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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청소년기의 탈북, 구타와 분노를 이기게한게 격투기죠"

로드FC ‘탈북자 파이터’장정혁

고작 13살의 나이에 한겨울의 두만강을 어머니 손을 잡고 건넜다. 목숨을 걸고 넘어간 중국에서도 온갖 괄시를 견디며 태국까지 건너와 감옥생활까지 버텼다.

그렇게 넘어온 한국에서 막노동, 식당 일 등을 하면서도 자신이 목표한 ‘챔피언’과 ‘최정상’의 꿈을 향해 매일 같이 샌드백을 치고 있다.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FC 소속의 ‘탈북자 파이터’ 장정혁은 고작 21살의 나이지만 인생 역경은 나이의 몇 곱절은 된다. 경기도 성남의 김대환 MMA 체육관에서 만나 그의 탈북스토리와 격투기에 대한 진정성과 꿈에 대해 들어봤다.

어머니 손잡고 두만강 건넌 13살 소년$ 중국서 생존위해 몸부림치다

백두산보다 위, 러시아와 더 가까운 함경북도 온성군. 이곳에서 낳고 자란 장정혁은 평범한 집안의 북한 주민이었다. 반강제적으로 학교 선생님 밭일을 도우고 밤 11시쯤 집에 돌아온 어느날, 대뜸 어머니가 ‘너랑 나만 탈북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곧바로 집에 있는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자세한 얘기는 드릴 수 없지만 누구라도 나가 입을 덜어주는 게 가족을 위한 길이었어요. 한겨울 두만강을 건너는데 저나 어머니나 힘이 약하다보니 물살에 밀려 내려가는 바람에 상당한 폭의 강을 건넜죠. 이루 말할 수 없는 추위로 강을 건너니 옷이 몽땅 얼어버렸죠. 그래도 추운 건 두배로 추워도 됐는데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더 긴장됐죠.”

극심한 추위와 두려움에 떨며 넘어온 중국도 천국은 아니었다. 부득이하게 3년이나 중국에서 살아야했고 어머니도 돈되는 일은 다했지만 넉넉지 않아 장정혁 역시 생계를 위해 나이를 속여 막노동까지 나가야했다.

“탈북자 신분이다보니 학교도 다니지 못했어요. 중국어도 생존을 위해 미친 듯이 배웠죠. 불안한 삶이었고 미래가 없었죠”라고 악몽 같았던 중국 생활을 떠올린 장정혁은 “막노동을 하는데 엄청 큰 쇠 배관을 들다 발등이 찍혀 완전히 발이 아작 났는데 일한 돈도 안주더라고요. 저 역시 떳떳한 신분이 아니다보니 신고도 못하고… 서러운 나날이었죠”라며 혹독했던 중국생활을 회상했다.

라오스에 태국 감옥생활까지$ 감격의 한국행

중국에서 3년을 지낸 모자는 남한행을 위해 러시아 인근의 도시에서 동남아시아의 라오스까지 말그대로 중국 대륙을 완전히 가로질러야했다.

버스, 기차 등 되는대로 대중교통을 타고 힘겹게 이동한 후 기다린 것은 중국 국경에서 라오스로 건너기 위해 개발도 되지 않은 험준한 산을 3개나 넘는 것이었다.

중국 국경에서 잡히면 그대로 북송을 하기에 어떻게든 잡히지 않기 위해 산을 탄 장정혁과 모친은 하지만 산이 워낙 험준하고 힘들다보니 가뜩이나 오랜 중국생활로 몸이 쇠한 모친이 포기하려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장정혁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며 울며 눈물의 산행을 했고 힘겹게 라오스로 왔다. 하지만 라오스에서도 태국으로 향해야했고 태국 메콩강을 건널 때는 악어가 나오는 강을 조그마한 나무배에 의지해 건너기도 했다.

결국 태국 국경수비대에 잡혔고 태국 일반 죄인들과 똑같이 죄인으로 취급받아 교도소 생활까지 했다. 한국에선 중학교를 다닐 나이에 발에 무거운 쇠고랑까지 차고 교도소에 들어가자 장정혁의 어머니는 같은 상황이지만 미안한 마음에 가슴 깊이 눈물을 흘렸다고.

“태국에서 감옥생활까지 하니 정말 힘들었죠. 아직도 태국 교도소 꿈을 꾸기도 해요. 살인자들과 한방에서 지내는데 말은 안통하고…. 기억하기도 싫네요. 한국 송환을 기다린 2~3개월의 시간도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정말 하루가 이렇게 길구나’라는 생각을 몇백번씩 했죠.”

숨가뿐 과정을 거쳐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도 여의치 않았다. 태국에서도 북한 사람의 감시를 피해야했기에 숨어서 긴장되게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국정원의 조사와 하나원의 교육을 거쳐 남한에 완전히 정착했다. 2009년 고향 함북을 떠난 지 4년이 지난 2012년 겨울까지, 장정혁의 청소년기는 격동의 대하드라마였다.

분노와 복수에 가득찬 청소년기$ 격투기가 살렸다

남한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장정혁은 생계를 위해 한국에서도 막노동, 아르바이트, 식당일 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그런 그가 격투기 선수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죠. 그리고 중국에서 지낼 때 신분도 떳떳치 못하고 언어도 완벽하지 않아 따돌림과 구타,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았어요. 그 당시 쌓여왔던 분노를 해소하는 길이 혼자 샌드백을 만들어 쳐보는 일이었죠.”

장정혁은 강해지지 않으면 어머니와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절박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솔직히 강해져서 저에게 해코지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 감정을 내려놓는 순간 격투기와 운동은 저의 미래와 꿈이 됐죠”라며 남에게 털어놓기 쉽지 않은 아픔들을 애써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 와서도 모든 게 낯설고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도 걸렸죠. 하지만 중국에서부터 해보고 싶었던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는 순간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이 잊혀지더라고요. 체육관에서 먹고 자면서 운동 한 달 만에 아마추어 시합도 나갔어요. 그러다보니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아마추어, 세미프로를 건너 이렇게 로드FC 프로무대까지 서게 됐어요. 격투기가 탈북과정에서 쌓였던 분노와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던 제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해요. 저라는 존재가 있음을 알려준 정말 고마운 존재가 바로 격투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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