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에도 ‘금수저’ 대물림?

이종범(오른쪽)-이정후 부자.

2003년 마이클 루이스의 베스트셀러 ‘머니볼’에서 저예산에도 야구의 진정한 이면을 찾아내 성공을 거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빌리 빈 단장의 성공스토리는 독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급기야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며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까지 오르자 ‘머니볼’은 단숨에 야구단 운영의 ‘바이블’로 자기매김하며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야구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머니볼은 이제 레드오션에 진입했다. 모든 팀들이 고학력 젊은 야구광들을 영입해 숫자를 통해 야구에 접근했고 테오 엡스타인(시카고 컵스 사장), 앤드류 프리드먼(LA다저스 사장) 등 빌리 빈보다 더 어리고 유능한 인물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렇다면 머니볼 이후 야구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최근 야구계는 ‘혈통볼’이 단연 대세다.

아들 캐번 비지오_아버지 크레이그 비지오.

‘명예의 전당’ 게레로-비지오 아들, ML서도 최고 유망주

박찬호 전성기 때 맨손으로 거머쥔 배트로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져나가는 어떤 투구도 쳐내던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기억하는가. 2018년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게레로에 대한 팬들의 기억이 여전히 또렷한 가운데 대를 이어 그의 아들이 메이저리그 ‘No.1 유망주’로 각광받고 있다. 통산 2590안타-449홈런-타율 3할1푼8리의 게레로의 아들인 게레로 주니어는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MLB닷컴 등 모든 유망주 평가 사이트에서 마이너리그 유망주 전체 1위에 뽑혔다. 게레로의 메이저리그 데뷔는 올해 메이저리그 최고 뉴스 중 하나였고 9월 17일 현재 114경기에 나서 눈부신 성적(타율 0.269 출루율 0.340 장타율 0.441 15홈런 65타점)을 뽐내며 아메리칸리그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게레로가 속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는 또 다른 2세 선수가 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현역 시절 3060안타를 때려낸 크렉 비지오의 아들 캐반 비지오는 아버지가 뛰었던 2루수 포지션에서 맹활약 중이다. 비록 타격 성적은 부진하지만(88경기 타율 0.221 출루율 0.356 장타율 0.399 13홈런 11도루) 준수한 수비력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박찬호에게 한 경기 만루홈런 두개를 터뜨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페르난도 타티스의 아들인 타티스 주니어도 올해 등장하자마자 84경기에서 22홈런을 때려내고 타율도 3할1푼7리, 장타율 5할9푼을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하고 있다. 이미 메이저리그는 바비 본즈-배리 본즈 부자, 켄 그리피 시니어-켄 그리피 주니어 부자, 세실 필더-프린스 필더 부자, 클레이 벨린저-코디 벨린저 부자 등 부자 선수들의 활약이 어색하지 않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 최고 유망주 각광받는 장재영-신지후

한국 역시 메이저리그처럼 ‘혈통볼’이 조금씩 눈에 띈다. 이미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가 ‘바람의 손자’로 2017년 신인왕을 수상한 바 있다. 한시즌 84도루, 40(홈런)-40(도루)을 기록했던 이종범의 아들답게 이정후는 2017년 역대 신인 최다 안타-득점 기록을 갈아치우고 역대 첫 고졸 신인 전경기 출전을 하기도 했다. 이정후의 소속팀 키움 히어로즈의 장정석 감독의 아들 역시 각광받고 있다. 지난 8월 30일 개막한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4번 타자로 활약한 장재영(덕수고)이 바로 장 감독의 장남이다. 타자로도 대표팀 4번 타자지만 투수로도 150km 이상을 뿌리기에 내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이 예상된다. 이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도 지켜보고 있다. 한화 포수로 활약했던 신경현 전 코치의 아들 신지후(북일고) 역시 지난 8월 26일 열린 202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한화의 유니폼을 입었다. 포수였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장신투수로 각광받고 있다.

혈통볼? 야구계 금수저 대물림인가

이렇게 대단했던 야구선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 선수들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어린시절 그 누구보다 야구에 쉽게 접하는 것은 물론 전문전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타티스 주니어는 “야구에 대한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배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의 집 혹은 가까운 훈련장에 야구 훈련을 위한 최적의 시설이 갖춰져 있고 아버지를 따라 훈련장을 드나들다 보면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역 야구선수가 직접 과외를 해주는 셈이다. 또한 선천적인 선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야구선수를 할 정도로 운동재능이 명확하면 자연스레 2세 역시 그런 재능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일반인간의 결합보다 높다. 재능없이 살아남기 힘든 스포츠계에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은 큰 이점이다. 게다가 성공한 야구선수의 경우 집안의 경제상황 역시 넉넉할 것이기에 오직 야구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혈통볼’이 두드러지면서 야구계에도 ‘금수저’가 대물림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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