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0%’ 딛고 최강팀으로→ ‘사인 훔치기 스캔들’ 일파만파

휴스턴 애스트로스.

10월 개봉해 국내에서만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조커’. 사회에 소외된 주인공은 잘 살아보려 하지만 자신을 조롱하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세상 속에 결국 ‘악당’ 조커가 되고 만다. 메이저리그(MLB)에도 조커가 되어버린 구단이 나왔다. 한때 극단적인 탱킹(앞순위 신인지명권을 위해 의도적인 성적포기)으로 시청률 0%라는 굴욕까지 겪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019시즌 MLB 전체 승률 1위팀이자 준우승, 2017시즌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 등 최근 3년간 최다승(311승)의 최강팀이 됐다. 하지만 그 속에 휴스턴은 최근 몇 년간 메이저리그 사건 사고의 중심에 있었고 결국 2019 월드시리즈 이후 불거진 ‘사인 훔치기’로 스캔들의 방점을 찍었다. 어떻게 휴스턴은 '조커'로 변했을까.

시청률 0%의 굴욕 딛고 최강팀으로

2013년 9월. 현지시간 일요일 정오에 열린 경기였음에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홈경기 시청률이 0%가 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아무도 TV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청률 집계가 되는 TV에서 0%의 시청률이 나온 것이다. 시청률 0%는 2014년 4월에도 반복됐다. 굴욕의 이유는 간단했다. 휴스턴이 의도적 탱킹으로 인해 정말 못하는 팀이었기 때문. 휴스턴은 2009년 이후 2013년까지 단 한번도 5할 승률을 넘기지 못했고 특히 2011, 2012, 2013년도에는 모두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로 떨어졌다. 그러나 탱킹을 통해 좋은 신인들을 모으고 제대로 리빌딩을 했다. 마침내 2015년 5할 승률을 넘긴 휴스턴은 ‘작은 거인’ 호세 알투베 등을 중심으로 강팀으로 거듭났고, 2017 월드시리즈에서 1962년 창단 이후 55년만에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에도 메이저리그 전체 2위 다승팀이었고 올해는 다승 1위, 월드시리즈 준우승으로 최근 3년간 휴스턴은 메이저리그 최강팀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휴스턴의 시청률 0%에서 최강팀으로의 변모는 메이저리그의 아름다운 스토리로 남는가 했다.

선수 계약 강요부터 가정폭력범 영입-옹호까지

하지만 휴스턴은 성공신화를 쓰는 사이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2014시즌을 앞두고 외야 유망주 조지 스프링어와 7년 계약을 요구했는데 알고보니 ‘계약에 동의하면 메이저리그로 보내고 아니면 마이너리그에서 썩는다’고 협박한 사실이 에이전트의 폭로를 통해 드러났다. 또한 2014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픽으로 뽑은 브래디 에이켄과 계약 협상 당시 650만 달러로 합의했다. 하지만 에이켄에게 부상 의심 정황이 발생되자 절반 이상을 깎은 316만달러의 계약서를 들이밀며 ‘갑질’을 해 큰 비난을 받았다. 또한 로베르투 오수나라는 정상급 불펜을 영입하는 과정 역시 비난을 받았다. 2018년 7월 오수나를 토론토 블루제이스로부터 영입했는데 당시 오수나는 심각한 가정 폭력으로 75경기 출전정지 중징계를 받은 상태였다. 야구는 잘하지만 가정폭력범인 오수나를 휴스턴은 비난 속에 데려온 것. 그와 관련된 문제는 하나 더 터졌다. 2019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휴스턴 부단장이 승리 후 여기자를 향해 ‘오수나를 데려오길 잘했다’고 의도적으로 소리치며 ‘가정폭력범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부단장은 사임해야했다. 이외에도 핵심 선수인 저스틴 벌랜더가 특정 기자를 라커룸 취재를 못하게 해 비난을 받고, 투수 잭 그레인키가 기자회견에서 거의 ‘예, 아니오’식의 답변만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희대의 사인 훔치기 스캔들… 우승 박탈될까

그리고 월드시리즈 종료 후 휴스턴은 크나큰 스캔들 중심에 섰다. 2017년 휴스턴에서 뛰었던 마이크 파이어스가 ‘휴스턴이 구단 조직적으로 사인 훔치기를 했다’고 폭로한 것. 휴스턴은 외야 카메라에서 상대 포수의 사인을 훔친 후 덕아웃에서 휴지통을 쳐 타자에게 속구인지 변화구인지 등을 알려준 것이다. 안 치면 속구, 한번 치면 변화구, 두 번 치면 체인지업 등으로 휴스턴 타자들은 투수의 구종을 알고 타석에 섰고 자연스레 타격성적이 급상승했다. 2016년 타율 2할4푼7리(전체 24위)-컨택률 75.7%(27위)였던 타격은 2017년 타율 2할8푼2리(전체 1위)-컨택율 81.2%(1위)로 급상승했는데 결국 사인훔치기로 타격 반전이 가능했던 셈이다. 이 폭로 이후 그동안 이상함을 느꼈던 투수들은 자신의 SNS에 휴스턴 타자에게 홈런맞는 영상을 올리며 억울함을 표출하고 있다. 투수들이 피해자였고 이제 투수와 타자의 대결에 조그만 소리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휴스턴을 이기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워싱턴 내셔널스도 이런 정황을 눈치채고 월드시리즈에서 타석마다, 타자마다 사인을 바꾸기도 했다. 야구가 도박판처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전수조사를 시행하겠다는 의지다.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있는 휴스턴의 제프 르나우 단장은 어이없게도 폭로 이후 인터뷰에서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느냐”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 더 큰 논란을 낳았다. 시청률 0%의 굴욕을 겪고 메이저리그 최강팀으로 거듭나는 동안 르나우의 휴스턴은 ‘조커’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이 인터뷰를 통해 증명된 셈이다. 승리를 위해 인간미를 잃어버린 휴스턴의 이번 사인 훔치기 스캔들로 인해 최대 2017년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 박탈 수위까지 나오고 있다. 향후 이 사안이 어떻게 정리될지, 그리고 휴스턴은 조커로의 삶을 유지할지, 아니면 배트맨 앞에서 무릎꿇는 조커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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