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강.

사람은 모두 제각각의 바이오 리듬을 갖고 있다. 태양과 달의 운행, 지구 자전에 따른 계절과 기상의 변화에 따라 우리 몸도 일정한 주기를 갖고 리듬을 탄다. 여기에 심리적 리듬까지 가세한다. 파도가 치듯 우리 몸과 마음의 리듬도 골과 마루를 이루며 오르락내리락한다. 늘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일은 없다. 심장 박동이 멈추면 파동이 사라지고 긴 선으로 나타난다. 우리 몸과 마음이 출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골프선수라면 누구나 기복 없는 경기를 갈망한다. 한결같이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상승기류를 타다가도 급전직하로 추락한다. 훌륭한 선수란 상승과 하락의 진폭을 좁힐 줄 아는 선수다. 추락했다가도 수렁에 빠지지 않고 다시 절벽을 오를 줄 아는 선수다. 재미교포 다니엘 강(27^한국이름 강효림)이 지난 10월 20일 중국 상하이 치종 가든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뷰익 LPGA 상하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마침 스물일곱 번째 생일에 거둔 우승이라 더욱 값졌다. LPGA투어 통산 3승째다.

다니엘 강의 골프는 색깔이 독특하다. 늘 파이팅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골프 자체를 즐긴다. 적당히 분노도 표출하지만 불길에 휩싸이지 않는다. 샷과 샷 사이의 무궁무진한 틈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쉴새 없이 캐디와 대화를 나누고 갤러리들과 교감한다. 이번 대회에서 그의 출발은 무난했다. 1라운드에서 양희영과 하타오카 나사(일본)가 5언더파, 제시카 코다와 엔젤 인(미국)이 4언더파로 선두그룹을 형성했고 다니엘 강은 3언더파로 브룩 핸더슨, 리디아 고, 제니퍼 쿱초 등 7명의 공동 5위 그룹에 포함되었다. 라운드가 더해질수록 선두 바뀜이 심했다. 2라운드에서 양희영과 하타오카 나사가 뒤로 밀리고 대신 브룩 핸더슨(11언더파)과 제시카 코다(9언더파)가 치고 올라왔다. 다니엘 강은 8언더파로 조용히 선두그룹을 뒤따랐다. 3라운드에서 브룩 핸더슨(12언더파)의 기세가 주춤하자 제시카 코다(15언더파)와 다니엘 강(14언더파)이 1, 2위에 올라섰다.

마지막 4라운드에서 리듬을 탈 줄 아는 다니엘 강의 진가가 드러났다. 보기 없이 버디 2개를 건져 타수를 줄이지 못한 제시카 코다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역전 우승했다. 2017년 메이저대회인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LPGA투어 첫 우승을 신고한 그는 작년 이 대회에서 13언더파 275타로 초대 챔피언에 오른 데 이어 2연패에 성공했다. 한국선수로는 빨간 바지를 입고 나온 김세영이 12언더파로 6위에 올랐고 기대를 모았던 고진영은 9언더파 공동 9위, 양희영, 이정은6, 김효주가 3언더파로 공동 24위에 머물렀다.

2017년 LPGA투어 진입 7년 만에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극적으로 우승했을 때 그와 관련된 사연이 골프 팬들의 마음을 울렸다. 최운정과의 혼전, 브룩 핸더슨의 맹추격 등 우승에 이르는 과정도 볼 만했지만 그의 오른손 검지에 새겨진 ‘Just be’(있는 그대로가 되어라)라는 문신과 오른손 손등에 새겨진 ‘아빠’라는 문신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버지 권유로 태권도 골프와 인연을 맺으며 자연스럽게 아버지로부터 삶의 철학을 전수받았다. 그 철학이 ‘Just be’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딸을 골프선수로 대성시킬 욕심의 아버지라면 입버릇처럼 연습과 체력 단련, 도전 정신, 승부 근성 등을 강조했을 터인데 ‘Just be’라는 화두를 주었다니 부녀관계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있는 그대로의 네가 되어라’라고 말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분야에서든 구속되거나 휘둘리지 않는 독립된 자아로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라는 뜻일 터인데 아버지의 가르침을 손에 문신으로 새긴 다니엘 강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2010년 2011년 연속 US 여자 아마추어챔피언십에 오르며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던 그는 2011년 LPGA투어 Q스쿨을 거쳐 조건부 출전자격을 얻어 2012년부터 LPGA 투어에 뛰어들었으나 2012년 킹스밀 챔피언십 공동 3위를 빼면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2013년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Just be’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외에 ‘아빠’라는 작은 문신을 더한 것을 보면 그의 자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3년 연속 승수를 쌓으며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는 다니엘 강이 독특한 골프 색깔이 보이는 것도 ‘Just be’의 철학을 골프에 녹여내기 때문이 아닐까.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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