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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코로나는 물렀거라'…김아림, 기적의 대역전극

메이저 US여자오픈 골프대회 우승
  • 스코어보드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김아림.[AP=연합뉴스]
김아림(25)이 22년 전 박세리(43)의 신화를 재현했다.

1998년 맨발의 투혼을 발휘하며 연장전 끝에 US여자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IMF사태로 시름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의 불을 당겼던 박세리의 위대한 역할을 이번엔 김아림이 해냈다. 세계랭킹 94위로 아무도 우승 후보로 거론하지 않았던 김아림이 기적 같은 우승으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우울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값진 ‘정신적 백신’을 선사했다.

12월 11~15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챔피언스GC에서 열린 75회 US여자오픈에서 한국선수의 우승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박세리 우승 이후 작년까지 21년 동안 한국 선수 우승이 10회에 이르는 데다 총 출전자(156명) 중 한국 선수가 27명으로 미국(40명) 다음으로 많았다. LPGA투어를 지배하는 톱랭커들을 비롯해 KLPGA투어와 JLPGA투어의 강자들이 총출동했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열리면서 이런 기대는 멀어지는 듯했다. 아무래도 12월의 US여자오픈과는 인연이 없는 듯했다. 한국 선수들은 12월에 열리는 US여자오픈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일조시간이 짧아 사상 처음 1, 2라운드를 2개 코스에서 치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와 바람, 추위로 전통적인 여름 대회와 다른 극한상황이 펼쳐졌다.

3라운드까지만 해도 이변이 없는 한 지난해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자 시부노 히나코(22)나 미국의 숨은 강자 에이미 올슨(28) 중에 우승자가 나올 것으로 보였다.

지난해 42년 만에 일본에 메이저(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컵을 안긴 시부노 히나코는 2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할 때까지 선두를 지켰다. 악천후 속에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탄탄한 경기력을 보이며 일본팬들의 잠을 빼앗았다.

노스다코다 주립대학 재학시절 각종 대회에서 20승을 올린 실력파 에이미 올슨은 2013년 LPGA투어에 뛰어든 뒤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냈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강자다. 대회 기간 중 시부의 사망 소식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딛고 분전, LPGA투어 첫 승에 다가가는 듯했다.

그러나 4라운드 중 낙뢰와 폭우가 겹치는 악천후로 잔여 경기가 월요일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월요일 경기는 익스트림 골프를 방불케 했다. 선수들은 방한복으로 중무장해야 했고 페어웨이와 그린은 물기를 머금어 볼을 뱉어내지 않았다.

특히 볼에 진흙이 묻어도 손을 댈 수 없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됐다. 보통 대회의 경우 페어웨이에 떨어진 공에 진흙이 묻으면 ‘프리퍼드 라이(preferred lie)’ 즉 공을 들어 올려 진흙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놓는 이른바 ‘lift, clean and place’ 규칙이 적용되는데 이 대회를 주관하는 USGA는 ‘공이 놓여 있는 대로 플레이한다(play it as it lies)’는 전통적인 규칙 적용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할 때 언더파 선수는 시부노 히나코(-4), 에이미 올슨(-3), 김지영, 모리아 주타누간(-1) 등 4명뿐이었다.

최악의 극한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은 기회를 찾았다. 중위권으로 처졌던 박인비는 3타를 줄이며 합계 2오버파 공동 6위, 고진영도 3타를 줄이며 2언더파로 공동 2위를 꿰찼다.

고진영(25), 김세영(27), 유해란(20) 등과 함께 1오버파로 선두 시부노 히나코에 5타 뒤진 공동 9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 김아림은 75회 US여자오픈의 하이라이트였다.

김아림은 국내대회에서 우승할 때처럼 특유의 당당한 걸음과 배에 손을 갖다 대는 겸손함으로 챔피언스 골프코스를 지배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KLPGA투어 장타 1위다운 호쾌한 드라이버샷과 정교한 아이언샷은 위력을 발휘했다. 전반 5, 6, 7번 홀 연속 버디로 추격에 가속도를 더했다. 10, 11번 홀에서 보기를 했지만 16, 17, 18번 홀에서 기적 같은 3연속 버디로 이 대회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코로나시대’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중계진들도 그의 신기에 가까운 퍼팅, 호쾌한 드라이버샷, 정밀한 아이언샷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우승은 한국 여자골프사는 물론 세계여자 골프사에 당당히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세계랭킹 94위의 놀라운 반란이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이 도입된 2006년 이후 이 대회 가장 낮은 세계랭킹의 우승기록이다.

한국선수의 US여자오픈 우승횟수로는 11번째, 선수로는 10번째다. LPGA투어 첫 승을 US여자오픈에서 거둔 역대 20번째 선수이면서 LPGA투어 첫 승을 US여자오픈에서 거둔 7번째 한국 선수(김주연, 박인비, 유소연, 전인지, 박성현, 이정은6)다. 한국 선수 메이저대회 우승 기록도 34회로 늘렸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3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맞은 김지영2(24)는 무려 9타를 잃으면서 공동 30위에 머물렀지만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밖에 공동 11위 이민영2(4오버파), 공동 13위 유해란(5오버파), 공동 30위 최혜진(8오버파) 등에게도 이번 대회는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전인지, 지은희, 셀린 부티에, 넬리 코다, 브리타니 랭, 전미정, 카를로타 시간다, 렉시 톰슨, 이미림, 박성현 등 쟁쟁한 선수들이 컷오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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