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몸값 깎고 흥국생명 입단, 셀러리캡 무력화로 리그 균형발전 어려워져 비판도

한국이 낳은 역대 최고의 배구선수. ‘축구에 리오넬 메시가 있고, 농구에 마이클 조던이 있다면 여자배구에는 김연경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위상의 김연경(32). 하지만 이런 김연경이 배구 팬들 사이에서 쓴소리를 듣고 있다.

활발한 방송활동으로 얻은 털털한 이미지와 ‘식빵누나’ 이미지의 일반적 이미지와 달리 배구팬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국내 복귀를 선택하고도 비판받는 김연경의 ‘페이컷’의 딜레마. 무슨 이유일까.

김연경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흥국생명 김연경.

김연경은 지난 6월 10년 만에 국내 복귀를 택했다. ‘배구 여제’의 국내 복귀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이슈였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와 2021년으로 연기된 도쿄 올림픽을 사실상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으로 보고 있기에 메달진입을 위해 국내에서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최선의 컨디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연경은 10년 만에 흥국생명에 돌아오는 타이밍이 늦었다.

이미 흥국생명은 핵심선수 이재영의 쌍둥이 동생인 이다영까지 FA로 영입했고 샐러리캡(팀연봉 상한제)을 거의 다 채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김연경은 보유권을 가지고 있는 흥국생명으로 돌아오기 위해 페이컷(연봉삭감)을 받아들였다.

기존에 김연경은 해외에서 20억원에 달하는 세계 1위의 고액연봉자였지만 국내 복귀를 위해 ‘고작’ 3억5000만원이라는 페이컷을 감행한 것.

가뜩이나 흥국생명은 지난해 우승팀인데 이다영이라는 최고의 세터를 영입한데다 ‘꼴찌팀에 가도 우승후보로 만들’ 김연경까지 영입되며 ‘배구 역사상 가장 강한팀’을 구축하게 됐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말은 시즌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대명사가 됐다.

논란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페이컷을 둘러싼 옹호와 비판

김연경이 흥국생명으로 복귀하면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페이컷’을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오죽하면 ‘이러다 패배는커녕 무실세트 우승을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김연경을 옹호하는 측은 김연경이 스스로 연봉을 삭감한 것은 ‘선의’이자 자신의 손해를 감수한 대승적 차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연경은 연봉이 선수가치인 프로스포츠에서 최소 5분의 1 이상의 연봉삭감을 한 것은 스스로 손해를 떠안은 것이다. 김연경이 입단하면서 자연스레 국내배구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다.

또한 김연경은 이다영-이재영과 같은 국가대표 선수들과 미리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되면서 도쿄올림픽 메달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김연경이 페이컷을 하며 흥국생명에 있던 다른 선수들은 연봉삭감 없이 자신의 직장을 지키게 됐고 흥국생명도 전력 유출을 막았다.

그러나 비판하는 쪽의 입장 역시 만만치 않다. 먼저 김연경이 페이컷을 택하면서 샐러리캡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것. 샐러리캡을 도입한 이유는 한팀의 지나친 선수 끌어모으기를 방지하고 리그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다.

만약 김연경이 흥국생명에 받아낼 수 있을 만큼 최대한의 연봉을 받기라도 했다면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영입하는 대신 다른 선수들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타팀들은 김연경을 상대하긴 해야 하지만 흥국생명의 다른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 흥국생명은 전력이 약화되고 타팀은 강화돼 그나마 전력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연경이 스스로도 ‘희생했다’고 말하는 수준의 페이컷을 하면서 흥국생명은 전력 누수도 없이 김연경을 잡았다. 페이컷을 통한 샐러리캡에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또한 김연경이 고작 3억5000만원밖에 받지 않으면서 내년 연봉협상에서 다른 선수들이 ‘김연경도 3억5000만원인데 네가 더 받냐’라는 말을 내외부에서 들을 수밖에 없게 됐다. 마치 부장님은 짜장면을 시켰는데 사원이 500원 더 비싼 짬뽕을 시키기 힘든 분위기가 배구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으로 ‘어우흥’이 확실시되면서 초반에야 김연경 때문에 여자배구가 화제가 되겠지만 중반을 넘어 흥국생명이 압도적으로 리그를 지배하면 오히려 인기가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스포츠든 한팀이 독보적이면 폐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독보적 전력이 정당한 투자가 아닌 ‘페이컷’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보기도 한다.

왜 릅연경인가… 페이컷의 딜레마

2010년 NBA에서는 마이애미 히트가 ‘킹’ 르브론 제임스를 영입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가뜩이나 최고선수인 드웨인 웨이드·크리스 보시도 있었기에 ‘빅3’로 불렸다. 이때 3명의 선수는 모두 우승을 위해 ‘페이컷’을 해 큰 논란을 빚었다.

2020년 흥국생명을 보며 배구팬들은 마치 2010년의 NBA 마이애미처럼 느끼고 있다. 김연경과 르브론을 합친 ‘릅연경’으로 부르고 이재영, 이다영을 웨이드와 보시로 비유하기도 한다.

지난 5일 프리시즌 컵대회인 KOVO컵에서 흥국생명을 물리친 ‘MVP’인 GS칼텍스 강소휘를 2010~2011 NBA 파이널에서 르브론의 마이애미를 준우승시킨 댈러스 매버릭스의 디르크 노비츠키에 빗대 ‘소휘츠키’라고 부르기도 한다.

NBA 준우승에 그친 후 르브론이 “내 패배를 원했던 이는 기뻐하겠지만 그래봤자 현실세계(Real World)로 돌아가야한다”고 말해 아직까지도 ‘실언’으로 비난받고 있다. 김연경 역시 방송에서 자신의 페이컷에 대해 ‘희생’을 강조해 르브론의 ‘현실세계’ 발언과 비교되고 있다.

김연경 입장에서는 스스로 연봉을 포기하고 국가대표팀까지 위하는 선택을 했는데도 오히려 비판받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배구팬들 역시 페이컷으로 인해 샐러리캡 제도의 유명무실화와 흥국생명의 압도적 우승이 유력한 상황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선의로 개발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죄책감을 느껴 지금의 ‘노벨상’을 만들었다고 얘기된다. 좋은 의도가 결과까지 좋을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김연경의 페이컷 딜레마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