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선수단.연합

‘뜨겁거나, 아주 차갑거나.’ 가을야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10개 구단에 어울리는 말이다. 아직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다.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NC 다이노스를 비롯해 가을 잔치에 초대받은 팀들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팀들에는 차디찬 칼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악화된 재정난과 팀 쇄신 정책으로 베테랑 선수들의 정리해고가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방출 러시’ 바람이 불고 있는 야구계다.

한화 이용규.연합

‘한화 간판’ 이용규도 피하지 못한 구조조정 칼바람

어찌 보면 올 시즌 시작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구단들은 예년만큼의 관중수입이나 광고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 여파로 이른 시간에 가을야구 탈락이 확정된 팀들은 묵직한 연봉을 챙기는 고참 선수들과 이별을 택했다.

성적 부진도 대규모 정리해고가 단행된 이유 중 하나다. 반등을 위해 미래가치에 눈을 돌린 구단은 대대적인 리빌딩 작업에 돌입했고, 자연스레 팀내 ‘터줏대감’ 선수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특히 시즌 내내 하위권을 전전하다 결국 꼴찌 수모를 당한 한화 이글스가 역대급 물갈이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지난 6일 올 시즌 팀 내에서 유일하게 정규이닝을 채운 이용규에게 “팀 방향성과 맞지 않다”라며 방출 통보를 했다.

올해 주장으로 팀을 이끈 이용규가 내쳐질 것이라곤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이용규는 올 시즌 120경기에 나서 타율 2할8푼6리, 17도루, 60득점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했다.

또 시즌 마지막 경기 후엔 “책임감을 가지고 어린 선수들을 잘 끌어가야 할 것 같다”라며 내년을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이용규도 칼바람의 희생자가 됐다.

다행히 경험이 풍부한 이용규는 외야 전력 강화를 꾀하고 싶던 키움 히어로즈의 눈에 들어 빠르게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용규만큼이나 주축 선수로 분류됐던 투수 윤규진, 안영명과 타자 송광민, 최진행 등 총 17명의 선수가 구조조정에 의해 한화를 떠나게 됐다.

선수들뿐만이 아니다. 한화의 레전드인 송진우 투수코치와 장종훈 육성군 총괄 코치 등 코치진 10명도 방출됐다. 그야말로 ‘광폭 행보’를 보이면서까지 팀을 갈아엎고 있는 한화다.

정민철 단장이 총대를 메고 선수단 리빌딩에 앞장서고 있다. 박찬혁 신임 대표이사의 부임에 맞춰 전면에 나서 선수단 개편을 단행하고 있는 것.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있는 정민철 단장은 냉철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칼바람’ 끝물?…아직 시작도 안했다

대규모 실업 사태는 한화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정규시즌을 9위로 마감한 SK 와이번스는 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윤희상을 비롯해 2012년 홀드왕 출신 박희수 등 투수 4명과 채태인, 윤석민, 김재현을 포함한 야수 7명 등 총 11명의 선수에게 방출 통보를 했다. KIA 타이거즈 또한 유재신, 임기준 등 11명을 정리했다. 여기에 2017년 KIA의 우승 주역인 김주찬은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줬다. 8년간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라 할지라도 재계약 앞에서는 냉정함으로 무장한 KIA다.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LG 트윈스도 여건욱, 문광은, 최재원 등 11명에게 방출 의사를 전달했다. 여기엔 올해 입단한 투수 박찬호(투수)도 포함됐다. 두산, 삼성 등도 빠르게 선수단 개편 움직임을 보였다.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선수단 개편 작업의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이보다 더할까 싶지만, 눈앞에 펼쳐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제한적 관중 입장으로 올해 10개 구단 관중 총수입은 45억 2048만 3900원에 그쳤다. 지난해 수입 858억 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무려 20분의 1가량으로 수입이 확 줄었다.

각 구단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관리 비용까지 따져보면 관중 입장으로 인한 수익은 거의 없다.

여기에 144경기가 모두 치러졌기에 선수들에게 약속된 연봉을 모두 다 지급해야 한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재정난이 내년, 내후년에도 해소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더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닥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갑작스레 팀을 떠나야 하는 선수들의 머릿속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대부분 선수들은 현역 연장 의지를 강력하게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경험치가 높고, 여전한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재정난에 얼어붙은 구단을 상대로 재취업할지는 미지수다.

과거 최형우(KIA)와 서건창(키움)은 방출 아픔을 딛고 재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야구계를 감싸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방출된 선수들 앞에 놓인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KBO리그 중흥기를 앞장서서 이끌었던 선수들이 전례 없는 구조조정에 희생되며 유독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이례적인 상황에 은퇴를 선언하는 선수들도 나오고 있다.

더욱 암담한 건 아직 시즌이 모두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곳저곳에서 무거운 소식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시즌이 끝난 뒤 열리는 스토브리그에서 지각변동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역대급이라고 불리는 이번 구조조정이 고작 ‘시작 단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노진주 스포츠한국 기자 jinju217@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