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초짜감독’ 설기현

지난달 25일 ‘하나원큐 K리그2 2020 준플레이오프’ 경남FC와 대전하나시티즌 경기 종료 후 PO 진출이 확정된 경남FC 설기현 감독이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2020시즌을 앞두고 강등팀 경남FC가 설기현 감독 선임을 발표했을 때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게 사실이다. 2002 한일월드컵 영웅인 설기현이 프로무대 첫 감독을 경남에서 시작한다는 기대와 함께 아마추어인 성균관대에서만 감독을 해봤을 뿐인 설 감독이 혹독한 프로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설기현 감독의 경남은 우여곡절을 겪다 시즌 막판 거짓말 같은 반등을 이뤄내며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수원FC를 상대로 후반 정규시간까지 1-0으로 앞서며 감독 첫해에 팀을 승격시키는가 했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 4분,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말았고 끝내 K리그2 MVP인 안병준에게 페널티킥 실점을 하며 1-1 무승부로 아쉽게 승격에 실패했다. 1분을 버티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희망을 봤다”는 설기현 경남 감독에게 프로 새내기 감독으로서의 첫 시즌 소회를 들어봤다.

아쉬운 승격실패? 난 희망을 먼저 봤다

정말 아쉬웠다. 정규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6위로 4위까지 진출하는 준플레이오프 진출도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3위로 정규시즌을 마쳤고 준플레이오프에서도 K리그 역대 최다이적료를 쓴 대전 하나를 잡고 플레이오프로 올라왔다. 승격 플레이오프 상대는 3위 경남과 무려 승점 15점차나 나는 압도적 2위 수원FC. 그런 수원을 상대로 1분만 더 버텼다면 경남은 K리그1으로 승격할 수 있었다.

“경기후에 선수들에게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난 진심으로 너희를 통해 희망을 봤다’고 말해줬어요. 물론 바로 승격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됐다면 저부터 자만하지 않았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배움을 얻었다.”

“선수시절부터 감독까지 매번 배우고 있다”는 설 감독은 “이런 경험을 이겨내고 올라가야 더 강팀이 된다고 본다. 단순히 승격하는 것에 만족하는 팀이 아닌 승격 이후까지 바라보는 팀이 되려면 이런 시련을 당당히 맞서 극복해야만 더 큰 팀이 될 수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님도 과정 속에 많은 질타도 받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않았나. 길게 봐서는 쉽게 가는 것보다 어렵게 가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난 정말 ‘안 보고 차는 설사커’를 하고 싶었다

축구팬들과 커뮤니티 등에서는 설기현식의 공격축구를 두고 ‘설사커’라고 부른다. 설 감독은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어감이 안 좋지 않나. 그래서 뭔가 했는데 대전과 준플레이오프를 할 때 팬들이 ‘설사커’라는 이름으로 응원 걸개를 한걸 봤다. 그걸 보고 낯설지 않더라”라며 껄걸 웃은 뒤 “‘그래, 설사커, 나만의 축구를 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다른 감독이 되려면 결국 다른 축구를 해야 하는데 ‘설사커’라는 이름이 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지하게 답했다.

설기현의 축구는 다르다. 어느정도 다르냐면 평생 축구를 해오고 그 실력으로 억대 연봉을 받기도 하는 경남 선수들은 물론 오랜시간 축구계에 몸 담아온 코치들도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좋은 지도자들을 보면 수비적인 건 조직력을 갖출줄 안다. 그런데 공격은 개인에게 맡겨두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영국에서 축구를 하며 공격 전술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내가 원하는 축구는 선수들이 훈련한 대로 움직여 ‘안보고 차도’ 상대 수비가 와해되고 이게 반복돼서 상대는 그냥 수비에서 내려앉아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공격축구다”라고 말하는 설기현 감독은 이를 선수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와서 말씀드리면 시즌 중후반쯤 팀 내부에서 한번 정리가 있었어요. 중후반이 됐는데도 성적이 부진해 저와 경남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전 ‘나의 축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차라리 내 축구를 하다가 비난을 받으면 책임을 질텐데 그러지도 않는데 욕만 먹고 있으니 내부정리가 필요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정리가 있었고 그 이후 경남은 상승세를 타고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죠.”

설 감독은 “시즌 막판에 선수들이 드디어 공을 보지 않고 차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축구였다. 약속된 전술을 믿는다면 선수들은 그냥 보지않고 차도 상대가 무너지는 걸 경험하는거다. ‘이제 됐다’싶었다”라며 웃었다.

다음시즌 구상? 대표선수도 영입하고파

비록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내실을 다지고 다시 승격에 도전할 경남이다. 창단 15주년이 되는 2021시즌의 경남에 대해 설 감독은 전술적으로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이 ‘설사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선수 구성적으로 변화는 필요하다. 조금 더 제가 원하는 축구를 잘 이행해줄 수 있는 선수를 찾는다. 영입 목표도 기량이 아닌 ‘자신의 축구를 버릴줄 아는 선수’다. 제가 요구하는 걸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선수인지 아닌지를 가장 우선시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감독이 전술적으로 공을 공격 진영까지 보내줄 수는 있지만 거기서 크로스나 드리블, 슈팅을 하는 건 결국 선수다. 정말 대표선수도 노려보고 싶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의 필요성도 뼈저리게 느꼈다. 무조건 키크고 슈팅만 때리는 게 아닌 머리가 좋고 공간을 풀어주고 빠르게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너무나 아쉬운 승격실패였지만 프로 데뷔시즌에 정말 귀중한 경험을 한 설기현 경남 감독. 과연 그는 창단 15주년을 맞이하는 경남과 함께 선수시절만큼이나 성공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