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터계의 새 지평을 연 김태우

김태우 캐스터(왼쪽)와 최희섭 해설위원.
박찬호가 태평양을 건너며 메이저리그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지 25년여. 항상 스포츠 채널에 있어 메이저리그는 중요한 콘텐츠였고 좋은 해설위원을 보유하는 것과 함께 해설위원을 보조하고 진행해줄 좋은 캐스터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팬들은 까다롭다. 각각의 기준이 있고 모두를 만족시키기 힘들다. 해설위원들은 더 까다롭다. 한 분야의 최고의 위치에 올라야 모두에게 인정받는 해설을 할 수 있다. 지식도 방대한 만큼 자존심도 강하다.

경력 15년이 넘은 김태우 캐스터는 팬들과 해설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캐스터가 됐다. 오죽하면 한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김태우 캐스터를 ‘캐스터’가 아닌 ‘전문가’로 섭외할 정도. 순수 ‘스포츠광’으로 사정상 메이저리그 캐스터를 잠시 떠나 있는 지금도 새벽같이 일어나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고 판타지리그를 할 정도로 메이저리그를 ‘즐기고 좋아하는’ 김태우 캐스터를 만났다.

어릴 때부터 게임-직관으로 기른 야구력… 캐스터로 다가서다

김태우 캐스터는 어릴 때부터 야구를 무척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추억의 야구게임인 하이 히트를 즐겼고 수원 출신으로 현대 유니콘스 경기를 아버지 손을 잡고 직관하기도 했다.

미군 방송인 AFKN을 보며 메이저리그를 알게 됐고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어린시절임에도 생소하던 메이저리그 팀들의 이름정도는 모두 꿰 반친구들에게 자랑 아닌 자랑도 할 정도였다.

“학창시절에는 수업시간에 박찬호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으려 몰래 이어폰으로 듣다가 걸려 선생님께 맞기도 했죠”라며 웃는 김태우 캐스터는 스포츠와 방송에 대한 관심이 컸고 대학 졸업도 전에 지금은 사라진 엑스포츠에 캐스터로 입사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김태우 캐스터는 “제가 캐스터를 하면서 좋아했던 메이저리그, WWE, 프로야구 중계를 해보는게 목표였거든요. 정말 운 좋게 3년만에 그 중계들을 모두 했죠. 당시에는 너무 빨리 좋은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에 소중함을 몰랐던게 아닌가 해요”라며 초창기 시절을 추억했다.

해설위원에게 인정받는 캐스터… 준비의 중요성

김태우 캐스터는 메이저리그 전문 팟캐스트인 MLB쇼를 10년간 진행했다. 2005년부터 메이저리그 캐스터를 한 경력과 더불어 해설위원들도 그의 지식과 진행 능력을 인정했다. 메이저리그에 있어서는 최고라는 해설위원들에게 인정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어느날 중계를 하던 중 쉬는 시간에 이종률 해설위원이 ‘태우야, 네가 그 얘기를 다하면 내가 뭐하러 얘기하냐’며 장난스럽게 말하신 적이 있어요. 그게 저에겐 솔직히 망치를 맞은 느낌었어요. 어른대접하는 것만이 존중이 아니라 해설위원과 캐스터 사이의 존중을 제가 놓친 것 같더라고요. 그 이후 각 해설위원에 맞게 준비하고 말하고자 하는 욕심을 줄이는걸 중요하게 여겼죠.”

예를 들어 이종률 위원의 경우 오전 8시 중계면 3시간 전부터 와서 경기 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럼 김태우 캐스터는 원래 오전 6시에 나와도 오전 5시에 맞춰가서 이종률 위원의 준비를 보며 맞춰 준비한다는 것이다.

“전날 밤에 미리 혼자 준비하고 또 이종률 위원 맞춤식으로 준비하면 더 완벽한 준비가 되는 거죠. 그게 바로 ‘호흡’이라고 생각해요. 이종률 위원이 준비한 걸 제가 운만 띄우면 이 위원은 신나서 준비한 걸 얘기하고, 그러면 저도 신나서 방송할 수 있는 거죠.”

또한 존경하는 선배인 송재우 해설위원에게 “야구를 1000경기, 1회부터 9회까지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보면 야구를 조금 알거다”라는 충고를 받은 후 정말 그렇게 했다고. “지금도 후배들에게 가끔 같은 얘기를 할 때가 있죠. 야구는 정중동 속의 흐름의 스포츠거든요”라며 양적인 경험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좋은 스포츠 방송이란 : 편집점을 알고 ‘함께’할 줄 아는 것

김태우 캐스터는 방송팀간의 ‘호흡’ 역시 좋은 스포츠 방송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엔 많이 사라진 문화이긴 한데 제가 방송이 끝났다고 해서 집에 가는게 아니라 방송팀과 함께 라인을 정리하고, 기술팀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다 함께 인사하고 집에 가야 그게 진짜 퇴근이라고 봐요. 방송을 위해 준비해주시는 스태프들도 모두 ‘한팀’이기 때문이죠. 이런 유대관계가 쌓여야 팀워크가 생기고 카메라팀과 PD, 해설자 등 모두가 다르게 일하지만 한몸처럼 알맞게 방송이 될 수 있죠”라고 말한다. 김태우 캐스터는 “요즘에는 외주사에 방송을 맡기는 경우도 많아 이런 문화가 사라지지만 결국 스포츠 방송은 해설자와 캐스터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라고 말했다.

워낙 방송 경험이 길다보니 김태우 캐스터는 재밌는 일화도 들려줬다. 추신수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거의 전경기를 중계하다보니 자연스레 중계화면을 송출하는 현지 PD와 호흡이 들어맞았다는 것.

“합이 맞으면 PD가 이 상황에서는 이 장면을 잡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기에 준비된 멘트를 A4 용지대로 읽어나갈 수 있어요. 멘트를 다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딱 제가 원하는 장면을 찍고 있는데 그게 바로 당시 미국에서 송출하던 PD도 워낙 오래하다보니 합이 맞았던 거죠”라며 “어느날은 늘 하던대로 멘트를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제가 생각한 화면이 아니더라고요. 방송 끝나고 들으니 현지에서 원래 하던 PD가 몸이 아파 쉬어서 다른 PD가 했다고 하더군요. 비록 방송을 받아 송출하지만 그런 것도 PD와의 합이죠”라며 웃었다.

오랜 캐스터 생활을 하면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일까.

김태우 캐스터는 “솔직히 모든 팬들을 만족시키긴 불가능하고 인정받기도 쉽지 않죠. 모두의 취향은 다르니까요. 하지만 PD나 해설위원 같은 나와 함께하는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기뻐요. 해설자에게 ‘이 친구랑 하면 마음 편하게 방송해’라고 듣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럴 때 참 행복하죠”라며 웃었다.

성남=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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