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태국 촌부리 시암 컨트리 클럽 파타야 올드 코스에서 열린 LPGA 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 1라운드 중 박성현이 타구 방향을 살피고 있다.(LPGA 제공)
골프는 철저한 파동(波動, wave)의 스포츠다. 우주, 물질, 에너지 등에 관통하는 불변의 법칙이 파동이긴 하지만 특히 골프는 파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해도 매 라운드, 매 경기를 일관되게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를 펼칠 수는 없다. 생체리듬과 감성리듬이 일정한 주기를 갖고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가 하면 주변 상황에 따라 생기는 변수가 파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박성현(26)이 올 시즌 두 번째 출전한 대회인 LPGA투어 HSBC 위민스 월드챔피언십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통산 6승째다. 박성현은 지난 3월 3일 싱가포르 센토사GC 뉴 탄종 코스에서 열린 이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단독 선두 에리야 쭈타누깐(23)에 4타 뒤진 공동 8위로 출발했으나 전후반 각각 4타씩 줄이는 완벽한 플레이로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지난해 8월 인디 위민 인 테크(IWIT) 챔피언십 이후 6개월여 만에 보탠 우승이다.

그의 이번 우승은 여러모로 값지다. 두 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일찍 시동이 걸렸다는 점, 에리야 쭈타누깐으로부터 세계 랭킹 1위를 탈환하겠다는 의지에 청신호가 켜진 점(3월 5일자 세계 1위로 복귀했음), 시즌 5승의 목표가 가시권으로 들어왔다는 점, 시즌 초반 5개 대회에서 벌써 3개 대회를 석권해 한국선수 시즌 최다승(2015, 2017년 15승) 기록 경신을 밝게 했다는 점 등 박성현 자신은 물론 한국 여자골프 전체에 서광을 비췄다.

필자의 눈엔 위에 열거한 의미보다 박성현의 경기 파동이 눈에 띄게 견고해졌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누구나 부러워할 이상적인 스윙과 비거리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갖고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지만 그에게 약점이 있다면 경기 파동의 진폭(振幅)이 넓다는 점, 즉 기량의 출렁임이 심하다는 것이다.

잘 나갈 땐 무섭게 치고 나가지만 한번 삐끗하면 어이없이 무너지는 경향이 있었다. 생체리듬이나 감성리듬의 출렁임에 따라 경기의 리듬이 출렁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하강 후 다시 상승할 수 있는 반등의 에너지가 있느냐다.

박성현에겐 이 반등의 에너지가 부족해 보였다. 추락하면서도 낭떠러지의 나뭇가지 붙들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절박감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약점일 수밖에 없다. 큰 진폭 없이 꾸준하게 경기를 이끌어가는 에리야 쭈타누깐이 세계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것도 박성현의 이같은 약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개 대회에 모습을 보인 박성현은 예전과 많이 달라 보였다. 든든한 스폰서를 얻은데다 골프영웅 타이거 우즈와 만나 유무형의 에너지를 얻기도 했겠지만 비시즌 기간의 전지훈련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느끼게 했다.

시즌 처음 참가한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 공동 21위에 그쳤지만 경기 기복은 심하지 않았다. 첫 라운드에 3언더파로 순조로운 출발을 했으나 2, 3라운드에서 이븐파로 주춤하다 4라운드에선 4언더파로 상승기류를 탔다. 같은 라운드에서도 전후반의 기복이 심한 것은 여전했으나 상승기류를 타다가 한번 기세가 꺾이면 사정없이 추락하곤 하던 옛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HSBC 월드챔피언십에서 확실히 드러났다.1라운드에 전후반 각 1언더파, 2언더파로 무난한 경기를 펼쳤다. 2라운드 전반 4언더파, 후반 3오버파로 출렁임이 심했다. 3라운드에서도 전반 5언더파, 후반 2오버파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예전의 취약점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는 전반 4언더파, 후반 4언더파 합계 8언더파를 몰아쳤다. 에리야 쭈타누깐은 결정적 실수로 자멸했고 호주동포 이민지, 돌아온 박인비, 팔팔한 고진영, 노련한 지은희 등의 협공 속에서도 자신만의 고고한 플레이를 펼쳤다. 마치 암벽타기의 김자인 선수가 수직벽을 오르듯 우승을 향해 치달았다. 반등의 에너지가 넘쳤다.

한국선수 및 한국계 선수들의 선전이 두드러진 만큼 그의 우승 가도가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경기 흐름의 출렁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박성현의 이번 시즌은 기대해도 될 것 같다. 그럼에도 LPGA투어 3년 차 톱클래스 선수의 통역을 통한 인터뷰장면은 내내 아쉬웠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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