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야’ 볼 수 있는 손흥민-류현진

지난 4월부터 손흥민(토트넘 훗스퍼)과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이 출전하는 경기는 더 이상 실시간으로 볼 수 없다. 최소 월 8000원대에서 최대 1만5000원의 유료 채널에 회원가입을 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최고 스포츠 인기 콘텐츠인 두 선수의 경기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유료화에 익숙하지 않은 팬들의 불만이 흘러나오자 4월 2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사안이 다뤄져 ‘보편적 시청권’을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이뤄지기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 손흥민-류현진 경기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손흥민-류현진 중계 유료화 정책을 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가뜩이나 크지 않은 한국 스포츠 산업을 완전히 죽일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과 이미 스포츠 중계를 돈 내고 보는 문화가 익숙한 서구권과 비교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손흥민. 연합뉴스

손흥민-류현진 안 보이면 스포츠 관심 떨어질라

손흥민과 류현진은 단순히 스포츠 팬뿐만 아니라 스포츠 문외한들도 ‘잘했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지는 국민적 스타. 하지만 이들의 경기가 일반 TV 중계에서 사라지면서 그 관심도는 현격히 떨어졌다.

손흥민과 류현진의 경우 매일 나오는 선수가 아니라 대략 3~7일 사이에 한 번씩 나오는 선수들이다 보니 꾸준히 관심을 가지지 않다 보면 그들의 활약상을 계속 놓칠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스포츠 스타들의 중계를 보는 것은 박찬호부터 시작해 박지성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문화’가 됐다. 학교-직장에서 동료들과 박찬호의 경기에 열광하고, 밤에는 친구들과 치맥을 함께하며 박지성을 보는 것은 생활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유료화로 인해 이런 문화가 사라지고, 자연스레 손흥민-류현진으로 간신히 붙잡고 있던 스포츠에 대한 관심 자체가 떨어져 나갈까 우려하는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더 이상 주류 문화가 아니다. 넷플릭스, 게임, SNS 등이 주류가 되면서 2~3시간을 집중해서 봐야 하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스포츠 ‘직관’ 역시 관중제한이 있어 더욱 열기가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킬러 콘텐츠’로 여겨졌던 손흥민-류현진 경기가 유료화까지 되면서 스포츠 산업의 파이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스타들의 경기마저 보기 힘든데 다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을지는 부정적이다.

스포츠업계에 오래 종사한 관계자는 “스포츠를 보지 않게 되면 인기가 떨어지고, 자연스레 스포츠는 선수육성과 관중-시청 문화에서도 퇴보할 수밖에 없다”며 “스포츠가 항상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심각성은 생각 이상의 파급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류현진. 연합뉴스

유료화는 시대의 흐름인가

유료화를 찬성하는 쪽 입장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얘기한다. 실제로 서구권 등 해외에서는 스포츠 중계를 ‘돈 내고’ 보는 문화가 자리잡은 지 오래다. 스포츠 중계권을 가진 전문 채널의 시청료가 비싸다보니 오히려 ‘펍’으로 불리는 술집에서 다같이 스포츠를 보는 문화가 발달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4년 LA다저스 경기 중계권을 83억5000만달러(약 9조억원)에 사들인 타임워너케이블 측이 자신들의 케이블을 신청하지 않으면 다저스 경기를 보지 못하게 했다. 당시 LA 인구 70%가 타임워너케이블 미가입자였고 LA에 사는데 다저스 경기를 보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세기의 대결로 불렸던 매니 파퀴아오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미국에선 90달러, 한화 약 11만원을 내야 했었다. 이런 시청료 정책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만 이 대결은 3억달러(약 3342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드라마도 돈 주고 보는 시대에 스포츠 역시 돈을 내고 보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언제까지 세계 흐름과 다르게 스포츠를 무료로 보는 시대를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는 주장. 국내 스포츠 중계 사정을 아는 관계자는 “냉정하게 아무리 손흥민-류현진 경기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광고가 잘 안 팔린다. 그래서 중소업체나 동일광고가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라며 “수익이 안 나오는데 땅 파서 장사할 수는 없다. 이미 해봤고 그걸 알기에 공중파에서도 중계권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해외에서는 EPL-MLB의 중계 가치가 갈수록 올라가면서 중계권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데 국내에서는 수익이 상승분만큼 오르지 않다 보니 괴리가 커진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무료중계일 때도 수익이 나지 않으니 결국 유료화를 통해 재원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료화 좋다, 하지만 중계 ‘질’ 개선해달라”는 목소리도

스포티비(커넥티비)가 유료화를 선언하면서 이제 사실상 모든 해외 스포츠는 스포티비를 통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중파에 비해 인력과 기술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케이블 방송사이다 보니 중계 ‘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해외축구를 좋아하는 30대 직장인 오 모씨는 “유료화는 괜찮다. 한 달에 만 원 정도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에 돈을 못 쓰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중계의 ‘질’이다. 인터넷으로 볼 때 자주 끊기고 화질도 1080 최고화질이라는데 해외중계와 비교해보면 ‘때깔’이 다르다. 그리고 비선수출신 해설자만 많아 선수-감독 입장에서의 의견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스포츠 커뮤니티에 손흥민-류현진 중계날만 되면 ‘왜 이렇게 끊기냐’, ‘접속이 안 된다’ 등의 불만글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화질에 대한 불만 역시 크다. 젊은 층의 경우 TV로 시청하기보다 인터넷-모바일을 통해 시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접속-화질 문제는 중요사안일 수밖에 없다.

또한 스포티비 측에 따르면 해외축구 해설자 중 선수출신은 8명 중 1명 뿐이고, 메이저리그의 경우 5명 중 아무도 선수 출신이 없다. 공중파 중계 때는 유명 선수 출신, 직접 해외리그에서 뛰어본 선수 출신이 해설을 더해 ‘듣는 재미’도 제공했었다.

<스포츠한국>은 이 같은 질의를 커넥티비 측에 전달했지만 관계자는 “답변하기 힘들다”며 침묵을 지켰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