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골프한국 제공

모든 스포츠가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지만 골프의 중독성은 유별나다. 다른 스포츠의 중독성에 비하면 치명적이다. 골프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웬만해선 벗어나기 어렵다. 이제 갓 골프를 시작한 걸음마든, 골프 특유의 불가사의한 묘미에 가까이 가지 않았든, 기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해 미스샷과 나쁜 스코어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골프와 결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꼽으라면 수도 없다. 내 의지와 희망을 쉽게 저버리는 배반성, 느슨하면서도 승부욕을 자극하는 경쟁 구도, 깊은 자연과의 친화성, 아침에 깨달았다가도 저녁이면 지워지는 골프 근육의 짧은 기억능력, 신체조건이나 체력으로 변별되지 않는 결과의 의외성, 언제라도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 예측불허성, 목표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표가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속성,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처럼 목표에 도달해도 그곳에 머물 수 없는 형벌 같은 특성 등등.

그래서 골프가 태동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골프의 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를 언급했다. “골프의 가장 큰 결점은 그것이 너무도 재미난다는 데 있다. 골프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흥미는 남편으로 하여금 가정, 일, 아내, 그리고 아이들까지 잊게 한다.” “골프란 아주 작은 볼을, 아주 작은 구멍에, 매우 부적합한 채로 쳐 넣는 게임이다.”(윈스턴 처칠) “골프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만인의 게임이다. 걸을 수 있고 빗자루질을 할 힘만 있으면 된다.” “골프코스는 머물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야 할 덧없는 세상살이 모든 것의 축약이다.”(장 지라두) 골프가 왜 불가사의한 운동인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면 밤을 지새워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골프는 말하자면 상식과 통념을 거부하는 희한한 운동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번 골프채를 잡으면 지팡이를 짚을 수 있을 때까지 골프채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60세 노인이 30세 장년을 이기는 골프게임이 어찌 스포츠란 말인가!”(버드 쇼탠, 작가) 이 한 마디가 골프의 불가사의성을 대변해준다. 나는 이런 전통적인 시각에서 빗겨나 걷기에서 골프의 중독성을 발견한다. 아기나 개나 고양이 등의 움직임을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 아기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개나 고양이 등 동물들도 태어나 스스로 일어서 걸으면서 세상과 만난다. 자라면서 걷는 반경이 넓어지고 삶의 폭도 넓어진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 1927~2001)가 그의 저서 ‘문화인류학’에서 ‘태초에 발이 있었다’며 인류 진화의 원동력을 걷기로 본 것은 혜안이다. 그는 약 600만년으로 추정되는 직립보행의 역사가 바로 인류 진화의 역사라고 봤다. 인류의 도구 개발, 두뇌 발달, 언어 창조, 수명 연장 등의 동인을 직립보행에서 찾았다. 골프의 기원을 살펴보면 걷기가 골프의 핵심이고 골프채나 공은 걷기를 도와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11세기 전후 스코틀랜드 대서양 연안의 황량한 들판에서 양떼를 몰던 목동들이 심심풀이 삼아 돌멩이나 털뭉치를 토끼굴에 처넣는 게임을 즐기거나, 마을의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재미 삼아 막대기로 돌멩이를 치며 걸었다는 골프 기원설은 걷기가 없는 골프는 존재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18세기 프랑스의 대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갈파했듯 낭만적인 걷기는 철학과 시의 산실이었다.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자 시인들은 산책, 산보, 도보여행, 탐험 등 다양한 형태의 걷기를 통해 사상을 심화시키고 시를 짓고 자연과학을 연구했다. 현대인들이 아침저녁으로 근처 산이나 들판, 강가를 걷고 험준한 산악이나 성지를 찾아 트레킹에 나서고 순례길에 오르는 것도 정신적 육체적 활력을 얻기 위한 본능적 행동인 셈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골프야말로 인간 본능에 기초한 가장 낭만적인 걷기가 아닐까. 골프코스는 제한된 공간이긴 하지만 코스 자체가 다양한 자연을 압축한 공간이기도 하다. 인공이 가미되긴 했지만 양탄자 같은 초원, 연못과 개울, 모래밭, 황무지, 바위와 절벽, 덤불과 수목이 어우러진 골프코스는 일상에 쫓겨 자연 속으로의 탐험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겐 4~5시간 동안 다양한 자연환경을 경험하며 대화하고 사색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운동’인 골프를 한다는 것만큼 매혹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지팡이 짚을 힘만 있으면 골프를 하라’는 골프속담이 있는 것도 단조롭고 무미하기 쉬운 보통 오솔길의 걷기와 차원이 다른 골프코스에서의 걷기가 안겨주는 위안과 즐거움 때문이리라. 골프는 누가 뭐래도 걷기에 골프 도구를 보탠 것 이상일 수 없다. 골프에서 걷는 즐거움을 제거한다면 결코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골프가 불가사의한 진짜 이유는 걷기에 있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주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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