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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야구소녀’ 김라경이 단어장을 놓지 못하는 이유

“야구도 공부도 모두 1등 할래요”
  • 한국 여자 야구 대표팀 김라경.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2018 세계여자야구월드컵. 비록 한국은 2승6패로 참가국 12팀 중 10위로 대회를 마감했으나, 여자야구의 현실과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던 의미 있었던 대회였다. 더불어 ‘에이스’ 김라경의 존재감도 돋보였던 대회였다. ‘천재 야구소녀’라 불리며 만 16세의 나이에 2016년 첫 야구 월드컵을 경험한 2000년생 김라경은 2년 후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에서 4경기(선발 1경기) 2승 1패 평균자책점 1.00(14이닝 2자책·정규 이닝 7이닝)이라는 준수한 활약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그는 삼진 19개를 잡아내는 기염을 토하며 대회 탈삼진왕에 등극, WBSC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렇게 김라경은 만 18세의 나이에 한국 여자야구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그로부터 1년 후, ‘천재 야구소녀’는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갓 스무살 대학생 새내기 김라경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야구 선수로서 매일 운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와중에 학교 성적까지 챙기기 위해 매일같이 도서관에 들른다. 방학인 현재도 오전 운동을 마치면 독서실에서 반나절을 보낸 뒤 다시 그라운드를 찾는 나날을 반복 중이다. 야구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일이다. 김라경은 여자 사회인 야구팀 서울 후라에서 뛰면서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데 힘썼고, 평일에는 경희대 야구팀 남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여기에 국가대표 합숙 훈련을 위해 주말 이틀을 반납하기까지 했다. 하루의 휴식일도 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 김라경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여자야구 선수로서 이렇게 많은 훈련 기회를 받는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여자야구 선수로서 한국에서 제대로 훈련하기는 쉽지 않아요. 다행히 대학 야구팀 감독님의 배려 덕분에 남자 선수들과 함께 더 체계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었죠. 감독님이 오히려 ‘야구계에 있으면서 라경이와 같은 선수를 만나게 돼 영광이고 감사하다’라고 해주셔서 엄청 감동이었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무엇보다도 지금의 김라경을 있게 해 준 사람들 중 그의 오빠 김병근(전 한화-질롱코리아)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어렸을 때부터 오빠의 경기를 따라다녔던 김라경은 야구에 관심이 생겨 선수의 꿈을 키우게 됐고, 오빠 김병근은 미미한 여자야구 환경에 처음엔 반대했지만 이제는 든든한 조력자로 나서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는 야구 선배가 됐다. 최근 지도자를 준비하고 있는 김병근은 잠시 휴식기를 갖고 김라경의 옆에 붙어 든든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그렇기에 김라경에게 오빠의 존재는 애틋할 따름이다. 김라경은 항상 오빠를 생각하며 모자에 오빠의 이니셜(B.G)을 새겨놓고 있다. 그의 등번호 ‘29번’도 김병근이 프로에 데뷔했을 때 달았던 등번호와 같은 번호다. “오빠는 제 야구 인생을 만들어준 은인이죠. 지금 제 폼을 완성시켜준 것도 오빠고, 슬럼프와 부상 온갖 것들을 겪고 멘붕에 빠졌을 때 돌봐준 것도 오빠예요. 오빠가 자기 때문에 힘든 길을 걷는 것 같다고 자책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이고 오빠 덕분에 더 열심히 살고 새로운 꿈도 꿀 수 있게 됐어요. 너무 자책 안 했으면 좋겠어요.”

김라경이 말한 새로운 꿈이란 무엇일까. 지난해 월드컵에서 WBSC 측에서 진행한 세미나에 참가한 김라경은 여자야구계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일본 여자야구의 시스템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이를 한국 여자야구에 접목시켜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다는 열정이 생겼다. “우리나라 여자 야구가 발전하고는 있지만 아직 환경이 많이 부족하잖아요. 저도 그 중심에 서 있는 입장에서 아무 것도 안 한다면 제자리걸음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선진 야구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고, 아무래도 일본 여자야구가 선진화돼 있으니까 이를 배워서 우리나라에 접목시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죠.” 김라경의 시선은 여자야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김라경은 최근 스포츠 외교와 행정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스포츠 행정가로서 엘리트와 생활스포츠를 구분 짓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함께 내비쳤다.

이 때문에 김라경은 공부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인터뷰를 위해 잠시 짬을 내 카페로 오는 중에도 한 손엔 깜지 영어 단어장을 꼭 쥐고 있을 정도로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김라경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은 먼 이야기. 갓 스무 살인 김라경에게는 아직 야구선수로서의 꿈이 남아 있다. 그러나 어린 나이의 김라경이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한국 여자야구의 미래라는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따라 다니지만, 그만큼 부담감과 책임감이 따라올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그는 꿋꿋했다. 오히려 김라경은 후배들을 위해 그 길을 잘 닦아놓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불태웠다.

“선수로서 일본 프로야구(여자 프로야구가 있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에 도전하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자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많은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인 야구가 끝(커리어의 정점)이기에 반대하는 부모님들이 많거든요. 제가 또 다른 ‘끝 지점’을 만들어주고 싶어요.”한편, 김라경은 오는 22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리는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를 위해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라경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대회다. 이전 두 번의 대회에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5년 첫 대회에서는 만 14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국가대표에 뽑혔지만 큰 도움을 주지 못했고, 2017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고전했다.

하지만 이 두 번의 대회를 거울삼아 철저한 몸관리를 해온 김라경은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팀에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지난해 월드컵에서 최고 시속이 115km까지 나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구속보다 제구력과 테크닉으로 상대 선수를 요리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앞선 두 대회 덕분에 몸관리의 중요성을 알게 됐는데, 이번 대회만큼은 건강한 모습으로 팀에 도움이 되는 김라경의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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