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말린스 중국계 신임단장 킴 응

마침내 메이저리그(MLB)의 ‘유리천장’이 깨졌다. 역사적인 첫 여성 단장이 탄생했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단장을 꿈꿨던 한 여성은 1990년대에 시카고 화이트삭스 프런트로 활동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승승장구했다. 8년 만에 명문 뉴욕 양키스에서 부단장 자리에 올라 구단을 월드시리즈 3연패로 이끌었다. 그러나 남성성이 강한 프로야구인 탓에 단장직을 두곤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다. 그러나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 여성은 마침내 마이애미 말린스 단장 자리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여성 단장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도 함께 세웠다. 중국계 미국인 여성 킴 응(51)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킴응 마이애미 말린스 단장.AP=연합뉴스

북미 4대 스포츠 통틀어 여성 단장은 ‘처음’

마이애미는 지난 14일(이하 한국시각) “신임 단장으로 킴 응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발표였다. 여성 단장 탄생은 야구는 물론 미국 프로풋볼(NFL), 프로농구(NBA),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등 북미 4대 스포츠를 통틀어 첫 사례다.

응은 메이저리그 단장에 오른 역대 두 번째 아시아계 미국인이 됐다. 전 LA 다저스 단장이자 현 샌프란시스코 야구 운영부문 사장인 파키스탄계인 파르한 자이디(44)가 유일한 아시아계였다.

스포츠계 역사를 새로 쓴 응의 이력을 살펴보면 화려하다. 199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프런트에서 일했던 그는 29세의 나이로 최고 명문 구단 양키스의 부단장직에 올랐다. 1998~2000년 양키스를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LA 다저스 부단장(2002~20 11년)을 거쳐 메이저리그 사무국 운영 수석 부사장으로 10년 가까이 일했다. 응은 메이저리그 프런트로 일하면서 포스트시즌 8회, 리그챔피언십시리즈 6회, 월드시리즈 우승 3회를 경험했다.

그러나 유독 단장 자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응은 2005년 몸담고 있던 다저스에서 단장 면접을 봤지만, 좋은 소식을 듣지 못했다. 뒤이어 뉴욕 메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최소 6개 구단의 단장 면접을 차례로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무려 양키스를 월드시리즈 3연패로 이끌었을지라도, 남자 스포츠구단 단장 자리 앞에서 응은 매번 후순위로 밀려났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응은 단장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같이 면접 본 자 중에, 응보다 경험과 경력이 부족한 남성들이 있었지만 단장 자리를 꿰차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당시를 설명했다.

이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과거가 됐다. 메이저리그와 함께한 시간만 장장 30년인 응은 단장이 되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잠재의식을 현실로 끌어올렸다.

이번 사례를 단순히 성별 장벽을 깨트렸다는 좁은 시야로 접근하면 안 된다.

1947년, 재키 로빈슨(1919~19 72)이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하면서 피부색 장벽이 허물어졌다. 이후 유능한 유색인종 빅리거들이 쏟아져나왔다.

유입되는 선수가 다양해지자, 자연스레 리그 몸집도 커졌다. 쉽게 예를 들어 류현진(토론토)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미국 야구에 관심을 가지는 한국인들은 크게 늘었다. 이런 사례는 세계 각국에서 매년 나온다.

응의 출현은 로빈슨의 등장과 비슷한 무게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50년, 100년 후의 메이저리그를 긍정적으로 내다볼 수 있는 이유다.

냉대받던 시절은 과거일 뿐…쏟아지는 축하 메시지

로빈슨은 외로운 출발을 했다. 어렵사리 미국 야구판에 발을 들였지만, 참혹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기 한 달간 두 자릿수에 가까운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한 데 이어 출루할 때면 1루수 발길질에 시달려야 했다. 심판도 은근슬쩍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 노골적인 살해 협박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동료 피 위 리즈가 로빈슨에게 손을 내밀었다. 인종 차별을 퍼붓는 관중들 앞에서 피 위 리즈는 보란 듯이 로빈슨과 어깨동무를 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로빈슨을 감싸는 차별적 분위기는 현저히 사그라졌다. 온기가 존재하자 로빈슨은 3년 차 때부터 6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등 팀내 최고타자로 활약했다.

반면 응은 축하 세례를 받으며 출발선에 섰다. 단장 부임 발표가 난 직후 이메일, 문자 등 약 1000개 이상의 응원 메시지가 응에게 쏟아졌다.

이 중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 여사, 샤론 로빈슨(로빈슨의 딸)이 있었다. 스포츠 선수도 포함돼 있었다. 여자테니스의 전설이자 성평등 운동에 앞장섰던 빌리 진 킹(76)이 응을 축하했다.

미셸 오바마는 자신의 SNS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여성 단장의 탄생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정말 흥분된다. 나는 시카고 컵스를 사랑하며 자랐지만, 당신을 응원할 것”이라고 적었다.

킹은 “야구계에 발 들인지 30년이 된 응은 첫 여성 단장의 자리에 올랐다. 역사에 남을 일이다. 전진하라!”며 힘을 보냈다. 응원대로 전진할 일만 남았다. 응은 “데릭 지터 마이애미 사장이 처음 단장 선임을 알려줬을 때 나의 왼쪽 어깨에 1만 파운드의 무게가 실리는 것 같았다. 30분 후엔 그 무게는 다른 어깨로 옮겨졌다”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기꺼이 떠안겠다”며 앞날을 다짐했다.

이제 마이애미에서 남기는 응의 업적은 모두 역사가 된다. 응은 “마이애미의 우승이 나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평생 깨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메이저리그의 유리천장을 부순 응이다. 그의 목표에 전 세계 야구인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노진주 스포츠한국 기자 inju217@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