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왼쪽).

선수들에겐 ‘천사’, 구단에겐 ‘악마’로 불리는 사나이, 메이저리그 역사에 전설로 남은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10년 2억5200만달러(약 2911억원· 2001년)라는 초대형 계약을 이끈 최고의 에이전트. 박찬호와 추신수의 대박 계약을 주도한 인물이자 2020시즌을 앞두고 열린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에서 게릿 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앤서니 렌던, 류현진을 보유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 0순위로 언급되고 있는 스캇 보라스, 과연 그는 누구인가.

마이너리그에서 4년 버틴 선수 출신 변호사, ML 역사를 바꾸다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보라스는 ‘선수출신’ 변호사다. 197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로부터 무려 3라운드(전체 56번)의 꽤 높은 순위에 지명받은 내야수였다. 더블 A까지 올라갔던 보라스는 4년간 마이너리그 생활을 했지만 무릎 부상과 기량 미달 등을 이유로 야구를 포기해야 했다. 메이저리거의 꿈을 접은 보라스는 인생을 진로를 바꿔 약학대학을 나와 로스쿨까지 졸업한다. 그리고 선수시절 경험했던 구단의 불합리성에 대한 반발심과 선수출신의 이점을 살려 에이전트 일을 시작한다. 고작 나이가 28세였던 1980년 에이전트 일에 뛰어든 보라스는 선수출신 변호사라는 특이한 경력을 앞세워 곧바로 업계의 큰손이 된다. 에이전트를 시작한 지 4년 만인 1983년, 투수 빌 카우딜에게 1년 750만 달러(약 87억원)라는 지금 봐도 거액을 안기며 명성을 탄 보라스는 메이저리그 계약의 역사를 새로 썼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50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고(1997년 그렉 매덕스 5년 5750만달러), 최초의 1억 달러 계약(1998년 케빈 브라운 7년 1억500만 달러)을 실현시켰으며 최초의 2억 달러 계약(2000년 알렉스 로드리게스 10년 2억5200만달러)을 체결한 주인공이 바로 보라스다. 보라스가 거의 1년 단위로 5000만달러, 1억 달러, 2억 달러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연스레 전체 선수들의 연봉 수준의 눈높이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메이저리그 계약 체결의 트렌드 자체를 바꿨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지난 2014년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전 세계 스포츠 에이전시 중 가장 가치 있는 에이전시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부터 박찬호, 추신수까지$ ‘대박 청부사’

보라스의 계약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2000년 체결한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텍사스 레인저스간의 10년 2억5200만 달러 계약이었다. 당대 최고 선수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안긴 이 초대형 계약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12년이 지난 2012년 알버트 푸홀스를 통해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당시 푸홀스는 LA에인절스와 2억 40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그의 무용담 뒤에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두둑한 배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라스는 1997년 당시 ‘백인 켄 그리피 주니어’로 평가받던 초대형 신인 J.D 드류에게 걸맞은 금액이 나오지 않자 독립리그에서 뛰게 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또 2018년 1라운드에 지명된 카터 스튜어트에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만족할 금액을 주지 않자 계약을 포기하게 하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게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결단도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 팬들에게는 박찬호를 ‘박사장’이라는 별명을 안겨준 당사자로 유명하다. 박찬호는 FA를 앞두고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고 2002시즌을 앞두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500만달러라는, 엄청난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켰다. 박찬호의 입단식에는 보라스의 고객이자 텍사스 핵심인 로드리게스가 보라스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보라스는 2013시즌이 끝난 뒤 FA가 된 추신수에게 텍사스와 7년 1억 3000만 달러의 당시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계약을 맺게 하기도 했다.

보라스의 빛과 그림자

이런 보라스에게도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워낙 선수들에게 받을 수 있는 이상의 최고의 계약을 안기다보니 ‘선수들에게 천사, 구단에겐 악마’라는 명성은 이미 유명하다. 선수에게 많은 돈을 안기는 것이 에이전트의 능력이라면 보라스의 실력은 분명 최고다. 그런 그의 명성을 잘 알기에 1980년 에이전트일을 시작해 내년이면 40년 경력임에도 올 FA시장에서 1,2,3위로 평가받는 게릿 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앤서니 렌돈이 모두 보라스의 고객으로 대박을 꿈꾸고 있다. 반면 지나치게 선수에게 최고의 계약만을 강요하다보니 선수가 진정 원하는 팀을 홀대한다는 지적도 있다. 2008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옵트아웃 후 뉴욕 양키스와 다시 10년 계약을 할 때 구단 위에 군림하려다 로드리게스가 이같은 협상방식에 질려 보라스를 해고하고 양키스가 원하는 금액에 맞춰 계약을 체결한 일화도 있다. 김병현도 박찬호의 추천을 받아 메이저리그 시절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지만 ‘1년간 보라스의 얼굴을 본적이 없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박찬호도 텍사스와 5년 계약이 끝날 때 보라스를 해고했는데 ‘내가 힘이 떨어지는 선수가 되니 날 신경쓰지 않더라’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보라스는 A급 선수가 아닌 선수에 대해서는 극도로 홀대했다. 그의 눈에는 선수는 곧 돈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류현진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A급 선수로 분류되고 보라스도 ‘1억 달러 이상의 대형 계약을 맺겠다’고 벼르고 있다. 과연 보라스는 류현진에게 어떤 계약을 안기게 될까. 박찬호에 이어 추신수, 그리고 류현진까지 ‘대박 계약’을 맺게 할 수 있을지, 보라스의 행보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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