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아시안컵 ‘벤투호 실체’ 드러날 것

2018년, 벤투호의 항해는 대성공이었다.

출범 이후 6경기를 치르면서 결과도, 내용도 모두 잡았다. 세계적인 강팀들과 대등하게 맞섰고, 한 수 아래의 팀은 확실하게 제압했다. 덕분에 잃었던 팬심도 되찾았다. 러시아 월드컵을 전후로 드리웠던 먹구름도 완전히 걷혔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이제 겨우 시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긴데, 이 과정에서 ‘지속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슈틸리케호 역시 초반 2년만큼은 순항을 거듭하다 단숨에 침몰했다. 벤투호, 그리고 한국축구가 잊어서는 안 되는 뼈아픈 과거이기도 하다.

더할 나위 없었던 벤투호의 2018년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 감독은 지난 8월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포르투갈을 이끌고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12 4강에 올랐던 경력으로 주목받았다.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은 “카리스마가 있고 선수단을 장악하는 스타일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진정성을 나타냈던 감독”이라고 설명했다.

4명의 코치진과 함께 ‘사단’을 이룬 벤투 감독은 빠르게 대표팀 재정비에 나섰다. 4-2-3-1 전형을 바탕으로 월드컵 멤버에 아시안게임 멤버를 더하는 형식으로 명단을 구성했다. 과감한 세대교체보다는 기존 선수들을 주축으로 뼈대를 갖추고, 경기를 지배하고 세밀하게 공격을 전개하는 색채를 입히는데 집중했다.

첫 출항은 지난 9월 코스타리카전이었다. 5년 만의 A매치 매진 속에 벤투호는 코스타리카를 2-0으로 완파했다. 이어 당시 피파랭킹 12위였던 칠레와도 무승부를 거두는 저력까지 발휘했다. 김학범호가 불을 지핀 축구열기를 벤투호가 이어받았다.

지난달에는 피파랭킹 5위 우루과이를 꺾는 대파란을 일으켰다. 한국축구가 우루과이를 꺾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파나마, 호주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주춤했지만, 우즈베키스탄을 4-0으로 대파하면서 2018년 항해를 마쳤다.

부임 후 6경기 연속 무패(3승3무)는 지난 2004년 본프레레호가 기록한 5경기 연속 무패(3승2무)를 넘어선 신기록이었다. 성적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경기 내용 면에서도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했다.

잊어서는 안 될 슈틸리케호의 ‘초중반 행보’

더할 나위 없는 출발이었다. 특히 초반부터 흔들리거나 방황하지 않고 가야할 방향을 잘 잡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벤투 감독 역시도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나 앞선 행보에 안주하거나 방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어디까지나 평가전이었고, 또 만원 관중 속에 안방에서 열린 A매치가 대부분이었다는 점 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벤투호의 민낯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전반전 슈팅수에서 1-10으로 크게 밀렸던 호주 원정 경기력을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문득 떠오르는 대표팀도 있다. ‘갓(God;신)’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로 부임 초반 순항을 거듭했던 슈틸리케호다.

벤투호만큼의 시작은 아니었다. 울리 슈틸리케(65·독일) 감독 부임 초반 파라과이, 요르단을 꺾었지만 코스타리카와 이란에는 졌다.

대신 이어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뒤, 이후 A매치 15경기 연속 무패(12승3무)까지 달렸다. 2015년 이후 A매치 22경기 성적은 18승3무1패. 이른바 ‘갓틸리케’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다.

스페인을 상대로 1-6으로 참패했던 경기는 그래서 더 충격이 컸다. 그동안 한 수 아래의 팀들을 상대로 쌓아온 기록들은 출범 이후 처음 만났던 세계적인 팀 앞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슈틸리케호, 그리고 한국축구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슈틸리케호는 좀처럼 초반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조차 중국, 카타르에 충격패를 당하는 등 부침만 겪었다. 결국 슈틸리케호는 최종예선을 다 치르지도 못한 채 침몰했다. 초중반 행보에 대한 찬사 역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중요한 건 지속성, 아시안컵을 주목해야 할 이유

굳이 지금 슈틸리케호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결국 벤투호, 그리고 한국축구의 궁극적인 목표가 4년 뒤 카타르 월드컵이기 때문이다. 초반 평가전에서 어떠한 성적을 거뒀는지보다는, 얼마나 오랫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초반 항해의 ‘지속성’을 확인할 첫 관문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다. 지난 1960년 이후 한국축구가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대회이자, 벤투 감독이 입국 당시부터 우승에 목표를 둔 대회이기도 하다.

특히 중립지역에서 펼쳐지는 대회이고, 또 평가전이 아닌 실전이라는 점에서 벤투호의 민낯도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앞선 상승세를 변함없이 이어간다면 벤투호의 항해는 더욱 속도가 붙을 수 있지만, 반대로 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경우엔 더할 나위 없던 앞선 행보 역시 그 의미가 사라진다.

벤투호는 12월 11일 울산에서 국내파 위주로 마지막 소집훈련을 진행한 뒤, 22일 UAE로 출국한다. 내년 1월 1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최종 모의고사를 치른 뒤에는 7일 필리핀, 12일 키르키스스탄, 16일 중국과 차례로 격돌해 16강 진출 여부를 가린다.

김명석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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