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팀과 기싸움… 위기때 팀 결속도

김태형 프로야구 두산 감독이 30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두산과 한화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KBO는 이날 막말 논란의 중심에 선 김 감독에게 벌금 200만원을 부과했다. (연합)

이런 말이 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지만 매일 치고받고 싸우는 전쟁과도 같은 야구판에서 순둥이처럼 참고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스운 상대로 여겨질 수 있고 기싸움에서 지고 들어가는 느낌도 있다. 선수 중에서는 조용하고 제 몫을 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그라운드 위에서 강하고 격하게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는 선수가 있다. 이는 선수 개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선수가 아닌 한 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인 감독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지난 4월 28일 잠실 두산-롯데의 경기에서 매우 보기 드문 장면이 나왔다. 7회말 롯데 구승민이 던진 공에 두산 정수빈이 등에 공을 맞고 쓰러졌다. 김태형 감독이 곧바로 나와 정수빈의 상태를 살피고자 타석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김 감독이 롯데 공필성 코치와 구승민을 향해 몇 마디를 했는데, 이 장면을 보고 양상문 감독이 불같이 화를 내며 덕아웃에서 뛰쳐나왔다. 초유의 사태, 감독의 충돌에서 시작된 벤치클리어링, 최근 KBO리그에서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큰 이슈였다. 감독의 ‘막말’과 ‘화’는 상대에 쏟아내는 격한 감정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팀 선수들과 내부를 향한 강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팀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자식과도 같은 선수를 대신해서 전쟁터 앞에서 싸울 수 있는 리더, 위기에서 팀을 하나로 묶는 특효약이 바로 감독의 ‘화’다.

‘코끼리’ 김응용의 주특기는 우승과 더불어 ‘퇴장’

알려진 대로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은 현역 감독시절 KBO리그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이다. 해태 시절에 따낸 8번의 우승도 우승이지만, 그가 보여준 카리스마는 기라성 같던 슈퍼스타들도 꼼짝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런 김 감독이 선수들에 신임을 얻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항의, 그리고 퇴장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인다. 조금이라도 선수들이 아쉬운 판정을 받거나 상대에 기싸움이 밀리는 경우가 생기면, 김 감독은 무섭게 소리를 지르는 열혈 감독으로 변신했다. 당당하게 주심 면전에 손가락질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선수 모두를 덕아웃에서 철수시키는 등, 과격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심판 폭행’이었다. 프로야구가 두 번째 해를 맞이한 1983년 김응용 감독은 해태 사령탑에 부임했다.

그 해 6월 14일 대전구장에서 OB와 경기를 치른 후, 판정에 불만을 갖고 있던 김 감독은 오후 10시가 넘어서 심판실로 찾아가서 문짝을 발로 차고 심판의 멱살을 잡고 주변에 있던 물건을 부수기도 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선수단의 분위기가 좋지 않거나 팀 성적이 추락하는 시점이 되면 김 감독은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는 ‘화’를 냈다. 그렇게 해태 사령탑 시절에만 5번이나 퇴장을 당했다. 오죽하면 ‘우승 청부사’와 함께 얻는 별명이 ‘퇴장 청부사’였을까.

가장 최근에 사령탑을 맡았던 2014년 5월 한화 시절에도 심판의 아쉬운 판정이 연이틀 나오자 경기 도중에 선수단을 대거 철수시키기도 했다. 판정에 억하심정을 감추지 못한 선수를 대신한 감독의 반격, 팀의 사기를 단숨에 끌어올리고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그만의 충격요법이었다. 어떤 날은 팀이 크게 지는 날, 일부러 주심의 판정에 항의를 하고자 그라운드에 나선 적도 있다. 선수들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감독이라도 나서서 뭔가를 보여주는 것을 ‘팬 서비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김응용에게 ‘화’는 곧 선수단을 장악하고 리더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정치적 도구’인 셈이었다.

천차만별 ‘화’ 사례, 감독 스타일 따라 모두 다르다

화를 내는 것도 좋지만, 자주 낸다면 그 효과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에 화를 내고 항의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절체절명의 순간, 팀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항의도 있지만, 선수를 보호하고자 일부러 내는 ‘화’도 있다.

잠실에서 김태형 감독과 양상문 감독의 설전이 오고 갔던 지난 4월 28일, 대구에서도 프로야구 감독이 화를 냈다. 삼성 김상수가 타격을 했다. 중계를 보면 방망이가 돌아가지 않았는데, 1루심이 체크스윙 판정을 내렸다. 이후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나자 김상수는 화를 참지 못했다.

덕아웃으로 들어가면서 쓰고 있던 헬멧을 그라운드에 힘껏 내던졌다. 헬멧이 깨질 정도였다. 이를 본 권영철 주심은 김상수를 쫓아갔다. 판정에 아쉬움은 있지만 김상수의 행동 역시 과격했다. 누가 봐도 퇴장감이다. 그런데 여기서 김한수 감독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주심에 강하게 항의했다. 코치가 말릴 정도로 강한 어필이었다. 김상수의 퇴장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평소에 얌전한 김상수의 화도 낯설지만, 그의 퇴장에 버럭 화를 내며 강하게 어필한 김한수 감독을 보고 의외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상수도 “감독님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선수의 억울함을 감독이 대신 ‘화’로 풀어준 경우다.

또 하나는 감독이 아예 선수의 퇴장을 막고자 직접 화를 내며 혼낸 경우다. 최근 막말 논란에 휩싸인 김태형 감독이다. 지난 2018년 4월, 당시 포수 양의지는 심판의 아쉬운 볼 판정에 항의를 하는 차원에서 교체된 곽빈의 연습 투구를 잡지 않고 흘렸다. 의도 여부를 떠나 뒤에 서 있는 주심이 공에 맞을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곰의 탈을 쓴 여우 같은 김태형 감독이 일부러 양의지에 화를 내고 혼내면서 그의 퇴장을 사전에 방지한 노림수의 ‘화’였다.

김성태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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