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시스템 갖춰, 제2의 황의조 찾겠다”

설기현 성남FC 전력강화실장.

지난 16일 K리그1 성남FC는 선수영입과 유소년선수 운영 체계를 총괄할 전력강화실장에 설기현(40) 전 성균관대 감독을 임명했다.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동점골의 주인공이자 벨기에, 잉글랜드 등을 거치며 성공적인 선수생활과 대학감독까지 거친 설기현의 성남행은 축구계에도 꽤 놀라운 소식이었다. 취임 이틀만인 18일 성남탄천종합운동장내 성남FC 사무실에서 설기현 전력강화실장을 만나 취임 후 첫 인터뷰를 가졌다.

쉴새없이 달려오다 휴식기 중 받은 제의… ‘해볼 만하겠다’ 싶어

2000년 벨기에 로열 앤트워프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벨기에 명문 안더레흐트, 잉글랜드 울버햄튼, 레딩, 풀럼에서 뛰며 세계 최고 무대에서 활약한 것은 물론 사우디 알힐랄, K리그 포항, 울산을 거쳐 2014년 인천에서 은퇴할 때까지 설기현의 선수커리어는 화려했고 성공적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경기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은 한국의 월드컵 4강신화를 가능케 했고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프랑스전 결정적인 크로스 등 국가대표로 설기현의 커리어는 흠잡을 데 없다. 한국 대표팀의 9번은 항상 설기현의 것이었다. 그런 설기현은 2014년 인천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성균관대 감독으로 바로 부임해 지난해까지 4년간 대학감독으로 지내며 지도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4년의 대학감독 생활을 마치고 P급 라이선스 등을 공부하며 휴식기를 가지던 중 이렇게 성남의 전력강화실장으로 부임하게 됐다. “선수생활을 마치자마자 바로 대학감독이 되는 바람에 한번도 휴식기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야 한숨 돌리나 싶던 찰나에 성남FC의 제의를 받았는데 솔직히 솔깃하지는 않았어요. 행정은 선수출신인 저와 방향이 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마침 제가 P급 라이선스 교육 때문에 일본에 있었는데 거기서 요코하마 마리노스, 우라와 레즈를 경험하면서 전력강화실장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습니다.”

일본은 전력강화실장의 역할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 각 프로팀마다 전력강화실을 통해 선수 스카우트와 유소년 시스템을 갖춰 체계적으로 선수를 영입하고 키워낸다. 설기현 실장은 “일본은 감독이 측면 수비수라도 빠르기보다 패스플레이를 할줄 아는 선수를 원하면 전력강화실에서 그런 선수만 추려서 선택권을 제공하더라. 분업을 통해 팀에 도움이 되고 선수의 가치를 끌어올린다면 이런 일도 충분히 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성남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밝혔다.

외국생활만 10년…경험 살리고 감독 철학에 맞는 선수 영입할 것

성남에서도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외국에서 프로생활을 10년이나 한 설기현 실장의 경험을 높게 사고 있었다. 그는 “외국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시스템을 체득했고 외국인 선수들이 겪는 경험을 누구보다 절감했습니다. 당시 전 한국인 선수인데도 K리그에서 뛰는데 적응기가 필요했고 한국 축구 문화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어요. 한국에 처음오는 외국인 선수는 오죽할까요. 적응할 시간과 이해심이 필요한게 외국인 선수죠”라고 했다. 설기현은 인천에서 뛰었던 케빈을 예로 들었다. 본국에서는 그의 피지컬 축구가 통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 축구에서는 먹혀 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압도적인 피지컬이 통했고 실제로 성공사례(K리그 136경기 45골 23도움)가 됐다”면서 “외국에서는 안통해도 K리그에서는 통할 선수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 감독 4년 동안 지켜봤던 선수들에 대한 정보도 큰 참고가 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재 남기일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통해 원하시는 스타일의 선수를 스카우트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감독님의 철학을 잘 이해해야죠. 열심히 하고 많이 뛰고 최선을 다하고 정신력이 강한 선수를 원하시는데 여기에 맞는 선수를 제가 잘 추려서 감독님에게 많은 정보와 선택지를 줄 수 있다면 감독님 역시 오직 팀에만 신경써 더 나은 성남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선진 시스템, 갖춰진다면 감독부터 편할 것…시스템 만들고 싶어

설기현 실장은 더 이상 주먹구구식 선수영입이 아닌 축구인 출신이 중심이 된 전력강화실을 두고 체계화된 포트폴리오 안에서 선수를 영입하는 스카우트 시스템을 갖춘다면 감독부터 편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해외에서 오래뛰며 너무 당연시되던 시스템을 갖춰도 선수 영입이 실패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선수 영입은 늘 쉽지 않기에 시스템을 갖춰야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죠. 시민구단은 더욱 그래야 하고요.”

2002 한일월드컵 멤버였던 이천수 역시 올시즌부터 인천 유나이티드의 전력강화실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천수 실장이 부임할 때 제가 ‘너가 잘해야 축구인들에게 또 기회가 생길거고 이런 선진 시스템이 자리 잡으니 잘해라’라고 했는데 저도 같은 상황이 됐죠. 전 축구인 출신이 이 역할을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전력강화실은 유소년 운영 시스템을 총괄하는 역할도 한다. 설기현 실장의 역할이 막중한 이유다. “사실 성남 유소년 시스템은 타구단에 비해 부족한게 사실입니다. 당장 수원 삼성, FC서울, 포항 스틸러스 등 유명하게 자리매김한 구단들에 비해 아쉽죠. 하지만 시간을 들여 시스템을 구축하면 제2의 황의조가 또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성남=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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