 참 초조했어요. 평소보다 인터넷 기사도 더 많이 찾아보게 되고 혹시 플레이오프를 가면 선수들 멘탈 관리와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어요. 승격 확정 후에 선수들과 간단히 술 한 잔하며 자축했어요. 경기장에서 팬들과 함께하진 못해서 확실히 흥은 덜 나더라고요.”

▶‘지도자’ 남기일은 어떤 스타일?

지도자의 유형을 나눌 때 많이들 ‘형님 리더십’, ‘친구 리더십’, ‘호랑이’ 등으로 표현한다. 일단 남기일 감독은 자신의 지도 스타일을 말하기 전 ‘구호’의 힘을 강조했다.

“제가 광주에서 감독대행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외치는 구호가 바로 ‘우리는 하나다’라는 거예요. 항상 이 구호를 외치는데 선수들이 처음엔 어색하고 뻔한 구호라 민망해요. 하지만 계속 외치다 보면 끈끈한 힘이 생겨요. 평범한 구호일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임을 인지하면 힘들 때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이 팀을 강하게 만들어요. 광주, 성남을 거치며 선수들이 ‘하나’임을 믿을 때 바뀌는 걸 계속 봤어요. 감독을 할 때까지 이 구호를 계속 쓸 겁니다.”

남기일 감독은 단호하게 자신은 ‘형님 리더십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친하면 좋을 땐 좋지만 고비가 왔을 때 싫은 소리 하기 힘들어요. 선수도 너무 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카리스마를 보여줄 때는 보여줘야 하고 부드럽게 풀어줄 필요가 있을 때는 미팅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고 봅니다. 선수들이 ‘너무 미팅이 많다’고 할 정도로 최대한 미팅을 합니다. 정신적인 부분, 경기 복기 등으로 성장을 독려합니다.”

▶훈련일지 쓰며 감독 꿈꾸던 선수, 친정팀 명문 회귀를 꿈꾸다

현역시절 별명인 ‘탱크’를 얘기하자 남 감독은 “동료와 코칭스태프 사이에서는 남기일이 ‘공 좀 찬다’고 할 정도로 제가 이해도 높은 축구를 하던 선수였는데…”라며 살짝 별명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내 “아무래도 제가 수비를 못해서 거칠게 부딪치다보니 그런 별명이 생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선수 남기일은 니폼니시, 김학범 등 좋은 지도자 밑에서 배우며 항상 훈련일지를 쓰며 공부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선수로 뛰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지도자가 심리적으로 선수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는지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껴왔다고.

“선수 때는 오직 경기만 생각했죠. 지도자가 된 후 아내가 외향적인 부분을 모두 관리해줘요. 덕분에 ‘선수 때보다 동안이다’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더라고요. 선수시절에 감독님들이 멋지게 정장 입고 이미지가 좋으면 더 선망했던 기억이 있죠. 저도 제가 이렇게 감독이 될지 몰랐지만 그동안 생각하던 걸 실현해내고 있어요.”

첫 지휘봉을 잡은 광주에서도 승격, 두 번째 팀인 성남에서도 승격을 이루며 사상 첫 2회 승격 감독이 된 남기일은 최근 한국축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와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는 감독으로 축구계에서 호평이 가득하다.

남 감독은 “제가 원하는 건 구단과 팬이 함께 가는 성남입니다. 성남 일화시절에는 너무 성적만 쫓아서 팬을 외면시 했던 기억이 있는데 시민구단은 결국 팬과 함께입니다. 정말 성남 탄천경기장이 가득찬 모습을 보고 싶어요. 전북, 수원, 서울 등 명문구단도 팬문화와 함께 가기에 명문이죠. 성남도 K리그 최다우승(7회)의 명문 아닙니까? 다시 명문구단으로서 그리고 시민구단답게 K리그1에서 빛나 봐야죠”라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성남=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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