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Tower of Babel)은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과 욕망을 상징한다. 인간들은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탑 쌓기에 도전하지만 신이 노해 인간에게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도록 벌을 내린다. 인간들은 말이 통하지 않자 결국 탑 쌓는 데 실패하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바벨이 히브리어로 ‘신의 문’이라는 뜻이니 바벨탑은 신의 영역을 탐하는 인간의 도전인 셈이다.

(43)가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다. 한참 앞선 골프영웅들이 세운 것보다 더 높은 바벨탑을 쌓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일본 지바현 인자이시의 아코디아 골프 나라시노CC(파70)에서 막을 내린 2019-2020시즌 PGA투어 조조 챔피언십에서 는 영락없이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 바빌론에서 바벨탑을 쌓는 노아의 후손을 연상시켰다. 첫 라운드부터 선두로 나선 그는 악천후로 중단되었다 재개되는 경기일정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경기를 펼쳐 최종합계 19언더파 261타로 PGA투어 통산 82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82승은 20세기 세계 골프를 풍미한 샘 스니드(1912 ~2002)의 PGA투어 최다승 기록과 타이다. 지난 4월 마스터스에서 메이저 대회 통산 15승이자 PGA투어 통산 81승째를 거둔 이후 약 6개월 만에 이룬 위업이고 프로 데뷔 24년 만이다. 7살의 흑인 소년이 극적으로 샘 스니드를 만난 지 37년 만에 불멸의 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1982년 캘리포니아의 한 골프코스에서 백발이 성성한 70세의 샘 스니드가 자선 골프행사를 개최했다. 기부금을 낸 참가자들에겐 2홀을 샘 스니드와 라운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아버지와 함께 이 행사에 참가한 어린 우즈는 파 3홀 티샷을 해저드에 빠뜨렸다. 물에 반쯤 잠긴 볼을 보고 샘 스니드는 우즈에게 드롭해서 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우즈는 미소를 지으며 스니드를 바라본 후 물에 잠긴 볼을 그대로 쳤다. 그리고 멋지게 온 그린에 성공했다. 그런 우즈를 보며 샘 스니드는 “음, 골프를 잘 치겠군”하고 격려했다. 살아있는 전설과 어린 소년은 모두 불멸의 대기록을 함께 할지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샘 스니드의 82승은 23세 때인 1936년부터 52세 때인 1965년까지 29년 동안 거둔 것이다. 는 20세 때인 1996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82승을 거두는 데 23년이 걸렸다. 샘 스니드보다 6년 앞당겨 82승을 달성했다. 이는 의 나이가 지금 만 43세이니 PGA투어 최다승 기록 수립은 물론 몇 세에 90승을 돌파할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라는 의미다. 조조 챔피언십에서 보인 의 경기력을 보면 구름 속에서 전설들을 내려다 보겠다는 그만의 바벨탑 꿈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경기 내내 그의 눈은 이글거렸고 한 샷 한 샷에 혼신을 다했다. 위대한 조각가가 작품을 빚듯 열정이 타올랐고 목숨을 건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용맹스러웠다. 샘 스니드의 최다승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전설의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79)의 메이저 최다승 기록(18)까지 넘어서겠다는 욕망이 불타는 듯했다.

는 이미 니클라우스의 PGA투어 통산 기록(71승)은 일찌감치 지나쳐 사실상 메이저 3승만 보태면 골프 역사상 가장 높은 바벨탑을 세우게 된다. 신에겐 도전이고 위협으로 보이겠지만 그로선 유일한 골프 황제로서 역사에 영생하게 될 것이다. 골프선수들의 활동 기간이 갈수록 길어지는 추세라 부상을 피하며 체력관리만 잘 한다면 그의 바벨탑 꿈은 결코 지나친 욕심이 아니다. 그에겐 성 추문과 이혼, 고질적 부상으로 골프 인생이 끝났다는 시선을 극복하고 여러 차례 재기 성공하며 황제의 귀환을 성공한 경험도 있어 그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동기와 동력은 충분한 셈이다. 니클라우스가 메이저 18승을 기록한 때가 46세 때이니 43세의 우즈에겐 3년이나 여유가 있는 셈이다. 이번 대회에서처럼 우즈가 체력과 기량을 잘 가다듬기만 한다면 니클라우스의 기록마저 넘어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바벨탑을 완성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잭 니클라우스나 함께 경기했던 로리 매킬로이, 토니 피나우, 게리 우들랜드 등이 다투어 축하 메시지를 띄우는 것도 의 바벨탑 실현 가능성을 믿고 또 염원하기 때문이리라. 이번 우승으로 세계랭킹도 6위로 뛰어 오는 12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미국과 인터내셔널팀(유럽 제외)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 대회에서도 단장인 우즈가 선수로 뛸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우즈의 불꽃 같은 플레이로 가려졌지만 홈팬의 응원을 받으며 우즈를 추격하다 3타 차 단독 2위에 오른 마쓰야마 히데키(27), 지난 시즌 신인왕 출신으로 로리 매킬로이(30^북아일랜드)와 함께 공동 3위에 오른 임성재(21)의 플레이도 인상적이었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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