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멘탈 지닌 공포의 마무리 투수

‘100%(425표 중 423표).’

지난 23일(이하 한국시각) 2019 명예의 전당 입성자 명단과 득표율이 발표되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36년 명예의 전당이 생긴 이래 83년 만에 최초이자 329명의 헌액자 중 처음으로 기자단 투표 100% 만장일치를 차지한 선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리아노 리베라(50). 그 이름 자체로 뉴욕 양키스 팬들에게는 전율과 타팀 팬들에게는 공포를 안겨주었던 다시 없을 최강의 마무리 투수.

리베라는 어떻게 ‘야구 그 자체’로 여겨지는 베이브 루스,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 통산 511승 불멸의 기록으로 ‘사이영상’으로 회자되는 사이 영, 현대 최고의 투수였던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도 해내지 못한 만장일치 명예의 전당 헌액을 해낼 수 있었을까.

▶200만원짜리 선수, 양키스와 불펜투수 패러다임을 바꾸다

파나마 출신의 리베라는 1990년 대부분의 히스패닉 유망주들이 17세에 계약을 맺는 것에 비해 한참 늦은 20세 때 고작 200만원(2000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양키스에 입단했다. 리베라가 입단할 당시 양키스가 신인 1순위 선수에게 준 돈이 무려 16억원(155만달러)이었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싸게 후려쳐졌는지 알 수 있다.

200만원짜리 헐값 선수는 스물다섯살에서야 데뷔한다.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 선수인 마이크 트라웃과 브라이스 하퍼가 22세에 MVP를 탔는데 25세에 데뷔했으니 계약금만큼 출발도 참 늦었다.

하지만 리베라는 양키스에게 5개의 우승반지를 안기고 현대야구의 시작점인 불펜 투수의 패러다임을 바꾼 역사적 행보를 이어갔다. 13번의 올스타 선정, 야구 역사상 역대 1위인 652세이브를 거두며 마무리 투수가 무엇인지 익숙지 않던 현대 야구에 상징적인 존재로 군림하게 된다.

‘악의 제국’으로 불렸던 양키스를 정복하기 위해 수많은 팀과 선수들이 도전했다. 양키스의 대단한 유명 선수를 힘겹게 물리치고 ‘이제 끝이다’라고 다다른 마지막회에는 어김없이 리베라가 장판파의 장비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 앞에서 많은 팀들이 절망했고 리베라로 인해 양키스는 더 ‘악의 제국’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알고도 못치는 ‘커터’, 마무리의 중압감 이기는 강철 멘탈

슬라이더와 패스트볼 중간쯤에 있는 커터는 일반적으로는 우타자 바깥쪽으로 3~5cm휘지만 리베라의 커터는 최대 15cm까지 휘는 슬라이더같았다.

그런데 구속이 95마일에 달했으니 타자들은 속수무책. 2008년 이후에는 80%이상을 커터만 던졌으니 모든 타자들은 리베라가 커터를 던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누구도 사실상 원피치와 다름없는 공 앞에서 방망이만 부러질뿐 제대로 쳐내지 못했다.

오죽하면 타자/투수 친화적인 구장, 당시 리그의 상황 등 많은 요소를 고려해 평균을 100으로 두고 더하거나 빼는 조정평균자책점에서 리베라는 역대 1위인 205를 기록했다. 역대 2위가 현역인 클레이튼 커쇼로 159인걸 감안하면 선발과 마무리를 망라하고 리베라가 얼마나 위대한 투수인지를 새삼 알 수 있다.

리베라는 어느 상황에서나 흔들림이 없었이다. 양키스의 마무리 투수는 세상 그 어떤 보직보다 중압감이 심하다. 항상 승리를 갈구하고 팬덤이 강한 팀에서 한번만 실수해도 질타가 쏟아진다. 다잡은 경기를 놓칠 수 있는 마무리 투수는 더 심하다.

게다가 양키스는 월드시리즈도 밥먹듯이 나갔기에 전세계가 지켜보는 경기에 수없이 오르는 것은 압박이 엄청나다. 그럼에도 리베라는 정규시즌 통산 평균자책점(2.21)보다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자책점(0.70)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리베라는 역전 결승홈런을 맞아도 곧바로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오는 강철 멘탈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오늘일은 오늘일’로 끝낼 수 있는 멘탈이 있었기에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이가 많아 롱런을 찾아보기 힘든 마무리 보직을 근 20년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투표인단의 변화 ‘꼰대’가 사라졌다

명예의 전당은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에 소속된 기자 중 10년 이상 야구를 취재한 기자들에게 전체 투표인단 중 75% 이상의 득표를 받아야 헌액될 수 있다.

예전에는 한번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부여받으면 죽을 때까지 투표권이 인정됐기에 일명 ‘꼰대’들이 많았다. 현장을 떠난 지 한참이 돼도 투표하는 ‘꼰대’기자들은 말도 안 되는 기준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특정 인종에는 투표하지 않거나,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기자단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표하지 않고, ‘약물시대’에 뛴 선수는 약물을 했든 안했든 투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기자, 깜빡하고 아무에게도 투표하지 않는 기자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야구 그 자체’로 여겨지는 베이브 루스조차 1936년 최초 헌액 당시 득표율 95.13%에 그쳤고, 지금은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으로 기억되는 통산 최다승 1위(511승) 사이 영도 재수 끝에 1937년 76.12%라는 합격기준 75%에 턱걸이로 명예의 전당에 겨우 들어가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득표율에 대한 원성이 높자 2015년 이후 투표인단 기준이 바뀌었다. 기자에서 은퇴한 이후 10년이 지나면 투표권이 자동으로 소멸하는 것. 2015년 549명이었던 투표인단은 2016년 440명 등으로 줄더니 이번에는 425명까지 줄었다. 꼰대 기자들이 100명 가까이 사라졌다.

결국 압도적 실력과 양키스 유니폼만 19년을 입고 은퇴했다는 상징성, 모두가 존경하는 강철 멘탈과 인성, 꼰대기자가 사라진 시대상황까지 모두 들어맞았기에 리베라는 루스도 못한 최초의 만장일치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될 수 있었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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