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통틀어 감독대행은 43명

프로야구의 한 구단 관계자에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저… 감독대행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어떻게 부르시나요? 감독님? 아니면 대행님?” 모든 야구인들의 꿈, 대한민국에 딱 10명 존재하는 직업, 아무나 할 수 없기에 특별한 자리, 바로 프로야구 감독이다. 야구판에서는 흔히 ‘대권’이라 표현한다. 그만큼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감독이라는 ‘용’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감독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감독대행이다. 사실 대행이라고 해서 일이 다른 것은 아니다. 라인업도 자기 손으로 정하고 투수 기용이나 선수 및 코칭스태프 관리도 전부 다 한다. 계약이 기존 코치였을 때의 연봉일 뿐, 숙소나 차량과 같은 구단의 대우는 감독에 준하는 경우가 많다. 누가 봐도 감독이다. 하지만 ‘감독’은 아니다. ‘대행’은 대신하는 존재다. 새 감독이 오면 언제든 나가야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신분이다.

지난달 1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기아 타이거즈 경기 시작 전 기아 박흥식 감독대행이 마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
지난 5월 17일 KIA는 자진사퇴한 김기태 감독의 뒤를 이어 박흥식 대행체제로 팀을 꾸려가고 있다. 박 대행이 자리를 맡은 후에 팀은 7연승을 질주했다.

조계현 KIA 단장은 새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박흥식 대행 체제로 올 시즌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 시즌을 통째로 맡게 된 박흥식 대행이다. 어설픈 감독보다 더 많은 경기를 책임지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내년에 그의 신분은 보장된 바 없다. 그게 바로 대행의 운명이다.

감독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진 대행, 절반도 살아남기 힘들다

KBO리그 역사를 통틀어 감독대행은 43명이다. 구단마다 겹치는 인물도 있다. 우선 두산이 7명(김성근, 이재우, 윤동균, 최주억, 유지훤, 김광수, 한용덕), KIA가 6명(조창수, 백기성, 유남호, 차영화, 서정환, 박흥식), 삼성이 4명(이충남, 정동진, 조창수, 장효조), LG가 5명(유백만, 한동화, 천보성, 김성근, 양승호), 한화가 5명(이희수, 유승안, 한용덕, 김광수, 이상군)이다.

그리고 SK가 2명(김준환, 이만수), 롯데가 7명(강병철, 도위창, 김명성, 우용득, 김용희, 권두조), 히어로즈가 1명(김성갑), NC가 2명(김평호, 유영준), 그리고 쌍방울이 3명(김준환, 김우열, 이종도), 삼미-청보-태평양-현대는 6명(이선덕, 이재환, 박현식, 신용균, 강태정, 임신근)이다.

이 중에서 대행이라는 불완전한 신분을 극복하고 감독 경험을 해본 인물은 19명, 44%에 불과하다.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감독과 가장 가까운 자리, 대행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해서 무조건 감독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출난 성적이나 지도력이 없다면 그대로 사라진다. 잘 풀린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그만큼 냉정한 것이 야구판이다.

대행 전문 지도자, 감독 됐지만 대행에게 자리 내줬다

감독이 시즌 도중 경질이 되거나 사퇴를 하는 경우, 곧바로 새 감독을 선임하지 않는 이상 대행이 임시로 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감독이 건강상의 문제로 갑자기 쓰러지거나 혹은 출장 정지와 같은 징계를 받은 경우에도 대행이 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있다.

타이거즈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응용 전 감독(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은 지난 1983년부터 2000년까지 18년간 사령탑을 맡았다. 재밌는 점은 18년 사이에 김응용 감독의 빈자리를 포함, KIA에서만 무려 다섯 차례나 대행 자리를 맡았던 인물이 있다. 바로 유남호 전 KIA 감독이다.

툭하면 주심에 손가락질을 하며 항의를 밥 먹듯이 했던 김응용 전 감독이 퇴장을 당하면 유남호 대행이 묵묵히 자리를 채웠다. 지난 1998년 9월 4일, 1999년 5월 1일, 2000년 9월 1일부터 3일, 같은 해 10월 5일까지 무려 네 번이나 대행을 했다.

감독과 대행, 스승과 제자, 김성근과 이만수

감독이 시즌 도중에 물러났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팀 성적이 좋지 못하거나 팀 전력이 약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갑작스레 팀을 맡은 대행이 짧은 시간에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대행이 대부분 대행에서 끝나는 이유다.

하지만 그 낮은 확률을 통과한 야구판 스승과 제자가 있다. 전 한화 감독 김성근이다. 지난 2001년 LG 이광은 감독은 9승 25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내고 시즌 도중에 경질됐다. 그리고 수석코치로 있던 김성근이 감독대행을 맡았다. 그 해, 5월 16일부터 10월 4일까지 김 대행은 98경기에서 49승 7무 42패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 진출은 실패했지만, 팀을 잘 추스른 공을 인정한 LG는 2002년 김성근 대행을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OB, 태평양, 삼성, 쌍방울 사령탑을 했던 김성근은 LG에서 다시금 감독의 자리에 오르며 그 해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김성근 감독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제자 이만수 전 SK 감독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SK를 이끌며 왕조를 구축했던 김성근 감독을 바로 옆에서 보좌했던 인물이 바로 이만수였다. 이만수 수석코치는 2008년 6월 19일 김성근 감독의 빈 자리를 채우는 대행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1년 김성근 감독이 도중에 물러나자, 이만수 코치는 그 해 8월 18일부터 10월 31일까지 SK 감독 대행을 맡아 19승 3무 18패의 성적을 기록했고 포스트시즌에서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팀을 이끌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2012년 정식으로 SK 사령탑 자리에 올랐고 2014년까지 팀을 맡기도 했다.

김성태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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