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제34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우승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신라의 원효(元曉)가 날이 저물어 어느 동굴에 몸을 뉘었다. 잠을 자다 목이 말라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그릇에 담긴 물을 마셨다. 다음 날 깨어보니 간밤에 마신 물은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 전날 밤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준 물이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구역질이 났다.

순간 원효는 세상 모든 것은 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효는 그 길로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혼자서 수행에 들어갔다.원효 깨달음의 요체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소연(30·메디힐)이 4개월 만에 복귀한 첫 실전 무대에서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의 우승컵을 차지했다.
유소연(30)이 지난 6월 18~21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장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 일체유심조의 증인이 되었다.

1라운드에서 6언더파로 고진영(24)에 1타 뒤져 2위에 오른 유소연은 2라운드에서 5언더파를 보태 11언더파로 단독 선두에 올랐다. 이후 3라운드에서 1타를 줄이는 데 그치고 4라운드에선 버디와 보기를 맞바꾼 파 플레이를 했다. 1, 2라운드에 비해 3, 4라운드는 잘 풀리지 않은 셈이다.

우승 경쟁을 벌일 만한 다른 선수들도 기복 심한 플레이로 그를 위협하지 못했다. 2, 3라운드에서 1타 차이로 유소연을 추격했던 오지현(24)은 4라운드에서 타수를 잃었고 역전의 여왕 김세영(27)도 빨간바지의 주술이 통하지 않았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은 1라운드의 7언더파를 2라운드까지 유지하다 3, 4라운드에서 1타를 잃어 6위에 머물렀다.

직전 대회인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김세영과의 연장전 끝에 우승한 김효주(25)만이 꾸준한 상승기류를 탔다. 1라운드 2언더파 공동15위에서 2라운드 5언더파 공동8위, 3라운드 9언더파로 3위로 올라와 마지막 라운드에서 유소연, 오지현과 함께 챔피언조에서 우승경쟁을 벌였다. 다른 선수들이 타수를 줄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효주는 2타를 줄였으나 1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오지현은 타수를 잃어 2타를 줄인 김세영과 함께 8언더파 공동 4위에 만족해야 했다.

유소연이 상승기류를 탄 김효주의 추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스코어를 지켜낸 것은 전날 밤에 내린 결단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중국 여자오픈(2009년). US여자오픈(2011년), 캐나다 퍼시픽 여자오픈(2014년), 일본 여자오픈(2018년) 등 4개의 내셔널 타이틀을 차지했으나 정작 한국여자오픈은 우승하지 못했다. 2008년 KLPGA투어 신인으로 한국여자오픈 우승 기회를 맞았으나 악천후 속에 치러진 연장전에서 신지애에게 패했다.

그래서 한국여자오픈 우승은 유소연에게 더욱 간절했다. 2, 3라운드 단독 1위에 오르면서 간절한 소망이 가시화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가슴은 뛰고 온갖 상념이 피어올라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좋은 목표가 있다면 흔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우승 상금 전액(2억5,000만원)을 코로나19 성금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하고 편히 잠을 청했다.

유소연은 오지현에 1타 차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했다. 그러나 오지현은 전반에만 3개의 보기를 하면서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대신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김효주가 2타를 줄이며 추격했다. 18번 홀(파4)에서 세컨샷을 벙커에 빠뜨렸으나 멋진 벙커 샷으로 파 세이브에 성공, 우승을 확정지었다.

2018년 6월 LPGA투어 마이어 클래식 이후 2년 만의 우승이다. 국내 대회에선 2015년 8월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이후 4년10개월만이고 KLPGA투어 통산 10승째다.

전날밤의 ‘한 생각’으로 소망을 이룬 유소연의 다음 꿈은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AIG 위민스 브리티시오픈으로 향하고 있다.

오는 8월 20일~24일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열 트룬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지구촌 주요 6개 내셔널타이틀을 쟁취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동안 브리티시 여자오픈에 8번 출전, 톱5에 3번이나 들었다.

일체유심조의 효험을 경험한 유소연이 어떤 자세로 브리티시 여자오픈에 임할지 궁금하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주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