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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K리그 무대로 돌아온 황선홍 감독

성공과 실패 속에서 ‘대전의 길’ 찾다
  • 황선홍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자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인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그리고 감독으로 K리그 역사상 가장 극적인 2013년 포항 스틸러스의 우승과 2016년 FC서울의 K리그 우승을 이끈 황선홍이 돌아왔다.2018년 4월 서울 감독직을 떠난 후 거의 2년만에 다시 K리그 무대로 돌아온 황선홍은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에서 하나금융그룹을 모기업으로 재창단한 대전 하나시티즌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했다.경남 남해에서 개막 2주여를 남기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대전팀을 지도 중인 황선홍 감독을 만나 그의 전설적인 성공과 가슴아팠던 실패와 비난, 그속에서 대전이 나아갈 길을 찾는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국보급 스트라이커의 칭호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을 해내다

굳이 설명이 필요있을까. 황선홍은 1990년대 한국의 부동의 스트라이커 ‘넘버1’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별명만 정리해도 그 위엄을 알 수 있다. ‘국보급 스트라이커’, ‘한국 대표팀 전력의 50%’. 한국 남자 축구 역사상 A매치 득점 2위(50골, 1위 차범근 58골)의 주인공이다. “돌이켜보면 가장 자랑스러웠던 호칭은 ‘국보급 스트라이커’였죠. 제가 뛸 때 야구에서는 선동열 선수를 ‘국보급 투수’라고 했는데 저는 축구쪽에서 그런 선수였다는 거니까요”라며 밝게 웃는다.황선홍 감독에게 어린 세대들이 잘 모르니 자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랑좀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쑥스러워하며 “제가 축구대표팀 14년을 했는데 처음 절 뽑은 이회택 감독부터 거스 히딩크 감독까지 항상 주전 공격수였어요. 어떤 감독도 절 선발에서 빼본적 없고 저 역시 안뛴다고 생각해보질 않았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라며 되묻는다.화려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성공한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황선홍은 달랐다. 감독으로 K리그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을 꼽는데 항상 ‘톱3’에 드는 2013년 포항의 역전우승을 해낸 당사자이기도 하다.“울산 현대와 시즌 종료 2경기 남기고 승점 5점차로 뒤졌으니 이미 끝난거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최종전까지 몰고갔고 전광판 시계가 90분을 가리켜도 골이 나지 않아 ‘이렇게 좋은 경험으로만 남나’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추가시간도 다써서 휘슬이 울리기 직전 골문 앞에서 혼전 중 골이 들어갔고 그 순간의 짜릿함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네요.”2016년 FC서울을 이끌고 K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전북 현대가 6년간 5회의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유일하게 막아세운 놀라운 사건이기도 했다. 이처럼 황선홍은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성공만 누린 것처럼 보인다.

‘가장 욕 많이 먹은 선수’이자 서울에서의 실패

늘 성공만 한 것 같지만 황선홍의 축구인생을 조금만 더 면밀히 보면 그만큼 고난이 많은 선수도 없었다. 흔히들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욕을 많이 선수’를 논할 때 황선홍은 독보적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의 실패 이미지가 2002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선수 생활 내내 ‘욕받이 선수’로 몰고갔기 때문.“아직도 생생해요. 1994 월드컵 직전에 한국은 온통 ‘대표팀의 운명은 황선홍의 발에 달렸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반드시 내가 골을 넣어야한다. 난 잘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죠. 그 부담감이 저를 삼켜버린거죠. 월드컵 이후 한반도가 모두 절 욕하는데 참 힘들었죠”라며 말끝을 흐렸다.감독으로 부산-포항에서 성공가도를 달렸고 서울에서도 부임 첫해 우승으로 성공을 이어가나 했다. 하지만 부임 이듬해인 5위 추락과 2018년에는 개막 두달 만에 사실상 경질을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서울팬들에게 참 미안합니다. 모든 책임은 감독인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한 황 감독은 “팀이 정체가 되면 안된다고 봤어요. 정체됐다는 건 목표가 없다는겁니다. 팀 전체가 정체되지 않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고 변화가 필요할 때 안하면 그건 지도자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거라 생각했죠. 어떤 비난을 감내해도 변화를 주는게 필요하다고 봤지만 결국 결과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 제 책임이죠”라고 말했다.황선홍은 “황선홍이라는 사람이 서울이라는 빅클럽에서 실패했다는 것에 솔직히 제 스스로에게도 실망이 컸다”라고 말해 지난 1년 반 동안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은 이유를 짐작케 했다.

서울에서의 깨달음, ‘확고한 의지’가진 대전에서 다시 일어서게 할 것

서울에서의 실패 요인 중 깨달음으로 다가온 부분이 있는지 묻자 황 감독은 “제가 다소 선수단이 좋지 않은 부산과 포항에서 감독을 하다보니 ‘축구는 조직이 하는 것’이라는 철학이 있다. 그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선수들을 넣어 성공했다”라고 말했다.그러면서 그는 “서울은 조금 다르게 접근했어야 했다. 좀 더 넓게 울타리만 쳐주고 선수들에게 맡길 건 맡겨야 했다. 예전에 했던대로 제 틀 안에 선수를 넣으려고만 하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돌이켜보면 ‘조금만 더 유연성이 있었더라면’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라고 되돌아봤다.이같은 실패를 대전에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황 감독에게 굳이 급을 낮춰 K리그2(2부리그)의 감독직까지 내려올 필요가 있었는지 묻자 단호히 손사래를 쳤다.“K리그1이든 K리그2이든 확고한 의지와 뚜렷한 목표가 있는 팀이면 상관없다고 봐요. 모기업이 단순히 리그 승격을 넘어 아시아 무대 진출까지 생각하는 의지를 보여줬어요. 재창단한 대전에서 첫 감독으로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도전의식이 끓어올랐죠. 이른 시간 안에 승격을 해내야 하겠지만 대전은 제 축구인생에 분명 가치 있는 도전이 될 거라고 확신했기에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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