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 세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팀은 이 대회에서 세계 펜싱의 역사를 썼다. 2017년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대표팀은 2018년에 이어 2019년 대회까지 제패하며 아시아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일궈낸 것. 세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단체전 역사를 봐도 두 차례 3연패를 거둔 러시아 다음으로 한국이 처음이다. 김준호(26·화성시청)의 부상 투혼이 빛났다. 김준호는 개인전 64강 경기 도중 부상이 악화했다. 왼발 힘줄이 찢어져 도저히 단체전 결승전에 나설 컨디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김준호가 진통제를 먹고 경기에 나섰고, 투혼을 발휘하며 대표팀의 리드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표팀은 헝가리를 꺾고 승리, 대회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다.

E채널 화면 캡쳐

부상·진학 딛고 세계 최강‘펜벤저스’의 일원으로

지금은 세계 최강 펜싱팀의 일원으로서 승승장구 중인 김준호지만 지나온 길이 절대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11년엔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내측 연골이 파열되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고비를 맞기도 했고, 앞서 언급한 세계선수권에서 입은 부상도 돌이켜보면 상당히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준호는 꿋꿋하게 위기를 넘겨냈다. 2011년 입은 부상은 대학 진학도 불투명해질 정도의 큰 부상이었지만, 김준호는 어렸을 때부터 키워주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대학에 꼭 가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포기하지 않고 재활에 집중한 끝에 김준호는 진학에 성공해 펜싱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진학한 대학교에서는 이효근(54) 감독이라는 평생 은사를 만나 첫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이 감독의 헌신적인 개인 레슨으로 발전을 거듭한 김준호는 대학교 2학년 때 첫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이때 이효근 감독도 국가대표 코치로 발탁되면서 함께 선수촌에 들어가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 숱한 위기를 넘긴 김준호는 승승장구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났다.

세계랭킹도 61위(2014~2015)로 시작해 2018-2019시즌엔 13위까지 올랐고, 지금은 20위에 올라 있다. 이런 빼어난 실력에 준수한 외모까지, 김준호는 최근 케이블 채널의 예능에 출연해 박세리에게 “잘생기면 다 돼”라는 말을 들은 것이 주목받으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 오상욱, 김계환, 김준호, 구본길(왼쪽부터).연합뉴스

순항 중 도쿄 올림픽 연기…코로나19가 야속해

김준호와 함께 남자 사브르는 현재 ‘황금시대’를 보내고 있다. 이미 아시아는 제패한 지 오래고, 세계 대회에서도 펜싱 종주국 유럽팀들을 상대로 승전고를 울리며 세계랭킹 1위까지 차지했다.

개인 랭킹 역시 세계 1위 오상욱(24·성남시청)을 비롯해 9위 구본길(31), 14위 김정환(37·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김준호까지 ‘톱20’에 한국 선수가 4명이나 있다. 23위 하한솔(27·성남시청)도 빼놓을 수 없다. 세대교체가 적절히 이뤄진, 그야말로 ‘황금세대’, ‘펜벤저스(펜싱+어벤저스)’라 불릴 만한 구성이다.

자연스레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펜싱팀이다. 특히 대표팀은 올림픽 금메달만 추가하면 단체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상황. 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함께 당당히 세계 최강팀 반열에 오르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가로막았다.

지난해 7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올림픽이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연기된 것.

개막 4개월에 앞서 열린 월드컵시리즈에서 2관왕에 오르며 올림픽 메달을 향한 예열을 마쳤지만 연기 결정으로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김준호도 아쉬움이 가득했다. 최고의 분위기에 올림픽 기간 때 컨디션도 여느 때보다 최고였다. 하지만 대회가 연기되면서 좋은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고, 그 와중에 진천선수촌이 코로나19로 문을 닫으면서 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여러 모로 힘든 한 해였다.

김준호의 ‘금빛 찌르기’ 예열,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김준호를 비롯한 사브르 팀은 멈추지 않았다. 각자 소속팀에서 생활하며 재개된 국내 대회에 꾸준히 출전해 실전 감각을 쌓았고, 지난해 12월 다시 문을 연 진천선수촌에 입촌해 구슬땀을 흘렸다. 오히려 김준호는 “1년 연기로 재정비를 할 시간을 가졌고,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라며 되돌아봤다.

다시 올림픽의 해가 밝은 지금, 숨을 골랐던 김준호의 시선도 다시 올림픽을 정조준하고 있다. 첫 올림픽에서 첫 메달, 단체전뿐만 아니라 개인전 메달에도 도전하는 김준호는 올림픽이 열리는 그날까지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겠다는 각오다.

김준호는 “앞으로 하나하나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훈련하고 있다. 올림픽까지 남은 시합에 더 집중해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이다”라고 다짐했다.



윤승재 스포츠한국 기자 upcoming@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