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 첫 PGA투어 대회인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우승한 저스틴 토머스. 연합

2020년 새해 첫 PGA투어 대회로 하와이 마우이의 카팔루아 플렌테이션GC에서 열린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는 ‘별들의 경기’다. 지난 1년간 우승자(올해는 41명)에게만 출전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번엔 34명이 참가했다. 세계랭킹 1, 2위 브룩스 켑카와 로리 매킬로이, 귀환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 등이 불참해 다소 빛이 바랠 것으로 예상됐지만 2020년 개막전답게 극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막을 내렸다.

초특급 영웅들은 빠졌지만, 존 람(랭킹 3위·스페인), 거한 더스틴 존슨(랭킹 5위), 게리 우들랜드(랭킹 14위) 등 세계 랭킹 15위 이내 선수 중 7명이 참가해 ‘왕중왕전’의 요건은 갖추었다. 여기에 영웅 반열에 들기엔 2% 부족한 보통선수들의 반란이 볼만했다. 그 중심에 저스틴 토머스(26), 잔더 셔펠레(26), 패트릭 리드(29), 호아킨 니에만(21·칠레), 패트릭 켄틀레이(27) 등이 포진했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거포를 쏘아대는 우람한 체격의 소유자들이 아니다. 잔더 셔펠레나 호아킨 니에만 같은 선수는 골프선수로서 왜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나 시선을 끄는 포인트도 발견하기 어렵다.

이웃집 맘씨 좋은 청년이나 아저씨 같다. 그래서 친근하다. 그렇다고 운이 좋아 PGA투어에 합류한 그런 선수도 아니다. 타이거 우즈나 로리 매킬로이처럼 어릴 때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않았을 뿐 길고도 질긴 골프 사연들을 갖고 있다. 1라운드에서 7언더파를 치며 선두에 올라 나흘 내내 선두권에 포진한 호아킨 니에만은 지난해 9월 밀리터리 트리뷰트 엣 더 그린브라이어 대회에서 우승하며 조국 칠레에 첫 PGA투어 승리를 안기는 기쁨을 맛봤다. 니에만은 2살 때 아버지로부터 플라스틱 골프채를 받았다. 그것으로 장난감 삼아 볼을 때리며 놀았다. 4살 때 가족 바비큐 파티를 하는 자리에서 플라스틱 골프채로 볼을 날렸다. 볼은 40여 미터를 날아 할머니의 다리를 맞혔다. 할머니는 손자를 혼내는 대신 “굿 샷(Good shot)!”이라고 칭찬해주었다.

학창시절 골프 실력을 인정받아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에 갈 기회가 있었으나 토플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좌절됐다. 미국과 칠레를 오가며 기량을 연마한 그는 2018년 프로로 전향, 이듬해 PGA투어에 합류해 신인으로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1타 차 선두로 4라운드에 올라 저스틴 토머스, 패트릭 리드와 숨 막히는 연장 접전을 벌인 잔더 셔펠레는 영락없이 이웃집 청년 모습이다. 운동과 거리가 멀 것 같은 왜소한 체격이다. 셔펠레는 조던 스피스(PGA투어 11승), 저스틴 토머스(이번 대회 포함 PGA투어 12승), 대니얼 버거(PGA투어 2승) 등과 동갑으로 2011년 전미 고교 골프를 주름잡던 유망주였다. 이중 조던 스피스가 2013년 가장 먼저 PGA투어 입문에 성공, 신인으로 존 디어 클래식에서 우승하는 등 일찌감치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조던 스피스의 절친 저스틴 토머스는 2년 늦게 2015년 PGA투어에 입문, 이듬해부터 매년 우승을 보탰다. 대니얼 버거도 저스틴 토머스와 함께 PGA에 합류해 2승을 올렸다. 잔더 셔펠레가 가장 늦게 2017년 PGA투어에 합류했다. 키 177.8cm로 골프선수로선 왜소해보이고 얼굴도 너무 착해 보여 과연 PGA투어의 정글에서 버텨나갈까 싶었으나 데뷔 첫해에 3승을 거두며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지난해에도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우승 외에 마스터스 공동 2위, US오픈 공동 3위, 투어 챔피언십 2위 등 특히 메이저대회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셔펠레는 농담조로 자신은 4개국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프랑스와 독일의 혈통이 흐르고, 어머니는 타이베이 출신인데 일본에서 자랐다. 이번 대회 내내 상위권에 머문 패트릭 캔틀레이는 2014년 PGA투어에 입문, 아직 2승밖에 올리지 못했으나 지난해부터 상위권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패트릭 리드는 가족 문제와 벙커에서의 라이 개선 등으로 골프 팬들에게 밉상으로 비치지만 이 또한 보통선수의 한 모습이 아닐까.

이들 보통선수들은 나흘 내내 ‘쿡 파인트리(Cook pine tree)’가 늘어선 마우이 섬 카팔루아 플랜테이션 코스에서 영웅호걸이 없는 세계의 또 다른 묘미를 골프 팬들에게 선사했다. 긴 화살촉 모양의 쿡 파인트리는 남양삼나무속의 상록침엽수로, 오세아니아와 하와이제도 일대에 분포해 있다. 18세기 영국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인 제임스 쿡 선장이 하와이제도를 발견한 데서 ‘쿡 파인트리’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우뚝 선 영웅의 모습은 아니지만 내공이 만만찮은 보통 선수들의 경기는 잘 생긴 쿡 파인트리처럼 멋졌다. 특히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로 2연승을 노린 잔더 셔펠레와 저스틴 토머스의 반전의 반전, 패트릭 리드가 가세한 연장 접전은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잔더 셔펠레에 1타 뒤진 2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맞은 저스틴 토머스는 전반 2타를 줄여 제자리걸음을 한 셔펠레에 1타 차로 앞섰다. 토머스는 10, 11, 14, 15번 홀에서도 버디를 건져 우승컵을 품는 듯했다. 그러나 16번 홀(파4)과 18번 홀(파5)에서 결정적 실수로 보기를 범하며 2타를 잃고 셔펠레에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7언더파를 몰아쳐 합계 14언더파로 경기를 끝낸 패트릭 리드와 함께 3명이 18번 홀 연장전에 돌입했다. 첫 번째 연장전에서 패트릭 리드와 저스틴 토머스는 버디를 낚고 잔더 셔펠레가 파를 하면서 타이틀 방어의 꿈을 날렸다. 같은 홀에서 치러진 연장 두 번째 경기에선 두 선수 모두 파. 연장 3차전에서 저스틴 토머스가 버디를 낚아 새해 첫 우승컵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 경쟁을 벌인 보통선수들이 어떤 반란을 이어갈지 궁금하다. 물론 여기엔 공동 25위에 머문 강성훈과 PGA투어 첫 승을 갈망하는 안병훈, 임성재 등 한국 선수들도 포함되기를 기대해본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주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해 신청 가능합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