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신’으로 평생을 살아온 디에고 마라도나가 6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1월 25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마라도나를 향한 전 세계의 추도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마라도나야말로 축구계 마지막 ‘솔로이스트(음악이나 발레 공연을 단독으로 하는 사람)’가 아닐까.

오직 혼자 힘으로 월드컵 우승은 물론 하위권팀을 정상으로 올려놓는 마지막 선수로 현대축구와 과거축구 과도기의 마지막 낭만을 느끼게 해줬다.

마라도나를 추모하는 나폴리-리예카 선수들.AFP=연합뉴스

마라도나의,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월드컵

마라도나 하면 1986 멕시코월드컵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조별리그 1차전 한국전에서 그 유명한 허정무의 ‘태권도킥’에 당하면서도 혼자 3도움을 기록해 첫 경기를 승리를 이끈다.

2차전은 직전대회 우승팀이었던 이탈리아였지만 마라도나의 골로 1-1 무승부로 종료된다. 3차전에서도 도움 하나를 기록하며 불가리아에 2-0 승리를 이끌며 아르헨티나를 조 1위로 16강에 진출시킨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만 1골 4도움.

16강 우루과이전을 1-0으로 이기고 올라간 아르헨티나는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전설의 잉글랜드와의 8강전을 가진다.

후반 6분 마라도나는 크로스를 문전에서 헤딩 선제골로 연결한다. 하지만 이는 마라도나가 손을 뻗어 맞고 들어간 ‘신의 손’이었고 당시에는 VAR판독이 없었기에 골로 인정된다. 이 골에 대해 마라도나가 “신의 손에 의해서”라고 말해 세계 축구사에 남는 어록이 생겨나기도 한다.

8강 잉글랜드전은 ‘신의 손’도 유명하지만 추가골도 축구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골이다. 바로 68m 드리블 골.

중앙선 오른쪽에서부터 마라도나는 혼자 드리블을 하며 6명 가까이를 모두 젖히고 골을 넣는 거짓말 같은 득점을 해낸다. 마라도나 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 골이다.

결국 마라도나는 8강전 2골의 맹활약으로 아르헨티나를 4강에 진출시켰고 4강 벨기에전에서도 혼자 경기를 휩쓸며 2골을 넣어 결승으로 이끈다.

결승전 상대는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로타어 마테우스가 이끄는 서독. 하지만 마라도나는 2-2로 맞선 후반 종료 7분을 남긴 상황에서 중앙선에서 기가 막힌 스루패스 한방을 넣어줬고 이 패스를 받은 호르헤 부르차가가 일대일 기회를 성공시키며 아르헨티나는 우승을 차지한다.

마라도나는 조별리그 1차전 한국전 3도움을 시작으로 결승전 결승골 도움까지 월드컵 7경기에서 5골 5도움을 기록했고 이는 월드컵 역사상 단일대회 최다 공격포인트(10개) 신기록이며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우승후보에도 들지 못했던 아르헨티나를 그야말로 혼자 힘으로 우승시킨 ‘마라도나의,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1986 월드컵이었다.

하위권 나폴리를 우승시킨 마라도나, 나폴리 3대 명물

1983~1984시즌 나폴리는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16개팀 중 11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마라도나가 이탈리아 하위권팀인 나폴리로 이적하는 역사적인 선택을 내렸고 이 선택은 나폴리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 된다.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데뷔시즌에 득점 3위(14골)에 강등권팀을 8위로 중위권으로 바꿔놨다. 그리고 두 번째 시즌인 1985~1986시즌에는 리그 3위까지 올려놓더니 1986 월드컵이 끝난 후 열린 1986~1987시즌에는 나폴리 구단 역사상 최초의 세리에A 우승을 시킨다. 강등을 걱정하던 팀이 단숨에 우승팀으로 변한 것에는 오직 마라도나라는 이름 하나로 설명이 가능했다.

두 시즌 연속 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1989~1990시즌에 다시 한번 리그 우승을 들어올린다. 나폴리는 마라도나 때 두차례 리그 우승 이후 지금까지도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1988~ 1989 UEFA컵 우승이다. 이 역시 팀 역사상 최초의 유럽대회 우승이었고 FA컵격인 코파 이탈리아마저 우승하며 마라도나는 나폴리에게 가능한 모든 트로피를 안겼다.

오죽하면 ‘나폴리에는 나폴리 만, 베수비오 화산, 그리고 마라도나가 있다’는 말로 나폴리 3대 명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나폴리에서 마라도나는 신과 다름없다.

축구계 마지막 ‘솔로이스트’

축구의 프로화 이전 과거 축구에서는 특출한 선수 한 명이 우승을 시키고 팀 전력 자체를 바꿔놓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 축구 들어 24시간을 축구만을 위해 노력하는 프로선수들이 생기고 장비·훈련의 과학화, 전력분석 등으로 인해 혼자만의 활약으로 우승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가뜩이나 구기종목 중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경기장에 있는 축구의 특성상 한 명의 존재감이 크지 않다.

1994 로베르트 바조(이탈리아), 2006 지네딘 지단(프랑스), 2014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등 특출난 선수가 월드컵 우승을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준우승에만 머물며 ‘혼자서 축구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게 정설이 됐다.

결국 마라도나는 과거 축구와 현대 축구의 경계에서 혼자의 힘으로 월드컵을 우승시키고 하위권팀을 우승시키는 만화 같은 일을 해내는 마지막 선수로 남게 됐다.

마라도나를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메시조차 혼자힘으로 우승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에 마라도나야말로 축구계의 낭만을 노래하는 마지막 솔로이스트였다.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 68m 골 이후 해설자의 멘트는 마라도나가 어떤 선수였는지를 설명해준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