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 바이런넬슨 우승자 강성훈. Getty Images Stuart Franklin/PGA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8년을 기다려, 159번 도전 만에 PGA투어 첫 승을 안은 강성훈(31)을 보면 절로 서정주의 국민애송시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5월 10~13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트리니티 포레스트GC(파71)에서 열린 PGA투어 AT&T 바이런 넬슨 대회에서 강성훈의 라운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드라마였다.

공동 4위로 출발한 1라운드는 산뜻했다. 버디만 10개를 잡아내며 코스 최저타 타이기록(61타)으로 4타차 단독 선두로 나선 2라운드는 완벽했다. 악천후로 이틀에 걸쳐 치러진 3라운드에는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소용돌이에 휩싸였으나 끝내 정신 줄을 놓치지 않고 3타차 단독 선두를 유지했다.

강성훈은 한때 맷 에브리에게 1타 차 단독 선두를 내주고 공동 선두를 허용하기도 했으나 14, 15, 16번 홀에서의 3연속 버디로 굴기(屈起)하면서 사실상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3차 단독 선두로 18번 홀(파4) 그린에 올라온 강성훈은 파 퍼트를 놓쳤으나 공동 2위 맷 에브리와 스콧 피어시에 2타 앞선 우승에는 변함이 없었다. 4라운드 4언더파 67타, 최종합계 23언더파 261타.

강성훈의 강력한 경쟁자로 지목되었던 앞조의 브룩스 켑카는 6타를 줄였지만 단독 4위에 만족해야 했다.

하루에 3라운드 잔여 9홀과 4라운드 18홀을 소화한 강성훈의 모습은 일견 4주 전 치러진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황제의 부활을 이룬 타이거 우즈의 풍모를 떠올리게 했다.

2년 전 PGA투어 셸 휴스턴 오픈의 마지막 홀 역전패로 첫승을 놓친 아픈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 뒤서거니 앞서는 추격자들에도 흔들리지 않은 강철 심장, 그러면서도 몸과 마음의 현(絃)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유지하려는 구도자의 자세 등이 거뭇거뭇하게 자란 수염과 멋지게 어울렸다.

사실 마지막 라운드 전반 타수를 줄이지 못할 때 2017년 셸 휴스턴 오픈의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2017년 텍사스주 휴스턴의 휴스턴GC에서 열린 PGA투어 셸 휴스턴 오픈에서 강성훈은 4라운드를 리키 파울러에 3타 앞선 단독 선두로 출발했다. 그러나 짧은 거리의 버디 기회를 잇달아 놓치면서 러셀 헨리(미국)에게 역전당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런 악몽을 떨치고 8년의 기다림을 우승으로 개화시킨 그의 AT&T 바이런 넬슨 대회 정복 드라마는 그를 아끼는 많은 골프 팬들에게 전율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8년 전의 악몽은 그의 와신상담(臥薪嘗膽) 의지를 더욱 굳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PGA투어는 보통 선수라면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고도 남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 연세대를 나온 그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출전,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남자골프의 기대주였다.

그해 4월 아마추어 신분으로 출전한 KPGA 코리안투어 롯데 스카이힐 오픈에서 우승한 그는 아시안게임을 마친 뒤 프로로 전향했다.

2008년 코리안투어 우승은 없었지만 준우승 2회, 3위 1회 등의 성적을 내며 상금 순위 8위에 올랐다. 2010년 유진투자증권 오픈에서 첫 우승을 따낸 뒤 2011년 미국으로 향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PGA투어 꿈을 키워온 그는 2011년 처음 참가한 BMW 채리티 프로암 대회에서 2위에 오르고 US오픈에서도 공동 39위에 오르는 등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12년 30개 PGA투어에 출전했으나 22번이나 컷 탈락하며 투어카드를 잃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부 투어로 밀려났다.

2013년 코리안투어 대회인 CJ 최경주 인비테이셔널과 한국오픈에서 우승, 국내 상금왕에 오르며 재기의 발판을 다진 후 2016년 다시 PGA투어 입성, 4년 만에 첫 우승컵을 안았다.

PGA투어 정상에 오른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1~3년 안에 첫승을 하는데 투어 입문 9년 차에 첫 승을 거둔 선수는 강성훈이 처음이다. 최경주(8승) 양용은(2승) 배상문(2승) 김시우(2승) 노승열(1승)에 이은 여섯 번째 한국인 우승자, 16번째 우승의 주인공이 되었다.

강성훈의 PGA투어 첫승 무대가 전설의 골퍼 바이런 넬슨(John Byron Nelson, 1912~2006년)을 기리는 대회라는 점은 그의 우승이 갖는 의미에 무게를 더한다.

벤 호건과 함께 같은 동네 골프장에서 캐디 일을 하면서 골프를 배운 바이런 넬슨은 아무도 깨지 못한 진기록을 여럿 갖고 있다. 1932년 갓 스물에 PGA투어에 뛰어든 그는 1956년 44세로 은퇴할 때까지 메이저 5승을 포함해 통산 54승을 올렸는데 1945년 한 해에만 35개 대회에 참가해 11연속승, 18승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이 때문에 당시 골프계는 1945년을 ‘Year of Nelson’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1942~1946년 4년간 톱10에 65회 든 것도 아무도 깨지 못한 기록이다. ‘그린의 신사’ ‘바이런 경(卿)’ ‘철(鐵)의 바이런’ 등의 경칭이 따라붙는 그는 목장주가 되겠다는 어렸을 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홀연히 은퇴를 선언했다.

기량이나 승수야 골프의 전설과 비교될 수 없지만 바이런 넬슨의 집념과 결단은 강성훈에게 귀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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