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기합 소리·덕아웃 조롱 등 조용한 경기장서 ‘쩌렁쩌렁’ 눈살

롯데 덕아웃의 환호성.

조용하고 지루할 것만 할 것 같았던 무관중 경기였지만, 현장에서 들어본 경기 사운드는 의외로 다이내믹했다. 타자들의 경쾌한 타격소리는 물론, 호쾌한 구심의 스트라이크 콜, 그리고 덕아웃 선수들의 환호성까지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았던 여러 현장음이 경기장을 가득 메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생중계도 마찬가지. 관중들의 환호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선수들의 다급하고 숨가뿐 목소리가 이젠 중계 오디오에 선명하게 흘러 들어온다. 시청자들은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현장음을 통해 덩달아 심장 박동수가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꼭 좋은 영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생한 현장음을 듣는 반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다른 현장음까지 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흘러 들어와 팬들을 당혹케 했다. 현장에 있는 선수들과 심판들도 마찬가지. 팬들의 응원소리가 없기에 경기장 위 선수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선수들의 응원 혹은 비난의 목소리가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고, 또 별 생각 없이 했던 말이 전국, 아니 전세계에 퍼지면서 곤욕을 치러야 하기도 했다.

“으이짜!” 투수 기합 소리에 타자들 ‘움찔’

지난 17일 대전 롯데-한화전에는 다소 특이한 해프닝이 발생했다. 판정 불만이나 사구 등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감독이 나와 심판에 항의를 하고, 이에 투수가 직접 모자를 벗고 상대팀 덕아웃에 머리 숙여 사과를 하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화 투수 박상원의 ‘기합소리’가 문제였다. 8회초 마운드에 오른 박상원은 공을 한 구 한 구 던질 때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기합소리를 냈다. 비명에 가까운 기합소리가 마치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연상케 해 화제를 모았다. 박상원의 기합소리는 무관중 조용한 경기장에 더 선명하게,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상대 타자들에게는 방해요소 중 하나일 뿐이었다. 롯데 허문회 감독이 나와 심판에게 항의를 했고, 구심의 제지가 이어졌다. 하지만 박상원의 기합은 계속됐다. 평소 그의 루틴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후 박상원은 이닝 종료 후 롯데 덕아웃을 향해 모자를 벗고 사과했다. 기합소리에 대한 사과였다. 원래 그 투수의 루틴이었던 기합소리도, 이에 대한 상대팀의 항의도 정당했다. 하지만 무관중 경기로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울려 퍼졌기에 서로에게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졌다.

“울어울어”, “에이스 공 좋네” 야유, 중계 오디오에 ‘고스란히’

정작 더 큰 문제는 바로 뒤에 이어졌다. 8회 홈런으로 기세가 오른 롯데 덕아웃에서는 “고라니 화났다~!”, “울어, 울어!” 등의 상대 투수를 조롱하는 듯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홈런의 주인공 전준우가 “하지마, 하지마”라고 제지하는 장면도 찍혔다. 9회에는 한동희가 동점 홈런을 치고 들어오자, 덕아웃 누군가로부터 “에이스 공 좋다~!”라는 말도 나왔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6경기 1실점 방어율 1.80으로 한화의 불펜 에이스로 평가받던 김진영이었다. 홈런을 맞은 김진영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이러한 조롱 섞인 야유들은 중계 오디오에 고스란히 잡혔다. 이 역시 관중들 응원이 섞여 있었다면 들리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팬들 없는 조용한 경기장에 이들의 덕아웃 ‘트래시 토크’는 더욱 또렷하게, 더 크게 들렸다. 야구팬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응원은 좋지만 자극은 안돼” 덕아웃 트래시 토크 자제령

무관중 시대, 또렷하고 크게 부각돼 들리는 현장음에 각 팀 감독들뿐만 아니라 KBO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전보다 더 또렷하게 들리는 투수들의 기합소리는 타격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타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NC 이동욱 감독은 “타격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 땐 심판에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KBO에 따르면, 투수의 자연스러운 기합소리는 제재대상이 아니다. 다만 심판의 재량으로 기합소리가 경기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됐을 땐 제재할 수 있다. 감독의 어필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또한 애매한 사항이기에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덕아웃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불필요한 ‘트래시 토크’는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엔 한마음으로 동의했다. 이동욱 감독은 “우리 팀에 대한 응원을 해야지, 상대 팀을 자극하기 위한 응원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고, 김태형 감독 역시 “서로 친하면 농담식으로 주고받을 순 있다. 하지만 자극적으로 하면 안 될 것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KBO리그의 무관중 경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5월 중순을 기점으로 관중을 들일 계획이었던 KBO지만, 이태원 클럽발 2차 확진 사태와 등교 중단까지 사회적으로 코로나19가 다시 고개를 들자 더 미뤄졌다. 이와 함께 선수들의 목소리도 당분간은 계속 우렁차게 들릴 전망이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논란이 또 생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일련의 해프닝들로 KBO와 구단들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장면들을 되짚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공론화를 통해 바뀔 여지도 충분히 남겨뒀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문화의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무관중 리액션’이 KBO에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윤승재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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