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재(22)가 오거스타 내셔널GC에 ‘마스터스 전설’의 위대한 첫 발자국을 찍었다.

11월 13~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GC(파72)에서 열린 지구촌 별들의 제전 제84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첫 출전한 임성재가 달성한 위업은 당당히 마스터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내셔널GC 코스 곳곳에 남긴 그의 발자국들은 새로운 전설의 탄생을 예고하는 씨앗으로, 내년 4월 또는 멀지 않은 훗날 찬란한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는 유쾌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경기를 마친 뒤 존슨과 악수하는 임성재(오른쪽).연합뉴스

마스터스 중계방송을 지켜본 세계의 골프 팬들은 놀랐을 것이다. 이제 겨우 PGA투어 2년 차의 신인이 마스터스 마지막 라운드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PGA투어 최고의 화력(火力) 중 한 명인 더스틴 존슨과 함께 챔피언조를 이뤄 아름답지만 악명 높은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를 당당히 누비는 모습을 보고 “저 선수가 마스터스에 처음 출전하는 선수가 맞아?”하고 의문을 던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세계 골프 팬들에게 임성재는 아직 낯설다. 강철 같은 체력으로 쉬지 않고 투어에 참가하며 데뷔 해인 2019년 신인상을 수상하고 지난 시즌 페덱스컵 랭킹 1위까지 오를 만큼 선수들 사이에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올 2월 말 혼다 클래식에서 PGA투어 첫 승을 올렸다.

골프 관련 미디어들도 그에게 관심을 가질 만큼 이해도도 낮고 아량도 부족했다. 디펜딩 챔피언인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과연 PGA투어 최다승 타이기록(82승)을 넘을 것인가, ‘필드의 물리학자’ 브라이슨 디섐보가 괴력의 장타로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를 초토화시킬 것인가에 스포트라이트가 모아졌다. 그리고 존 람, 저스틴 토마스, 로리 매킬로이, 콜린 모리카와, 잰더 셔펠레, 패트릭 캔틀레이, 티럴 해턴, 브룩스 켑카 등 세계랭킹 10위권 선수들의 동향을 쫓기에 바빴다.

골프 명인들의 열전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일생의 영광인데 임성재는 이 열전에서 혜성처럼 빛났다.

처음 경험하는 오거스타 내셔널GC 첫 라운드에서 6언더파를 쳐 22위에 이름을 올렸다. 2라운드에서도 2타를 더 줄여 공동 5위로 오르더니 3라운드에선 4타를 줄여 합계 12언더파로 캐머런 스미스(호주), 아브라함 앤서(멕시코)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1위는 공동 2위에 4타 앞선 16언더파의 더스틴 존슨이었다.

4라운드의 영웅은 더스틴 존슨과 임성재 두 명이었다. 임성재는 전반 한때 더스틴 존슨을 한 타 차이까지 추격,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를 술렁이게 했다.

그러나 193cm 86kg의 거한 존슨은 세계랭킹 1위의 위용을 잃지 않았다. 공동 2위(임성재, 카메론 스미스)에 5타 앞선 20언더파로 남다른 감격을 맛봤다. 20언더파는 마스터스 토너먼트 사상 최저타 우승 스코어다. 종전 기록은 1997년 타이거 우즈, 2015년 조던 스피스(이상 미국)가 세운 18언더파다.

존슨은 PGA투어 통산 24승으로 메이저 대회에서는 2016년 6월 US오픈 이후 4년 5개월 만에 거둔 두 번째 우승이다. 2002년 우즈 이후 18년 만에 세계랭킹 1위가 마스터스 정상에 오르는 기록도 남겼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메이저 대회 3라운드 선두를 한 번도 지켜내지 못한 징크스도 깼다. 2010년, 2015년, 2018년 US오픈과 올해 PGA 챔피언십까지 네 차례나 3라운드 선두를 마지막 날 지키지 못했다.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주인공 브라이슨 디섐보는 이븐파로 간신히 컷을 통과한 뒤 최종 2언더파 공동 34위로 고개를 숙였다. 타이거 우즈는 최종합계 1언더파로 공동 38위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더스틴 존슨의 우승은 충분히 예견되었다. 저스틴 토마스, 존 람, 로리 매킬로이, 브룩스 켑카, 잰더 셔펠레 같은 상승기류를 타는 선수들과의 각축전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정작 존슨의 우승 가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임성재와 카메론 스미스였다.

4라운드 전반 존슨이 연달아 보기를 할 때 임성재는 버디로 응수하며 한 타 차이로 추격했다. 임성재가 6번 홀에서 짧은 파 퍼팅을 실수하면서 상승세가 주춤하는 사이 존슨은 앞으로 내달았다. 마스터스에서 4타 차 이상 역전극을 펼친 주인공은 정확히 10명. 가장 최근 4타 이상 타수 차이에서 뒤집기에 성공한 선수는 2011년 샬 슈워츨(남아공)이다. 이런 뒤집기를 예상하기엔 더스틴 존슨이 너무 강했다. 전천후 폭격기를 연상시키는 존슨의 우승도 돋보였지만 마스터스에 첫 출전한 임성재의 경기는 한국과 아시아 골프 역사는 물론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역사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아시아 선수로 마스터스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선수는 2004년 3위에 오른 최경주(50)였다. 임성재는 한국 선수 최초로 마스터스 최종라운드 챔피언조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 아시아 선수 최초로 공동 2위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임성재에겐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고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엄청난 추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는 이제 22살의 청년이다. PGA투어 2년 차에 저런 가공스런 기량과 정신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앞으로 그의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장 5개월 후, 내년 4월에 정상 일정으로 복귀해 열릴 마스터스가 그의 무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