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투어 대만여자오픈

전미정(36)은 우승 트로피를 안았고 김아림(23)은 팬심을 훔쳤다.

1월 20일 타이완 가오슝의 신이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타이완 여자오픈의 결과를 이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KLPGA와 대만골프협회(CTGA), 대만여자프로골프협회(TLPGA) 공동 주최로 열린 새해 첫 대회에서 전미정은 JLPGA투어 25승 보유자다운 관록 넘치는 노련미로 우승컵을 보듬었다.

일본에 진출하기 전 KLPGA투어에서 2002년(KLPGA선수권대회)과 2003년(파라다이스 여자 인비테이셔널) 1승씩 2승을 기록한 전미정은 16년이란 긴 공백을 훌쩍 뛰어넘어 국내 통산 승수를 3승으로 늘렸다.

그는 해외투어 20승 이상 선수에게 주어지는 KLPGA투어 영구 시드를 갖고 있지만 당초 이번 대회에 참석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볼을 바꿀 생각을 갖고 있어 전지훈련은 못 가더라도 볼 테스트도 하고 좋은 날씨에 타이완의 맛난 음식도 즐길 겸 참가를 신청했는데 우승상금 16만 달러의 잭팟을 터뜨린 것이다.

단아한 외모에 표정 변화 없이 경기에 몰입하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에 따라 무미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도(茶道)를 하는 듯한 진지함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시종 다도를 연상케 하는 골프를 보여주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안전한 길을 찾아내고 그 길에 맞는 샷을 적절하게 구사했다.

김아림과 함께 1타 차 공동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 그는 8번홀(파5)에서 두 번째 샷 실수로 2타를 잃고, 9번홀(파4)에서도 보기를 범해 우승 경쟁에서 밀려나는 듯했으나 후반에 버디 3개를 챙겨 합계 12언더파로 공동 2위 김민선(24)과 대만의 짜이페이잉을 1타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미정이 담담(淡淡)한 골프로 승리를 얻었다면 4라운드 내내 선두권을 지켰던 김아림은 당당함과 배려 넘친 자세로 골프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6번 홀(파4)에서의 티샷 실수로 더블보기를 범하며 아쉽게 우승 경쟁에서 밀려나 합계 10언더파로 공동 4위에 머물었지만 대회장을 찾은 타이완 갤러리들과 중계방송을 지켜본 골프팬들은 김아림을 향한 마음의 끌림을 어찌할 수 없었다.

경력만으로 따지면 2013년 KLPGA투어에 들어와 지난해 박세리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처음 우승할 정도로 무게감은 덜 하지만 지난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최종전에서 박인비와 인상적인 대결을 펼친 뒤 골프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75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에 정교한 아이언샷을 겸비한 그는 프로골퍼가 갖춰야 할 미덕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두산 매치플레이에서도 거목 박인비에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예의를 갖추고 경기를 펼쳤던 김아림은 타이완 여자오픈에서 골퍼가 갖춰야 할 자세의 정수(精髓)를 보여주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아림은 런웨이를 장악한 패션모델을 방불케 했다. 머리를 똑바로 치켜들고 허리를 곧추세운 자세에 당당한 걸음걸이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면서도 입과 눈 주위에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미스 샷을 낸 후에도 그의 당당함과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특히 갤러리와 동반자에 대한 퍼포먼스와 매너는 인상적이었다. 그는 좋은 티샷을 날리고 나서, 그린에서 퍼팅을 성공하고 나서 갤러리들의 박수와 환호에 왼손을 배에 갖다 대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하는데 마치 태국의 주타누간 자매가 갤러리나 동반자에게 합장으로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과 흡사해 보였다.

15번 홀에서 보기 위기에 처한 전미정이 파 세이브에 성공하고 난 뒤 보인 그의 태도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전미정이 파 세이브에 성공하자 김아림은 축하의 ‘주먹 부딪히기’을 하기 위해 그린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전미정은 이를 모르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 김아림이 축하 주먹을 거두지 않고 전미정에 다가가자 그제야 전미정이 알아채 주먹 부딪히기가 이뤄졌다.

전미정의 우승이 결정되자 그에게 물을 뿌리며 진정으로 축하해주는 김아림의 모습도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장면이었다.

진정에서 우러난 퍼포먼스와 갤러리와 동반자들에 대한 배려의 행동, 자신감 넘친 패션모델을 연상케 하는 당당한 걸음걸이는 김아림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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