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인천유나이티드 유스팀 대건고 감독


한때 그는 한국축구의 중심에 서 있던 선수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선 사상 첫 원정 16강의 주역이었다. 두 차례의 올림픽과 아시안컵 등 굵직한 대회에서도 태극마크를 달았다. A매치 출전 수는 71경기나 됐다. 화려하진 않았다. 역할 특성상 주목도 덜 받았다. 그러나 중원에서 늘 묵묵하게 제 역할을 하는 선수였다. 지금도 많은 팬들이 그의 존재를 그리워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뚝’ 끊겼다. 2013년 중동으로 건너간 이후부터였다. 대표팀과도 더 이상 인연이 닿지 않으면서 조용히 잊혀졌다. 결국 3년여의 해외생활 끝에 그는 3년 전, 태국에서 조용히 축구화를 벗었다. 그랬던 그가 3년 만에 축구계로 돌아왔다. 선수는 아니지만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한때 한국축구 중원을 책임졌던 김정우(37)의 이름 뒤엔, 인천유나이티드 유스팀인 대건고 감독이라는 새 직함이 붙었다.

월드컵서 메시와 맞서 본 중원의 핵심

선수시절 김정우의 체중은 70kg 안팎이었다. 183cm의 신장, 거친 몸싸움이 불가피한 수비형 미드필더 특성상 왜소한 체격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먹는 것을 즐기지도 않았고, 원체 살도 안찌는 체질이었다. 그러나 피지컬은 중요치 않았다. 부평고-고려대 등 축구명문교를 거쳐 2003년 울산현대에 입단, 첫 시즌부터 K리그 34경기에 출전한 기록이 이를 뒷받침했다. 김정우도 “스트레스는 없었다.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부딪히면서 극복했다”고 했다. 태극마크와도 자연스레 인연이 닿았다. 프로데뷔 첫 해였던 2003년 처음 A매치에 데뷔한 뒤 오랫동안 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졌다. 많은 활동량과 강력한 몸싸움, 상대의 패스를 끊어내는 역할 등에 강점을 보였다. 덕분에 월드컵 무대도 누볐다. 그에겐 선수생활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이기도 하다. 김정우는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나가고 싶은 무대가 월드컵”이라며 “2010년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돌아봤다. 아르헨티나전에선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와 그라운드에서 맞부딪혀본 경험도 있다. 그는 “분명히 내 앞에 있었는데, 뒤돌아서면 또 내 앞에 있을 정도로 빨랐다”며 “찬스일 때 스피드에 변화를 주고 빠르게 침투하는 움직임이 좋았다”며 웃어 보였다.

거듭된 부상에 은퇴 결심… “후회는 없다”

월드컵을 누비던 당시 광주상무(현 상주상무) 소속이던 그는 전역 후 성남일화와 전북현대를 거쳤다. 이후 2013년엔 새 도전에 나섰다. 중동리그인 아랍에미리트 알 샤르자 이적이었다. 이적 첫 시즌엔 몸상태도, 경기력도 좋았다. UAE리그 베스트11에도 뽑힐 정도였다. 그러나 이듬해 바니야스로 이적하면서 악재를 맞이했다. 부상이었다. 김정우는 “종아리 부상을 당했다. 3주 정도 쉬면 됐는데, 열악한 치료 탓에 3개월이나 걸렸다.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다”고 했다. 재활 후 복귀한 뒤에도 또 다시 종아리에 문제가 생겼다. 중동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회복에 전념했다. 2016년엔 태국 폴리스 테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시즌 초반 3경기에 출전하며 재기에 나섰다. 그러나 3번째 경기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김정우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보니 회복이 느렸다. 결국 가족들과 상의 끝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은퇴에 대해 김정우는 “크게 아쉽거나, 미련이 남지는 않았다. 선수생활 내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가지고 있는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유럽에 한 번 도전해봤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정도만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은 많지 않나. 나는 운동장에서 ‘늘’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팬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후 김정우는 아내와 두 아들 등 오로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의 다짐과도 맞닿아 있는 휴식이었다. 그는 “선수시절 누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만큼 바빴다. 그래서 은퇴하면 가족들과 꼭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했었다”며 “그래서 오로지 3년 정도 가족과 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제자들의 성공$ 지도자 김정우가 품은 목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조용히 지도자 자격증을 준비했다. 김정우는 “내가 제일 잘 해왔고, 잘 알고, 또 앞으로도 잘 할 수 있는 것은 축구라고 생각했다”며 “선수시절 때 느꼈던 것들을 지도자가 돼 다시 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조민국 청주대 감독 아래에서 지도자 수업도 받았다. 그리고 인천유나이티드 유스팀인 대건고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다. 인천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했던 터라, 지도자 생활도 인천에서 시작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그다. 지휘봉을 잡은 지 한 달을 겨우 넘었지만, 명확한 지도방식도 세웠다. 김정우는 “열 마디 말보다 함께 뛰면서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술적으로도 큰 틀만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아이들이 생각하면서 할 수 있게끔 자유롭게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인천=김명석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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