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수출’ 테임즈^켈리, 빅리그 맹활약

한국 야구는 변방이었다. 역사도 그리 길지 않다. 지난 1982년 OB, 삼성, MBC, 해태, 롯데, 삼미까지 모두 6개 팀으로 리그가 시작됐다. 지금은 10개 구단으로 크게 늘면서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뤘지만, 1936년 2월에 출범한 일본프로야구(NPB)나 1876년 내셔널리그를 시작으로 한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역사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야구 본고장 미국과 야구를 국기로 생각하는 일본에 비해 한국야구는 일명 ‘B급’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식이 달라졌다. 야구 변방국의 프로야구 리그가 이제는 외국인 선수들이 선망하는 리그 중 한 곳이 됐다. 적응 잘하고 확실한 실력만 갖추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충분히 받을 수 있고 심지어 코치들이 외인 선수 한 명을 위해 철저한 개인 교습도 마다하지 않는 리그, 그곳이 한국이다.

메이저리그 입성에 실패한 ‘AAA’형 선수들은 이제 한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다시금 미국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있기에 이제는 한국에 찾아오는 외인들은 모두가 새로운 꿈을 갖고 KBO리그에 입성하고 있다.

40홈런-40도루의 테임즈, 인정받은 KBO리그

한국에서 40홈런을 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타고투저 성향이 짙다보니 40개가 가볍게 보이지만, 홈런왕에 오르려면 최소한 40개 이상은 쳐야 한다. 작년 홈런왕 두산 김재환이 44개를 쳤다. 그만큼 40홈런은 최고 수준의 홈런 타자를 증명하는 척도다.

144경기를 치르면서 홈런 40개를 쳐내려면 최소한 3.6경기당 1개꼴이다. 홈런에 집중해도 부족한데, 전 NC 내야수 에릭 테임즈(32)는 40홈런에 이어 40도루까지 성공했다.

터질 것 같은 팔 근육, 넘치는 파워, 그리고 인정사정 볼 것이 없이 휘두르는 과감한 스윙, 여기에 투수의 눈을 피해 누를 훔칠 수 있는 센스와 이를 가능케 하는 빠른 발까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타자였다.

에릭 테임즈.
테임즈는 미국에서 빛을 보지 못한 선수였다. 2014시즌, 그는 한국 무대를 선택했고 내야수로 전향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년간 390경기를 소화하며 1351타수 472안타 타율 3할4푼9리 124홈런 382타점 64도루를 기록했다.

2년차였던 2015시즌, 그는 42개의 홈런와 40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여기에 단일시즌에 두 번의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고 2년 연속 30홈런-100타점도 찍었다. 테임즈는 말 그대로 ‘역대 KBO리그 최고의 외인 야수’였다.

NC를 제외한 9개 구단의 투수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가 메이저리그로 빨리 돌아가길 원했다. 2016시즌이 끝나고 테임즈는 한국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서 미국 메이저리그 밀워키와 3년 총액 1600만 달러(약 180억원)의 조건에 사인, 빅리그 재입성에 성공했다. 이른바 ‘KBO리그 역수출 1호’인 셈이었다.

2017시즌, 테임즈는 밀워키 주전 내야수로 뛰며 138경기에 나서 469타수 116안타 타율 2할4푼7리 31홈런 63타점을 기록했다.

뛰어난 장타율을 바탕으로 빅리그에서 30개 이상의 홈런을 쳐낼 수 있는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몸집을 더욱 크게 만들고 파워를 대폭 늘리면서 실력을 키운 한국에서의 경험이 빅리그에서도 통한 셈이다.

야수 이어 투수도 역수출, 켈리의 빅리그 데뷔 첫 승

테임즈가 다져놓은 길을 걸어가면서 빅리그의 꿈을 실현한 선수가 또 있다. 전 SK 투수 켈리(31)다. 지난 4월 2일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은 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코 펫코 파크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메이저리그 원정 경기에 선발로 등판, 6이닝 5피안타 1피홈런 2볼넷 3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첫 승을 따냈다.

메릴 켈리.
이전까지 켈리는 빅리그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다. 재능은 좋았지만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던 평범한 투수였다. 하지만 KBO리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에 재도전, 빅리그 첫 승까지 달성하면서 테임즈에 이어 ‘KBO리그 역수출 2호’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켈리는 지난 2010년 템파베이 레이스의 8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유망주였지만, 빅리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야구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에 그가 선택한 곳은 바로 KBO리그, 한국이었다.

인천 SK에 터를 잡았던 첫 해인 지난 2015시즌, 그는 11승 10패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지만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6시즌에 200.1이닝을 던지면서 9승 8패 평균자책점 3.68, 2017시즌에는 190이닝을 던져 16승 7패 평균자책점 3.60을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외인 투수가 됐다.

점점 더 성장하는 그의 투구에 빅리그 스카우트들 역시 그를 향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닝을 소화하는 능력이나 구위, 구속 등 모든 부문에서 한층 성장하고 발전을 거듭했다. 그렇게 2018시즌에도 SK의 에이스 역할을 했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날카롭게 다듬은 체인지업과 커터, 더욱 힘이 실린 직구를 앞세워 한국에서 성공한 켈리는 올 시즌, 애리조나와 최대 4년 1450만 달러(약 165억원)의 조건으로 계약했다. 마이너리그 거부권도 챙겼고 시범경기에서도 6번이나 등판하며 엔트리 및 선발 로테이션 합류를 확정지었고 데뷔 첫 승도 챙겼다.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KBO리그서 20승을 챙겼던 전 KIA 헥터나 NC 왕웨이중 등 다른 외인 선수들이 한국을 떠나 빅리그 입성에 실패, 마이너리그에 있는 것에 비하면 켈리의 경우는 대성공이다.

김성태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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