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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 갈 때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헤어져야 한다. 설령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 아버지는 아들을,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남녀가 나뉘는 층에서 헤어진다. 샤워부스에서 차가운 물을 맞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소리가 난다.

“아빠 아파. 아빠 손은 살이 없나 봐.“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을 거품 낸 타올로 문지르는 아빠는 무척 열심이다. 아들은 투정을 부리는데 아빠는 거품이 몸에 튄지도 모르고 팔을 들어 닦는데 여념이 없다.

반대편 앉은뱅이 의자가 있는 샤워 부스 쪽에는 어깨가 축 처진 노인 한 분이 무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앞쪽에 샤워기 물을 틀고 손바닥으로 물 온도를 가늠하는 젊은 사람은 아들 같아 보인다. 물 온도를 맞춰보던 사람은 앉아 있는 노인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이내 샤워기의 물을 뿌린다.

노인의 등은 굽어 있다. 그 굽은 등에는 지나온 세월이 묻어난다. 봇짐을, 지게를 짊어졌을 등이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졌을 등이다. 가족을 위해 무거운 짐 마다하지 않고 등줄기로 흐르는 뜨거운 땀을 빗물처럼 적시다 굽어진 등이다. 이제 짐은 내려졌어도 시간의 무게로 내려앉은 어깨와 굽은 등은 펴지지 않는다.

사람의 등에는 인류의 진화의 역사가 있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유인원에서 네안데르탈인으로 대변되는 원시인류를 거쳐 신생 인류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허리와 등이 점점 반듯해지는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자연계 속에서 최상위 포식자의 위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쫙 펴진 거만해 보이는 등은 과거에는 지배자의 자세였을 것이다. 요즘 같으면 갑질이나 권위의 이미지로 보여서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한때 그것은 카리스마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사람의 등은 남녀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생리학적으로 여성은 가슴을 내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듯하게 펴진 등을 갖게 되는데 이것을 ‘반신 체형’이라고 한다. 남성의 등은 살짝 구부러지게 되는데 ‘굴신 체형’이라고 한다. 이는 남녀 간 신체적 차이로 발생하는 일반적인 견해일 뿐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옷을 디자인하는 재단사들이 주로 쓰는 단어이기도 하고 재킷과 슈트를 파는 곳에서도 사용하는 용어다.

골프 스윙에서도 등은 중요한 요소이다. 스윙의 시작에는 어깨 회전이 기본인데 등은 어깨를 이루는 벽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어깨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등의 회전이 동반해야 한다. 등의 견갑골을 이용해서 부드러운 꼬임을 만들어 낼 때 백스윙이 만들어진다고 보면 된다.

스윙은 크게 백스윙, 다운스윙, 팔로 스루로 나눌 수 있다. 백스윙은 뒤로 가는 스윙으로 생각하는데, 백스윙의 ‘백(back)’은 ‘등’을 의미한다. 등을 타깃 방향으로 돌린다고 생각하면 좋은 백스윙이 만들어진다고 스윙 코치들은 말한다.

유러피언투어와 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영국 출신의 토미 플리트우드가 있다. 이 선수는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큰 키에 수염을 기르고 있다. 조금 유별나게 보이는 부분은 어드레스 때 드러나는 굽은 등이다. 걸어갈 때도 약간 구부린 상태로 걷는데 스윙 동작에서는 유난히 심하게 등이 굽어져 있다. 중계방송을 보면서 토미 플리트우드를 보면 조금 안쓰럽게 느껴지는데 그건 순전히 굽은 등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자신의 모습이 훼손되어 가는 것을 본다는 건 분명 슬픈 일이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거역할 수 없는 섭리겠지만 관리를 잘하신 분들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일 때가 있다. 라운드가 끝나고 목욕탕 샤워부스에서 탄탄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선배들을 볼 때가 그렇다. 평평하고 반듯한 등과 튼실한 하체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닐 것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자세로 건강관리를 잘한 선배들은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강조해서 말한다. 그리고 라운드 시 카트를 타기보다 걸으라고 조언한다.

최근 중년의 건강관리에 중요한 요소로 근력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가나 헬스를 하는 중년을 주변에서도 자주 접하게 된다. 기초 체력을 다지는 노력을 통해서 건강관리를 한다면 좋을 듯하다. 아울러 탄수화물보다 신선한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습관을 하는 것도 건강관리의 중요한 요소일 듯하다. 건강하고 탄탄한 몸으로 만든 견실한 스윙을 위해서는 이처럼 기초체력을 다지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 같다.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에 들어섰다면 준비하고 가야 한다. 숙명처럼 짊어졌던 등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 굽은 등으로 견인했던 많은 노고와 희생을 이제는 보상해 주어야 한다. 소의 멍에처럼 굽어진 당신의 등에 얹힌 인생의 무게를 덜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의 피니시는 쫙 펴진 등으로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공을 바라볼 수 있기를.



장보구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