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톱 찍고 이제 시선은 미국으로

지난 8일 충남 천안에 위치한 우정힐스CC에서 열린 'ADT캡스 챔피언십 2019' 1라운드에서 최혜진이 3번홀 티샷을 하고 있다.연합

지난 2017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US오픈을 직접 관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아마추어 선수가 공동 선두로 달리고 있다. 이는 몇십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매우 흥미롭다”라는 글을 남겼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트럼프가 작성한 글은 삽시간에 퍼졌다. 미국 대통령의 이목을 집중시킨 선수, 그것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한데 모인 US오픈에서 선두 경쟁을 하는 아마추어라니, 전 세계의 이목이 모였다. 그리고 그 선수는 준우승을 따냈다. 주인공은 당시 만 18세의 평범한 여고생, 바로 최혜진(20) 이었다. US오픈 준우승을 시작으로 한국여자골프의 차세대 주자로 등극한 최혜진은 2018년에 곧바로 프로에 데뷔, 스타가 됐고 2년째인 올해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를 완벽하게 정복, 전관왕에 오르며 스타를 넘어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것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정복했다. 말 그대로 ‘최혜진 천하’다.

샛별에서 스타, 떡잎부터 달랐던 최혜진의 행보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미 ‘괴물’로 불렸다. 2013년 15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KLPGA 무대에 뛰어들더니 2015년과 2016년 롯데마트 오픈에서 2년 연속 4위에 올랐다. 그렇게 2017년 6월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 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LPGA US오픈 준우승, 8월 보그너 MBN 여자오픈 우승까지 따냈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KLPGA에서 2승 이상을 거둔 선수 중에 ‘전설’ 박세리가 있다. 1995년에 무려 4승을 따냈다. 최혜진도 2승을 따냈다. 최혜진의 태극낭자 ‘계보 잇기’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 그 해 8월, 프로로 전향한 최혜진은 데뷔와 동시에 롯데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스타 탄생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2018년 KLPGA 개막전이었던 효성 챔피언십에서 프로 첫 우승을 차지면서 ‘최혜진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신인이 시즌 개막전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은 최혜진이 KLPGA 사상 최초였다. 그렇게 최혜진은 2018년 6월 BC카드 한경 레이디스컵 우승을 포함, 시즌 2승을 챙기면서 2년 연속 다승에 성공했다. 멈추지 않았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KLPGA 대상 타이틀을 자신의 손으로 일궈냈다. 신인으로 대상을 따낸 것은 역대 다섯 번째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타이틀, 오로지 데뷔 시즌에만 받을 수 있는 신인상까지 따내며 대상-신인상을 모두 챙겼다. 지난 2006년 신지애 이후 12년 만에 나온 진기록이었다.

프로 2년 차에 정복한 KLPGA, 샛별에서 스타를 넘어 여왕까지

프로 첫해에 신인상-대상 2관왕에 오르긴 했지만, 완벽하게 정복한 것은 아니었다. 상금왕과 최저 타수상은 ‘핫식스’ 이정은(23)의 것이었다. 2018년 KLPGA는 이정은과 최혜진, 양강 체제였다. 그리고 가장 큰 경쟁자인 이정은이 올해 미국으로 떠나자 2019년은 오롯이 최혜진의 것이었다. 2년 차 선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선보였다. 지난 4월 KLPGA 5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CreaS F&C KLPGA 챔피언십 우승을 시작으로 5월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6월 S-OIL 챔피언십에 이어 맥콜 용평리조트 오픈까지 상반기에만 4승을 따내며 압도적 실력을 보여줬다. 후반기 들어서는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지난 3일 종료된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총상금 8억 원)에서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를 쳐내며 시즌 5승을 달성했다. 한 시즌 5승, 지난 2017년 박성현의 7승 이후 5년 만에 나온 기록이었다. 지난 10일 종료된 ADT캡스 챔피언십 대회를 끝으로 대상, 상금왕, 최소타수상, 다승왕까지 4개 부문을 모두 싹쓸이, 지난 2017시즌 이정은에 이어 역대 일곱 번째로 전관왕을 달성했다. 시즌 중반부터 최소타수와 상금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했던 장하나의 추격이 매서웠지만 최혜진을 넘기엔 부족했다. 프로 2년 차에 국내에서 이룰 것은 다 이룬 최혜진이다. 이제 시선은 미국으로 향한다. 그는 “내년에 KLPGA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한 뒤, 해외 진출에 도전하겠다. 스케줄을 잘 짜서 국내 및 해외 투어 병행을 통해 미국 진출을 노려보겠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2017년 US오픈에서 준우승을 따낼 당시, 함께 경기를 하며 우승을 따냈던 박성현은 현재 세계 랭킹 2위. 그리고 작년까지 자신과 KLPGA를 양분했던 이정은은 올해 US오픈에서 우승 포함, 준우승만 세 번을 차지하며 LPGA 신인왕에 올랐다. 함께 나란히 경쟁을 했던 선배들이 세계를 호령하고 주름 잡고 있으니 최혜진도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급하지 않다. 최혜진은 쇼트 게임에서 좀 더 세밀함을 보완, 차분하게 내년 KLPGA를 소화하다보면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이라 보고 있다. 일단 KLPGA 상금왕은 LPGA 메이저 대회를 비롯, 초청 선수로 나설 기회가 많다. 박성현의 경우처럼 투어 상금랭킹 40위 안에 들어간다면 시드 확보가 가능하다. ANA인스퍼레인션이나 US여자오픈, 브리티시 여자오픈에 뛸 수 있고 그 외의 국내 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하는 대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 박성현처럼 상금을 차근차근 모아서 미국에 진출하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투어 우승을 따낸다면 곧바로 시드를 받을 수 있다. 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도 2016년 KLPGA 대상에 이어 2017년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제 시작이다. 2019년 KLPGA를 정복한 최혜진이 가야 할 길은 앞으로 더 창창하다. 김성태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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