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인종차별 반대’…유색인종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 없으면 개선 안돼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짓눌려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4개월. 그사이 ‘인종차별 타파’ 움직임이 전 세계로 퍼졌고, 지금도 미국 곳곳에서는 시위가 한창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흑역사’ 인종차별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

특히 스포츠계는 인종 차별의 단골 장소다. 경기 전 선수들이 무릎을 꿇으며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드러내기도, 경기를 보이콧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제자리걸음이다.

국내의 해외파 선수들도 희생양이 되고 있다. 불과 며칠 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 스페인 라 리가에서 뛰는 이강인 (발렌시아)이 인종차별적 대우를 받았다. ‘유색 인종 평등’을 외치고 있는 스포츠계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손흥민·이강인 ‘인종차별 희생양’…사라진 자막과 ‘눈 찢기’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 3편(에피소드 7~9) 예고편에서 ‘인종 차별’ 논란이 불거진 손흥민이 말하는 부분. 오른쪽은 수정된 자막. 아마존 프라임 캡처

지난 주말 손흥민과 이강인이 해외 매체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 피해를 겪는 선수들 대부분이 경기장 내에서 인종 차별적 모욕을 당하는 것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지난 11일(이하 한국시간) 토트넘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올 오어 낫싱)’에서 지난해 7월에 있었던 손흥민과 위고 요리스 골키퍼의 의견 충돌 비하인드 장면이 담긴 예고편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 요리스를 비롯한 주제 무리뉴 감독, 심지어 프랑스어로 말리던 서지 오리에의 말까지 모두 영어 자막을 넣었지만, 손흥민의 발언에만 ‘SHOUTING(소리침)’으로 표기해 인종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사태를 인지한 아마존은 본편에서 ‘SHOUTING’ 대신에 손흥민이 한 말을 그대로 번역해 자막을 달았다.

그러나 유튜브에 올라온 예고편 영상 자막 수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예고편은 조회수 300만을 돌파했고, 댓글로 많은 팬들이 인종차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강인도 인종차별 논란의 피해자가 됐다. 스페인의 유명 매체 ‘아스’는 지난 11일 내보낸 지면 표지에서 라리가 유망주 8명을 캐리커처로 묘사했는데, 그 가운데 이강인과 일본인 선수 구보 다케후사의 눈만 ‘찢어진 눈’으로 묘사했다.

다른 6명의 눈은 동그랗게 그려져 있어 차이가 확연했다. 눈을 찢는 제스처는 동양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행위로 통한다. 비난을 자초한 캐리커처였다.

EPL 20개 구단은 올 시즌 동안 ‘무릎 꿇기 세리머니’와 더불어 유니폼 옷소매에 인종차별 반대 구호가 적힌 패치를 부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종차별은 만연하고 있다.

‘인종 차별 운동’에도 제자리걸음…반복되는 ‘흑역사’

스포츠계 역사를 들여다보면 현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깊게 박혀 있는 인종차별 뿌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뽑아내려는 노력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차별적 분위기가 사그라들 때쯤 다시 피해자가 나왔다.

1968년,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개최됐던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육상 200m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는 시상대 위에서 검은 장갑을 끼고 하늘 높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지긋지긋한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두 선수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올림픽 선수촌에서 쫓겨나고 선수자격을 영구 박탈당했다. 흑인인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지 불과 여섯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지난 2014년 도널드 스털링 미국프로농구(NBA) LA 클리퍼스 구단주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NBA 전설’ 매직 존슨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자 “다시는 흑인을 내 경기장에 데리고 오지 마라”, “흑인은 이스라엘에서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등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퍼부었다.

논란이 커지자 스털링 구단주는 NBA 사무국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했다. 전과는 달리 징계 수위가 높아지긴 했지만, 애초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었다.

혹자는 유색 인종의 지위가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미래의 평가도 이와 같을지는 의문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징계하고, 각성하고, 또 다시금 사태가 발발한다. 이 같은 패턴으로 스포츠계에서는 유색 인종을 상대로 한 차별이 반복되고 있다.

그때마다 나오는 단골 멘트가 있다. 인종 차별적 행동이나 발언인지 몰랐다는 것.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이는 배움에 있어서 해당하는 이야기지, 인종 차별 행동을 실수로 결부시킬 핑곗거리가 될 순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에 비해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위에 대한 징계 수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그에 따른 조치일 뿐이지 인종차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의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내일의 피해자가 내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노진주 스포츠한국 기자 jinju217@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