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재 프로. 게티이미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했던 임성재(21)가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최종합계 2언더파 286타로 단독 3위를 차지했다. 지난 3월 9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베이 힐 클럽&로지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임성재는 한때 공동 선두까지 오르며 한국선수 최초 PGA투어 2주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베이 힐 코스 특유의 호수와 바람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계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30·북아일랜드) 등 지구촌 골프고수들의 발목을 잡은 베이 힐 코스에서 임성재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단독 선두 티럴 해튼(28·영국)에 3타 뒤진 공동 4위로 출발한 임성재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위기를 넘긴 뒤 12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해튼과 공동선수에 올랐다. 그러나 13번 홀에서 발목이 잡혔다. 두 번째 샷을 워터 해저드에 빠뜨리며 더블보기를 범하며 우승 경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직전의 혼다 클래식에 이어 열린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보인 그의 경기력은 골프 대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미 스스로 PGA투어의 골프 대가들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특히 플로리다 스윙의 두 대회에서 정체를 드러낸 그의 진면목은 골프 팬은 물론 골프전문가조차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플로리다 스윙은 2월 마지막 주부터 4주간 플로리다 주에서 열리는 4개 대회를 일컫는다. 혼다 클래식을 시작으로,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벌스파 챔피언십까지 이어지는 대회다. 플로리다 스윙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관계없이 플로리다주의 골프코스가 선수들을 혹독하게 시험하기 때문이다. 플로리다 스윙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골퍼라면 진정한 골프 대가로 손색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미대륙 동남부에 긴 꼬리처럼 달린 플로리다반도의 지질학적 특성을 알고 나면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플로리다주는 미국에서 유일한 아열대성 기후 지역이다. 육지가 해수면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침식으로 생긴 호수가 내륙에 산재해있다. 대회가 열린 베이 힐 코스 주변만 해도 체이스, 버틀러, 티벳, 쉰즈, 빅샌즈, 스프링 호 등 6개의 큰 호수들이 에워싸고 있다. 골프코스 안에는 모두 7개의 호수와 연못이 있는데 이에 접한 코스는 9개나 된다. 골프코스에 악어들이 올라와 햇볕을 쪼이는 게 자연스럽다. 이 코스에서의 승부는 산재한 워터 해저드를 어떻게 피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로리다주의 또 다른 특징은 기후다. 카리브해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이 서북진해 북미대륙을 지나가는 길목이다. 대서양과 카리브해에서 늘 바람이 불어온다. 카리브해에서 만들어진 허리케인이 상습적으로 할퀴고 지나가는 지역이다. 그러니 이 지역 골프코스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물과 바람에 어떻게 접근하고 대응하느냐로 홀의 승패가 갈린다. 페어웨이, 러프, 그린, 벙커, 해저드, OB지역은 골프코스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이중 골퍼를 괴롭히는 것이 해저드와 OB지역이다. 정상적인 샷이 불가능해 벌타를 받고서야 다음 샷을 할 수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티잉 그라운드에 섰을 때 눈에 들어오는 해저드 지역은 언제나 압박감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해저드란 심하게 의식하지 않으면 피해갈 수 있는데 지나치게 겁을 먹거나 만용을 부릴 때 해저드의 제물이 되고 만다. 그래도 코스의 해저드는 바람보다는 낫다. 호수나 연못, 개울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형체 없는 해저드다. 시시각각 방향과 세기가 달라지는 바람에 적응하는 일은 지난하다. 그린의 깃발이 휘고 바짓자락이 펄럭이면 마음도 평정심을 잃는다. 플로리다주의 골프코스는 바로 바람과 물과의 싸움이다. 아니 싸움이 아니라 ‘친해지기’가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특히 바람은 대적하는 개념이 아니라 활용하고 친화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 해저드다. 바람과 물이 지배하는 플로리다의 골프코스에서 임성재가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프로골퍼로서의 그의 대성(大成)을 예감케 해준다. 3라운드에서 언더파를 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고 이븐파를 친 경우도 7명뿐이었다는 것은 코스가 얼마나 가혹했는가를 입증한다.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언더파를 친 선수는 10명에 그쳤고 최종합계 스코어에서도 언더파가 단 4명이었다는 사실이 바람과 물이 지배하는 골프코스의 가혹성을 말해준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공동 3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도 3위로 올랐다는 사실은 임성재의 바람과 물과의 친화력을 짐작케 하는데 이는 아마도 그의 제2의 고향인 제주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청주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이 제주도인 아버지와 함께 유년기 때 서귀포로 옮겨 성장했다. 제주의 거친 비와 바람과 해안을 때리는 파도에 친숙한 그에게 플로리다의 바람과 물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을 터이다. 천신만고 끝에 티럴 해튼이 최종합계 4언더파로 PGA투어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호주의 마크 레시먼은 1타 차이로 2위, 브라이언 디섐보가 4위, 로리 매킬로이가 공동 5위에 올랐다. 3, 4 라운드 우승 경쟁을 벌였던 강성훈(33)은 1오버파로 공동 9위에 올랐다. 강성훈 역시 제주도 출신이다. 앞으로 남은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과 벌스파 챔피언십에서 제주도 출신 임성재와 강성훈이 어떤 성적을 낼지 궁금하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주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해 신청 가능합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