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신임 감독 선임, 달라진 트렌드

허삼영 삼성 감독.

아무나 할 수 없는 자리, 흔히 ‘대권’이라 표현하는 대한민국에 딱 열 명뿐인 직업, 바로 프로야구 감독이다. 과거에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선수단을 장악하는 리더십, 야구를 잘했던 선수 시절의 뛰어났던 커리어가 감독의 필수 자격 조건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풍토가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야구도 이제는 감의 시대에서 데이터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 감독 선임 역시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지난 9월 30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이 삼성에서 터졌다. 삼성은 계약기간이 끝나는 김한수 감독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고 새 사령탑으로 허삼영 전력분석팀장을 택했다. 프로야구 원년 구단의 자존심, 그리고 대구라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지역적 특색, 여기에 통합 4관왕이라는 명가의 그 삼성이 그야말로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여러 슈퍼스타 출신 코치들이 감독 하마평에 올랐지만 삼성은 코치 경험이 전무한 무명의 허삼영을 택했다. 선수 출신이지만 1군 통산 출전이 딱 4경기다. 1993년에 1경기, 1995년에 3경기 출전이 전부다. 대신 은퇴 후, 프런트에 합류했고 전력분석에 몰두하면서 삼성의 시스템 구축에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삼성 홍준학 단장은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선수들과의 소통에 능했다. 현재 팀의 전력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상대의 전력 파악에도 능한 인사를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라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슈퍼스타 커리어는 감독의 필수조건? 이제는 옛말

선수 시절에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지도자로 변신,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감독이 KBO리그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간 몇몇 감독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현 SK 사령탑 염경엽이다. 염 감독의 선수 시절 커리어는 평범했다. 인천을 연고지로 했던 태평양을 시작으로 현대를 거쳐 10년을 뛰었지만 통산 타율은 1할9푼5리에 그쳤다. 말 그대로 수비 ‘원툴’이 전부였다. 하지만 염 감독은 은퇴 후, 자신이 잘하는 것에 매진했다. 지도자 커리어 대신 프런트를 택했다. 현대, 그리고 LG를 거쳐 전력 분석, 스카우트, 운영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넥센에서 코치를 하다가 2013년 감독으로 전격 선임이 됐다. 난리도 아니었다. 스타 출신도 아니었고 코치 경력도 짧았다. 슈퍼스타 출신이 아니면 감독은 꿈도 못 꾸는 자리였던 당시 풍토에서 염 감독의 발탁은 파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을 보기 좋게 깼다. 넥센은 2013년 팀에 창단 첫 가을야구를 선사했고 2014년은 한국시리즈에 진출, 준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과 2016년 모두 팀을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끌었다. 이후 SK 단장을 거쳐 올해 SK 감독으로 다시 현장에 복귀했고 2위로 마감했다.

염 감독을 시작으로 무명 감독의 파격을 이어간 인물이 바로 현 장정석 키움 감독이다. 현대와 KIA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했지만 백업으로 활약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은퇴 후, 현대 프런트에서 기록원을 시작으로 선수단 매니저, 운영팀장을 거쳤고 2017시즌에 히어로즈 감독이 됐다. 코치 경험이 전무했다. 첫해,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자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장 감독은 2018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와일드카드, 준플레이오프에 이어 플레이오프까지 팀을 이끌며 오히려 단기전에 약했던 염 감독과 반대되는 모습으로 찬사를 이끌어냈다. 올해 역시 3위로 시즌을 마감,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올해 NC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동욱 감독도 마찬가지다. 롯데에서 7년 선수 생활을 한 것이 전부였다. 은퇴 후, 롯데 전력분석관으로 활약했고 2012년부터 NC 창단 멤버로 합류, 2군 수비 코치를 시작으로 감독까지 올랐다. NC는 이동욱 감독만큼 팀을 잘 아는 인물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작년까지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던 팀을 단숨에 5위로 만들며 1년 만에 팀에 가을야구를 다시 선물했다. 선수 시절의 화려했던 경력을 앞세운 슈퍼스타 출신 감독이 연신 무너지는 가운데, 평범한 무명 출신의 감독이 오히려 대세 중의 대세가 됐다.

감과 이름의 야구에서 데이터와 소통의 야구, 무명 감독 전성 시대

무명이지만, 이들은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선수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야구의 흐름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반응했다는 점이다. 사람이 하는 스포츠지만, 데이터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전력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메이저리그 방식의 선진 야구를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팀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그 팀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라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 프런트 경험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기에 현장과의 괴리감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팀과 프런트의 균형을 맞추는데 능했다. 더불어 외부 인사와 달리 매니저 경험에 운영팀, 그리고 스카우트 팀을 차례로 거쳤기에 선수들과의 거리가 가깝다. 소통에 능하기에 선수를 읽을 줄 안다. 이들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이전 카리스마 넘치는 슈퍼스타 출신 감독과 그 결이 매우 다르다. 사령탑을 선택한 삼성에 이어 롯데 역시 성민규 신임 단장을 필두로 개혁에 돌입, 외국인 감독 후보 명단을 공개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야구를 보는 팬들의 눈높이와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그저 감과 이름으로 하는 야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저무는 스타 감독, 그리고 새롭게 뜨는 무명 감독, KBO리그의 새 트렌드다.

김성태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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