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KPGA 오픈 우승자 이수민.
‘신의 한 수’가 통했다.

지난 7월 16~19일 충남 태안의 바닷가 솔라고CC에서 열린 KPGA 오픈이 무관중 경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골프 팬들의 이목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꾸준한 호황을 누려온 KLPGA투어에 비해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눈총을 받았던 KPGA로선 분위기를 쇄신하는 계기를 찾은 듯하다.

구자철 KPGA 회장(65)이 던진 승부수가 절묘했다. 올 1월 18대 KPGA 회장으로 취임한 구 회장은 침체의 늪에 빠진 KPGA의 코리안투어를 흥행에서 KLPGA투어 수준에 근접시켜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떠안았다. 열의는 남달랐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9개월 만에 올 시즌 개막전을 열었다.

늦은 개막전이었지만 출발이 좋았다. 골프 팬들의 굶주림이 심했던 탓인지 7월 2~5일 경남 창원시 아라미르 골프앤리조트에서 열린 부산경남오픈은 남자대회로는 드물게 골프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미남 홍순상(38), ‘낚시꾼 스윙’의 최호성(47), 18살의 ‘大物’ 김주형(18), 연장전 끝에 김주형을 꺾은 이지훈(34) 등이 좋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노마드 골퍼’ 김주형의 겁 없고 호쾌한 플레이는 골프 팬들에게 ‘될성부른 떡잎’으로 각인되었다.

코리안투어 데뷔전인 부산경남 오픈에서 준우승한 김주형은 1주일 뒤 군산CC 오픈에서 우승하며 KPGA의 새 역사를 썼다. KPGA의 새 선장 구 회장의 눈엔 대형 골퍼로서의 DNA가 차고 넘치는 김주형은 샛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시즌 세 번째 대회에서 구 회장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모험을 했다. KPGA 코리안투어에 첫 선을 보이는 KPGA오픈에서 코리안투어 사상 최초로 일반적인 스트로크(Stroke) 방식이 아닌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을 채택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의 이 대회를 위해 구 회장은 사재를 털었다.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스테이블포드 방식이란 영국 웨일즈의 군의관 출신 외과의사 프랭크 스테이블포드(Frank Stableford)가 1931년 고안해낸 경기방식이다.

OB 몇 번 내고 해저드에 몇 번 빠지면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하게 되는 타수 중심의 스트로크 방식에 불만이 컸던 그는 실수에 대해선 어느 정도 관대하고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시도가 성공했을 경우 많은 점수를 부여하는 포인트 산출방식을 고안해냈다.

처음 그가 고안한 스테이블포드 방식은 더블보기 이상을 하면 0점 처리하고 보기는 1점, 파 2점, 버디 3점, 이글 4점, 알바트로스 5점, 파3홀 홀인원 4점, 파4홀 홀인원 5점을 주도록 했다. 미스샷으로 타수 잃는 걱정에서 벗어나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경기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변형 스테이블포드(Modified Stableford) 방식은 원래 방식을 약간 변형시켜 선수들이 보다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경기를 하도록 점수를 조정한 것이다. 더블보기 이상은 -3점, 보기 -1점, 파 0점으로 하고 버디는 2점, 이글 5점, 알바트로스는 8점을 얻는다.

스테이블포드 방식은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과 함께 R&A(영국왕립골프협회)에서도 공인한 경기방식이다.

처음 접하는 이 방식에 선수들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실제 경기에서도 선수들은 그동안 KPGA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플레이를 펼쳤다. 과감하고 도전적인 플레이가 속출했고 점수를 지키려는 소극적이고 수세적인 플레이가 사라졌다. 순위는 수시로 변했고 결과는 예측불허였다. 수성(守城)이 아닌 공성(攻城)의 경기로 박진감이 넘쳤다. 골프 팬들의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으로 치러진 KPGA오픈에서 이수민(27)이 극적으로 우승했다.

이수민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10개를 보태 20점을 추가하며 합계 50점으로 김민규(19), 김한별(23)과 동점을 기록해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1차전에서 이수민과 김민규가 각각 버디를 잡아 2차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이수민은 4m 버디퍼팅을 성공시켜 파에 그친 김민규를 제치고 우승했다. 지난해 제네시스 상금왕에 오른 그의 KPGA 통산 우승 횟수도 4승으로 늘어났다.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의 경기에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해서 모든 경기를 이 방식으로 치를 수는 없다. PGA투어나 유러피언투어, 아시안투어 등 대부분의 투어에선 전통적인 스트로크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벤트 성격이 강한 일부 대회에서 이 방식을 택할 정도로 경기방식으로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경기방식의 변화만으로 선수들의 경기내용이 달라지고 골프 팬들의 관심도가 높아진다면 코리안투어 경기에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을 적절히 적용하는 것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주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