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감독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정운찬 총재는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말 한마디로 야구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국가대표 감독은 모든 야구인이 바라는 최고의 명예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부정 당했다. 한때, 국보라 불리며 한국 최고의 투수로 활약했던 선동열 감독의 긍지와 자존심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갑작스럽지만 예상된 수순, 선 감독은 그렇게 사퇴했다. 정 총재는 뒤늦게 선 감독을 붙잡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 부랴부랴 새해 신년사에서 정 총재는 사과의 말을 꺼내면서 전임 감독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미 국가대표 감독은 독이 든 성배, 아니 독이 든 독배가 됐다.

2020년 도쿄올림픽과 예선전 성격의 2019년 11월 ‘프리미어12’까지, 한국 야구는 갈 길이 멀고 마음은 급하다. 김시진 기술위원장을 필두로 이승엽, 박재홍, 최원호, 이종열 등 젊은 40대 기수가 모인 기술위원회는 공석인 대표팀 감독 자리를 하루 빨리 채우고자 두 번의 회의를 가졌다.

지난 23일 김 위원장은 “국가대표 감독 경력을 높이 평가했다. 직접 접촉을 해서 (후보자)생각도 들어보고 (감독직) 의사를 타진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여러 인물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후보는 사실상 두 명으로 압축됐다. 김경문(61) 전 NC 감독, 그리고 조범현(59) 전 KT 감독이다.

국가대표 감독, 잘 해도 욕먹고 못 하면 비난 일색이다. 누가 맡아도 쉽지 않은 자리다. 하지만 두 감독 입장에서는 제안이 들어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누가 ‘1순위’로 제안을 받느냐다. 화려함의 김경문인가, 아니면 묵직함의 조범현인가.

‘화수분 안방’ 베어스 포수 출신 선 후배의 경쟁

김경문과 조범현, 야구 국가대표 감독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두 감독의 인연은 저 멀리 OB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OB 창단 시절에 함께 포수로 입단, 김 감독은 조 감독보다 두 살 더 많은 형이었다.

등번호 25번의 조범현 감독이 1982년 OB의 첫 개막전에 선발 포수로 마스크를 썼다면 등번호 22번의 김경문 감독은 OB의 원년 우승의 마지막 순간을 에이스 박철순과 함께 했다.

선수 시절의 임팩트나 활약상을 놓고 본다면 김경문 감독이 한 발 앞서 나가고 조범현 감독이 이를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주전과 백업의 관계였지만 원년 OB 안방의 시작과 끝을 함께 나눌 정도로 두 감독은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존재였다.

통산 기록을 보면 김경문 감독이 700경기에 1494타수 329안타 타율 2할2리 6홈런 126타점을 기록했고, 조범현 감독은 615경기 출전에 1091타수 219안타 타율 2할1리 12홈런 107타점을 찍었다.

기록이 증명하듯, 두 감독은 당시 삼성 이만수처럼 호쾌한 타격을 앞세운 공격형 포수가 아닌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투수 리드 등 살림꾼 역할에 능한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였다.

하지만 같은 수비형이라고 해도 스타일은 조금 달랐다. 김경문 감독이 직구를 위주로 대담하고 힘 있게 정면 승부를 하는 타입이라면 조범현 감독은 철저하게 계산하고 상대를 파악한 후에 공략하는 타입이었다.

김영덕, 이광환 감독의 김경문이라면 김성근 감독의 조범현이었다. 이러한 스타일의 차이는 향후 은퇴를 하고 지도자가 되면서 더욱 명확하게 갈렸다.

화려함의 김경문, 묵직함의 조범현

두 감독과 잠깐이라도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김경문 감독은 이야기를 잘한다.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며 친화력도 좋다. 의사 표시도 명확하다. 지도자가 된 이후에 이러한 성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빠르고 공격적이며 화려하고 큼지막한 야구를 전개한다.

2004년 친정인 두산 사령탑을 맡아서 KBO리그 명감독으로 자리매김 했고 신생팀 NC를 맡아서 강팀으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무엇보다 김경문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전 국민에게 각인 시킨 것은 단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다.

당시 국가대표 감독으로 대표팀을 이끌고 올림픽에 출전, 한국의 9전 전승을 이끌며 금메달을 따냈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주관을 갖고 선수를 기용했다. 부진에 빠졌던 이승엽을 끝까지 4번 타자로 신뢰한 것이 대표적이 예다. 800만 관중 돌파의 현 프로야구 인기의 태동도 2008년이 그 시작이었다.

그에 비해 조범현 감독은 조용하면서 카리스마가 넘친다. 질문을 해도 침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많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꼼꼼하고 신중하고 단호하다. 한 번 결정을 내리면 쉽사리 바꾸지 않는다. 재촉하지 않는 대신 묵묵히 제 갈 길을 간다.

조직적이며 계산적이며 데이터를 중시하는 야구로 2004년 SK 부임 당시, 곧바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이후 2009년 KIA로 가서 강팀 SK를 물리치고 12년 만에 팀 우승을 일궈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신생팀 KT에서는 팀의 태생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2년 연속 최하위권에 머물렀지만, 하위팀을 곧바로 우승 전력으로 만드는 능력 하나는 확실하게 인정을 받았다.

특히나 김경문 감독이 두산과 NC를 합쳐 12년 넘게 프로 감독으로 뛰면서 네 번의 한국시리즈에 나서 모두 준우승에 그친 반면에 조범현 감독은 타이거즈의 우승을 이끈 경험이 있다.

당시 자신의 스승이었던 김성근 감독을 제칠 정도로 확실한 결과물을 내기도 했다. 더불어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대표팀을 맡아 금메달을 따낸 적도 있으니 국제 무대 경험도 나름 갖췄다.

종합적인 평가나 감독 커리어를 본다면 김경문 감독의 화려함은 상당하다. 포스트시즌 단골팀 감독이라는 별명에 작년까지 현장에 있었기에 여전히 감도 살아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이다. 조범현 감독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대단하지만, 대회 자체의 무게감은 확연히 다르다. 특히나 2020년은 도쿄올림픽이다. 올림픽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김경문 감독은 가장 유력한 대표팀 감독 후보다.

물론 조범현 감독도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도자로는 김경문 감독보다 먼저 두각을 드러냈다.

확연히 다른 두 감독, 과연 누가 ‘1순위’로 국가대표 감독 제안을 받고 수락을 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김성태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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