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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선수들의 팀이탈과 죽음, 왜 반복되나

‘선수는 강하게 커야 한다’는 남성 중심의 고정관념, 여자선수 속마음 헤아리는데 한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최숙현에 이어 여자 배구의 고유민마저 세상을 떠났다. 이유는 비슷하다. 팀내 괴롭힘과 따돌림이다. 최숙현의 경우 직접적인 폭력까지 추가됐다.

여자 농구와 배구는 시즌 중 숙소로 이탈하거나 실력이나 부상이 아닌 인간적인 환멸을 느껴 팀을 떠나는 선수가 연례행사처럼 매번 나오고 있다.

고유민의 경우 팀을 이탈했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매번 반복되는 팀내 불미스러운 문제 등은 분명 곱씹어 봐야 할 문제다.
  •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 진상규명 및 폭력 근절, 스포츠 구조개혁을 위한 국회 긴급토론회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철저히 고립됐던 최숙현과 고유민

많이 알려진대로 최숙현은 감독과 팀닥터의 폭행에 고통받았다. 하지만 주위에 최숙현을 도와줄 동료는 없었다. 오히려 동료들도 감독과 팀닥터 편에 서 방관했고 선배는 폭력에 가담하기도 했다.

고유민은 악성 댓글 등으로 큰 고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족들은 ”악성댓글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다“라며 ”팀내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해 힘들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독을 중심으로 코치진의 싸늘한 시선 등이 고유민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남성중심적-엄격한 숙소 문화의 폐해

일반적으로 선수가 은퇴를 할 때는 부상이나 기량이 쇠퇴해서인 경우다. 하지만 한국 여자선수들은 한가지 이유가 더 추가된다. 바로 팀내 불화다. 여자 농구는 유망했던 이승아, 홍아란이 시즌 중 갑자기 팀을 떠난 바 있고 여자 배구에서도 곽유화 등이 팀을 이탈했다. 이들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경우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경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체육계의 한 관계자는 “유독 여자 선수들이 불화 등으로 팀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 지도자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대부분이 남자 지도자가 많다. 남자 지도자들은 아무리 여자 선수들을 이해하려고 해도 심리까지 파악하기는 힘들다. 지도자와의 갈등이 생기면 자연스레 팀에서도 그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어 선수는 고립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나치게 엄격한 숙소문화를 꼽는다. “프로 선수들이면 성인인데 여전히 한국 지도자들은 ‘선수들은 강하게 다뤄야 한다’는 그릇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출도 제한적이고 숙소에 있으면 훈련량만 많아져 선수들이 젊은 혈기를 발산할 곳을 찾지 못한다”며 “특히 여자 농구나 배구 지도자의 경우 ‘강하게 다뤄야 선수가 큰다’고 생각하기에 관리가 더 엄격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결국 부득이하게 남성이 많은 지도자들은 여성 선수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고, 엄격하고 제한된 숙소문화와 많은 훈련강도 등에 선수들이 지쳐가고 스트레스를 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스포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맞닿은 문제

여자 선수를 많이 보유한 한 스포츠에이전트는 흥미로운 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단순히 스포츠에 한정지을 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와도 맞닿아있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대부분 40~50대가 많다. 하지만 선수들은 20대가 대부분이다. 세대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체벌이 얼마나 많았나. 군대에서도 폭력은 흔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금지되고 일어나면 큰일로 보지 않나. 지도자들은 ‘예전에는 이정도는 넘어갔다’고 생각할 게 요즘 선수들에게는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바로 거기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이 에이전트는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예전에는 며느리들이 그렇게 커서 이제 시어머니가 됐는데 요즘에는 아들집 방문하는 것도 힘들지 않나. 예전같으면 넘어갈 일이 ‘고부갈등’이 된다. 이처럼 예전 세대와 지금 세대가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이해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산업화를 이루고 시대가 바뀐 곳 아닌가. 흔히 말하는 ‘세대간의 갈등’이 스포츠계에서도 나쁜 쪽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또래보다 먼저 ‘조직’으로 살았고, 이 `조직'으로 인해 힘들어했던 경험을 많이 겪었다. 조직에 대해 적응을 못하면 이탈자는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고유민은 생전 인터뷰에서 배구선수를 그만둔 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운동도, 경기도 나가기 싫었다. 저희 팀 팬들도 ‘쟤 때문에 우승 못할 것 같다’고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다 내가 잘못한거 같았다. 마음도 그렇고 다 어긋나 있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듣기가 싫었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그때 고유민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손을 뻗어줄 수 있는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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