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부푼 6만 관중들 “날강두” 실망

7월 26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와의 친선경기에 결장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스포츠코리아 제공

“메시! 메시! 메시!” 팀 K리그와 유벤투스(이탈리아)의 친선경기가 열린 지난달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후반전 중반이 되자 관중석에선 이날 경기와는 무관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의 이름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유벤투스)가 후반전에도 좀처럼 경기에 뛸 생각을 하지 않자, 화가 난 관중들이 그의 라이벌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관중수는 6만3000여 명. 대부분은 세계적인 축구스타인 호날두가 뛰는 것을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향했고, 최고 40만원에 달하는 티켓 값도 기꺼이 지불한 팬들이었다. 그러나 호날두가 뛸 것이라는 6만 관중들의 기대는, 유벤투스와 호날두의 일방적인 계약 위반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엔 야유가 가득 찼다. 팬들에게 손 한 번 흔들지 않은 채 이탈리아로 돌아간 호날두에겐 ‘날강두’라는 별명이 붙었다.

유벤투스가 12시간 동안 저지른 일들

유벤투스가 방한을 추진한 것은 지난 5월. 당시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 경기가 취소되자, 급하게 한국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 페스타가 유벤투스의 제안을 받았다. 더 페스타는 유벤투스와 호날두의 45분 이상 출전 등을 골자로 한 계약에 나섰다. 이 계약서를 토대로 프로축구연맹(이하 연맹)과 협의했다. 연맹도 호날두의 출전이 K리그 붐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 더 페스타의 초청에 응했다. 그런데 경기 당일.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전세기를 타고 중국에서 날아온 유벤투스는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게 한국 땅을 밟았다. 예정됐던 킥오프 시간을 5시간여 앞둔 시간이었다. 공항엔 많은 인파가 몰렸는데, 호날두 등 대부분은 별다른 반응 없이 버스로 향했다. 남산에 위치한 호텔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팬 사인회엔 호날두가 돌연 불참했다. 그와 직접 만나 사인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린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뿐만 아니었다. 유벤투스 선수단이 경기장으로 향하던 길은 퇴근시간과 궂은 날씨가 맞물려 크게 지체됐다. 팬들은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경기는 예정된 시간보다 50분이나 늦게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경기시간을 90분이 아닌 80분으로 단축하자는 유벤투스 측의 무리한 요구마저 있었다. 그리고 호날두는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누비지 않았다. 전광판에 비춰진 그의 표정마저 잔뜩 굳어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유벤투스는 공식 기자회견마저 중간에 끊은 뒤 도망치듯 출국길에 올랐다. 남은 것은 팬들의 허망함, 그리고 분노뿐이었다.

무리였던 일정$ 무례했던 호날두

애초부터 무리였던 일정, 그리고 유벤투스와 호날두의 무례함이 맞물린 참사였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당일치기’ 일정은 유벤투스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기를 통한 입국 등 워낙 자신감을 내비친 터라 더 페스타와 연맹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은 안일함은, 유벤투스의 입국 지연과 맞물려 모든 것을 꼬이게 만들었다. 숙소마저 경기장 인근이 아닌 남산으로 잡으면서 동선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정 대부분은 유벤투스의 요구였다”는 더 페스타의 해명은 그만큼 저자세로 협상에 임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계약도 마찬가지였다. 호날두의 45분 이상 출전 조항은 계약서 상에 존재했다. 그런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의 위약금 규모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벤투스가 부담을 느낄 정도의 위약금이 아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벤투스와 호날두의 무례함도 축구 팬들의 분노를 샀다.

더 페스타 측은 “호날두의 경기 출전을 거듭 요청했는데도 ‘선수가 원치 않는다’는 답변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고 주장했다. 경기 시간을 90분에서 80분으로 단축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경기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협박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날두도 마찬가지였다. 팬 사인회에 돌연 불참한 것은 물론, 경기장에서도 팬들을 향해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앞서 중국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는 등 보여준 팬서비스는 전혀 없었다. 근육 부상을 이유로 결장했다던 그는 이탈리아 복귀 직후 보란 듯이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는 영상을 SNS에 올렸다. 그를 향한 분노는 더욱 커졌다.

사과 한 마디 없는 유벤투스와 호날두

피해자는 관중들이다. 호날두를 보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경기장을 향했지만, 정작 호날두가 뛰는 모습은 단 1분도 못 본 까닭이다. 이른바 ‘날강두’라는 표현까지 나온 배경이다. 일찌감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대상은 주최사인 더 페스타다. 이미 경기 티켓값과 정신적 위자료 등 1인당 107만1000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도 제기된 상태다. 법률사무소 명안 등 티켓값 환불을 위한 단체소송 움직임도 있다. 3000명이 넘는 팬들이 동참했다. 명안 측은 “채무불이행(불완전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티켓 구입금액 상당액의 반환요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연맹은 앞서 호날두의 결장과 여러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공식 서한을 유벤투스 측에 보냈다. 관련된 내용은 스페인 EFE통신, 영국 BBC 등 주요 외신들을 통해 전 세계로 전해졌다. 그러나 유벤투스 측은 안드레아 아넬리 회장 명의로 보낸 서한에서 ‘호날두는 의료진 조언에 따라 휴식을 취한 것일 뿐’이라며 ‘팬들을 무시하는 무책임하고 거만한 행동이라는 항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답했다. 김명석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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