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 돌풍에도 ‘옥중경영 논란’ 희생양

장정석 감독. 스포츠코리아

5년 만의 한국시리즈, 비록 두산에 4전 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키움 히어로즈로선 최고의 한 해였다. 가을야구에서 보여준 장정석 감독의 파격적인 선수기용, 화끈한 승부수는 보는 이들을 열광케 했다. 마침 이번 시즌은 사령탑 장정석 감독의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다.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돌풍을 생각하면 장정석 감독의 재계약은 떼논 당상이었다. 지난 2017년 부임 이후 팀 순위를 꾸준히 상승(7위→3위→2위, 포스트시즌 결과 기준)시키면서도, 데이터 야구와 함께 탄탄한 선수층을 구축하면서 팀을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장정석 감독에 대한 여론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파격 반전이 일어났다. 키움이 장정석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손혁 전 SK 투수코치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키움은 외국인 지도자 2명과 국내 지도자 3명을 상대로 감독 면접까지 본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에 장정석 감독은 이 후보군 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명목은 재계약 불발이지만 사실상 경질이나 다름없는 처사에 파문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내고도 팀과 결별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갑작스러운 교체의 이유는 무엇일까.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만큼 파격적인 선택이었고, 키움이 한동안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었기 때문.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형식적인 대답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구단은 장정석 감독과의 재계약 불발 이유를 밝혔다. 감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장 감독 재계약과 관련해 옥중에 있는 이장석 전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 키움 구단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옥중에서 장정석 감독과의 재계약을 지시하는 녹취록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여기에 장 감독이 이장석 전 대표를 직접 접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장석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수십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KBO로부터는 영구실격 조치를 받아 구단 경영에도 참여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경우 구단은 물론 임직원까지 강력 제재를 받는다. 구단이 민감해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이장석 전 대표가 오래전부터 옥중에서 구단 경영은 물론 경기 전술까지 지시를 내린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논란을 빚어왔다. 이 같은 의혹에 장정석 감독은 취임 초기 ‘바지사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감독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포스트시즌 돌풍에도 옥중경영 연루설에 재계약 불발

구단은 이전부터 해당 의혹에 대해 완강히 부인해왔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이 실체화되면서 그간의 의혹을 인정했다. 의혹이 제기된 이상, 키움과 장 감독의 결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장정석 감독이 오히려 피해자라는 주장도 오르내리고 있다. 구단의 주장에 따르면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 관련 녹취 파일들은 모두 임은주 부사장이 가지고 있다. 축구 심판 출신인 임 사장은 지난 9월 감사위원회에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 정황을 처음으로 신고한 인물이다. 구단 감사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조사에 착수해 일부 사실을 확인한 뒤 박준상 전 대표이사를 교체한 바 있다. 임 부사장의 녹취 파일 제보가 결정적이었다. 이번 장정석 전 감독 재계약 관련해서도 키움 구단은 해당 녹취 파일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구단의 공식입장과 달리, 임 부사장은 장 전 감독 재계약 관련 녹취 파일은 없었고, 구단의 발표는 모두 거짓이라고 완강히 부인했다. 장정석 감독의 미계약 파문이 진실게임으로 번지는 순간이었다.

녹취 파일은 장 전 감독이 옥중경영에 연루가 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자료다. 상황에 따라 장 감독은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의 연루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구단은 해당 파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공식입장문에서도 ‘감사위원회는 이 녹취파일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중략) 장 전감독과 재계약을 진행할 경우 해당 녹취록까지 공개되고, 사실여부를 떠나 문제시 될 것으로 예상했다’라고 적혀있다.. 이 상황에서 임은주 부사장이 해당 녹취 파일이 애초에 없다고 부인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정말 해당 자료가 없다면, 키움은 ‘의혹’만으로 장 전 감독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한 꼴이 된다. 고스란히 그 피해는 장정석 전 감독에게 돌아간다. 본인 확인 절차 역시 없었다는 것도 드러나면서 장 전 감독만 억울한 상황이 됐다. 이때문에 장정석 감독이 구단 임원들의 정치 싸움에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확증 없는 루머의 희생양 된 장정석

현재 키움은 경영진의 대대적인 개편이 진행 중이다.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가 키움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한 이후,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 논란에 연루된 박준상 전 대표를 하송 대표로 교체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의혹을 제기한 임은주 부사장도 오히려 옥중경영 연루를 이유로 직무를 정지시켰다. 이장석 전 대표의 인사들을 하나둘씩 교체하고 있는 키움이다. 장정석 감독은 이 전 대표가 대표이사 시절 선임했던 인사다. 구단의 기업 경영을 견제하는 자리인 사외이사로도 등록된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허민 이사회 의장과 하송 대표가 대대적으로 ‘이장석 색깔 지우기’에 나서면서, 장 감독이 연루자가 아님에도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최근 수 년 간 히어로즈는 이장석 전 대표와 관련해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특히 KBO에서 영구실격 조치가 됐음에도 구단 경영에 간섭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확실히 척결돼야 하고 정리돼야 하는 문제다. 다만 그 여파가 현장에까지 이어지는 것이 문제다. 경영과는 별개로 장정석 전 감독은 키움을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은 핵심인물이었다. 하지만 구단의 예우와 배려없이 쓸쓸히 퇴장했다. 윤승재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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