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신체능력을 겨루는 승부다. 그리고 인간의 신체능력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현저하게 저하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파릇파릇한 시절을 뒤로하고 서서히 지는 해가 되는 베테랑 선수들은 해마다 고민에 빠진다. 매년 치고 올라오는 수없이 많은 영건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대회가 끝나고 시즌이 끝날 때마다 그들은 은퇴와 현역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한다. 잔 부상을 달고 살지만 아프다는 말도 못한다. 자칫 자리를 내줄 수 있고 밀려날 수 있다. 스포츠 선수에 시간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적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은퇴 시기를 훌쩍 넘어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단순히 오래 뛰어서 경험만 많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각 종목에서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능력자이자, 젊은 선수들이 겪지 못한 시련을 극복한 노련미도 함께 갖추고 있다. 40살이 훌쩍 넘었지만 이들의 스포츠는 여전히 신선하다.

타이거 우즈.

골프보다 더 유명한 사나이, 불굴의 타이거 우즈

포문을 연 것은 타이거 우즈(44)다. 골프는 잘 몰라도 우즈라는 이름은 모두가 안다. 골프를 전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로 만든 것은 우즈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1975년생이다. 아마추어를 넘어 전성기를 구가했던 2000년대의 우즈는 골프 역사상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다. 골프가 우즈를 따라갔다. 2005년 마스터스에서 그가 보여준 ‘더 샷(THE SHOT)’은 기적이라 불렸다. 공이 홀에 들어가기 직전, 스포츠 브랜드 로고가 슬며시 보이는 최고의 순간, 그 모든 것이 우즈였다. 하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며 고질적인 부상과 치명적 스캔들, 약물 복용 논란까지 겹치면서 황제는 추락했다. 그간의 명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매번 재기를 다짐했지만 몸 상태는 회복하기 어려웠다. 약물에 의지할 정도였으니 모두가 끝이라 생각했다. 세계 랭킹도 10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우즈는 이마저도 극복했다. 2018년 들어 메이저 대회 ‘톱10’ 안에 두 차례나 들어가며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맞이한 2019년, 우즈는 정상에 올라섰다. 지난 4월 15일 마스터스 토너먼트 대회에서 11년 만에 메이저 대회 및 14년 만에 마스터스를 다시 정복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골프 역사상 가장 완벽한 부활을 알린 우즈였다. 14년 만에 다시 입은 ‘그린 재킷’의 우즈는 22년 전 첫 우승의 그때처럼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머리도 많이 빠지고 주름도 많아졌지만 ‘클래스’는 여전했다.

로저 페더러.

세계를 주름 잡는 테니스계 ‘빅3’, 그 중에 최고는 황제 페더러

골프는 종목의 특성상 좀 더 오래 뛸 수 있다. 하지만 테니스는 격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여러 종목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 근육이 찢어지고 폐가 터진다. 지구력은 필수다. 나이는 치명적인 감점 요소다. 그럼에도 1981년생 로저 페더러(39)는 여전히 강하다. 왼손 천재이자 클레이 코트의 강자인 라파엘 나달(33), 완전체 테크니션 노박 조코비치(32)와 함께 흔히 ‘빅 3’라 불리고 있지만 두 선수는 페더러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간간이 영건에 당하는 경우가 있지만 페더러가 쌓은 커리어는 여전히 넘기 힘든 벽이다. 나달과 조코비치를 따돌리고 그랜드슬램 대회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20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지난 2004년 2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무려 237구라는 긴 시간을 버텨내며 군림했고 그 기간에 윔블던 5연패(2003년~2007년), US오픈 5연패(2004년~2008년)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보다 더 강한 테니스 선수는 없었다. 여기에 10월 28일 스위스 바젤에서 끝난 남자 프로 테니스(ATP) 투어 스위스 인도어 바젤 대회에서 우승, ATP 투어 단식 우승 횟수를 ‘103’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통산 우승 기록은 현역 중 단연 1위이며 역대 통틀어도 109승을 했던 지미 코너스에 이어 통산 2위. 시간이 흐를수록 페더러는 더욱 노련해지고 강해지고 있다.

톰 브래디.

‘드래프트 199순위’ 평범 이하의 선수, NFL 역대 최고의 쿼터백 되다

아무도 기대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그를 택한 뉴잉글랜드 구단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지난 2000년 NFL(미국프로풋볼) 드래프트 6라운드 199위, 톰 브래디(43)다. 말이 199위지 사실상 꼴찌다. 하지만 주변의 야유를 뒤로하고 브래디는 자신을 택한 뉴잉글랜드를 2000년대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흔히 그렇듯 슈퍼스타의 탄생은 스타의 빈자리에서 시작된다. 2001년 프로 2년 차에 주전 쿼터백 드루 블레드소가 부상으로 빠지자 공백을 채우고자 경기에 나섰고 이후 주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슈퍼볼 우승까지 이끌어냈다. 전설다운 시작이었다. NFL을 넘어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로 자리 잡은 슈퍼볼에서만 6회(2001년, 2003년, 2004년, 2014년, 2016년, 2018년) 우승을 차지, 역대 NFL에서 뛴 모든 쿼터백 가운데 가장 많은 승리를 차지한 선수가 됐다. 신체조건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 살아남았다. 전성기가 훌쩍 지난 2010년대 후반에는 그의 전매특허인 두뇌 플레이가 더욱 빛을 발했다. 빠르진 않아도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통해 짧고 굵은 패스를 날려 상대에 치명타를 입힌다. 오래 뛸 수 있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실력은 1977년생의 나이임에도 불구, 2021년 44살까지 계약을 보장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김성태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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