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하 수원삼성 감독. 스포츠코리아

2016년 3위 ― 7위, 2017년 4위 ― 3위, 2018년 4위 ― 6위, 2019년 4위 ― 8위, 2020년 4위 ― 8위 앞의 숫자는 프로축구연맹에서 매년 공개한 구단별 연봉(외국인 선수 제외) 순위, 뒤의 숫자는 최종 순위다. K리그 대표 명문구단이었던 수원 삼성의 마지막 K리그 우승이 2008년이라는 걸 차치하더라도 최근 5년간 수원은 ‘비효율’의 상징과도 같은 팀이었다. 2017년을 제외하곤 지난 5년간 늘 쓰는 돈에 비해 성적은 처참했다. 축구단이 삼성에서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뒤 지원이 줄었다 해도 K리그 내에서 쓰는 돈은 상위권인데 성적은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특히 최근 2년간은 강등권에 머물 정도로 위상은 추락했다. 그런 수원 삼성이 달라졌다. 바뀐 건 딱 하나. 감독이다. 수원 삼성의 창단 멤버로 잠시 일본 임대를 빼곤 ‘리얼 블루’만 고수해온 박건하는 수원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성적만 보는 사람들은 2021시즌 전반기 3위의 성적을 보고 “반짝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원의 축구를 본 사람들은 “이건 ‘찐’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체 박건하는 어떻게 수원 삼성을 바꿔놓은 것일까. 수원 삼성 클럽하우스가 있는 경기도 화성에서 박건하 감독을 만났다.

열심히 하는데 방법을 몰랐던 선수들

지난해 9월 수원의 지휘봉을 잡은 박건하 감독이 첫 훈련을 하고 나서 든 생각은 ‘보고 듣던 것보다 열심히 한다’였다. “외부에서 봤을 때 ‘왜 이렇게 하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막상 선수들과 훈련하고 생활하니 ‘정말 열심히 한다’고 느꼈죠. 그런데 문제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죠. 열심히 하는데 방법을 모르고 하니 효율이 나지 않고, 계속 지다보니 선수단 속에 패배의식이 팽배했죠.” 외부에서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해요. 그런데 모든 선수들은 인생을 걸고 뜁니다. 결국 방법이 문제였던 거죠.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다 보니 핑계를 만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전 핑계를 안 만들게 해주고 싶었어요.” 박 감독이 집중한 것은 ‘좁은 공간에서 압박과 패스’였다. “굉장히 좁은 공간훈련을 통해 패스와 압박에 익숙하게 했죠. 경기 중에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주면서 그걸 훈련하게 하니 선수들이 잘 따라오더라고요. 결국 축구라는 게 빨리 가서 공을 뺏고, 빨리 패스하고, 빠르게 상대진영으로 가고, 빠르게 득점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훈련이 어렵고 체력도 크게 요구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바로 그 ‘방법’이 우리 선수들에게 통했던 거죠”라고 회상했다.

장점과 자신감 부각

또 하나 집중한 것은 각 선수가 가진 ‘장점’을 살리는 것이다. 박 감독이 부임했을 때 수원 선수단에 아는 선수는 없었다. 하지만 훈련을 하고 면담을 하며 선수들 하나하나를 알아갔다. “선수마다 잘하는 건 꼭 하나씩 있어요. 바로 그 부분을 더 잘할 수 있게 북돋우는 거죠. 제가 특징을 잡아내서 그걸 주문하면 선수들도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 싶어 포기하지 않게 되거든요.” “선수는 무작정 다그치고 압박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박 감독은 “모든 선수마다 성격이 다르고 대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선수는 경기에 못 뛰면, 혹은 뛰어도 못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대표가 된 이기제를 예로 들었다. “지난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가서 이기제의 킥을 보니 남다르더라고요. 제가 ‘계속 차보라’, ‘믿고 맡긴다’고 했어요. 이기제도 그말에 자신감을 얻어 더 연습하고 자신 있게 차다 보니 국가대표 가서도 킥을 전담하잖아요. 누구나 잠재력은 있다고 봐요. 그걸 어떤 식으로 끌어내느냐가 중요하죠”라며 비법을 털어놨다.

‘한 발’ 더 뛰는 팀으로 바꾸다

박 감독이 현재의 지도 철학을 확립한 때는 언제일까. 주저없이 ‘2012 런던 올림픽’이라고 답한 박 감독은 “당시 코치로 홍명보 감독님과 런던 세대와 함께했다. 당시 올림픽팀하면 ‘원팀’ 아니냐. 뻔한 말이지만 어렵다. 특히 요즘 20대를 ‘MZ세대’라면서 이념보다 이익을 따른다. 더 원팀으로 만들기 쉽지 않다”라며 “올림픽을 하며 ‘하나의 팀’이 가지는 힘을 느꼈다.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과 동기를 끌어내고, 개인이 살아나야 팀도 힘을 받고, 팀이 살아야 개인도 사는 걸 직접 경험했다”라고 회상했다. 박 감독은 코치생활을 오래 했지만 첫 지휘봉은 2016년 서울 이랜드에서였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에 대해 “수원은 ‘강등만 당하지 않으면 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이랜드는 ‘무조건 승격’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첫 감독생활인데 승격이라는 부담감, 그리고 이랜드에서 제가 실업축구로 첫 선수 생활을 했기에 잘 해야 한다는 압박 등에 쫓겼던 것 같아요. 욕심만 많았던 아쉬운 시절”이라고 떠올렸다. 예전의 수원 삼성은 자신들이 준비한 축구가 잘 먹혀들지 않으면 금방 놓아버렸다. 그리고 특출난 외국인 선수(조나탄, 사리치, 타가트 등)가 활약해 주지 않은 시즌에는 팀성적도 고꾸라졌다. 혹자는 ‘배부른 돼지’라고 수원을 혹평했다. 그런 수원은 이제 ‘한 발’ 더 뛰는 팀이 됐다. 경기장에서 이미 한계치로 뛰고 있는데 한 발을 더 내뻗는 건 힘들다. 하지만 수원 선수들은 그 한 발을 더 뻗어 스로인될 공을 살려내고 못 뺏을 공을 뺏어 공격을 하는 팀이 됐다. 이렇게 팀이 확 달라진 이유를 알기 위해 박건하 감독을 직접 만났지만 결국 ‘명확한 해답’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건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제가 바꾼 건 없어요. 제가 뛰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한발씩 더 뛰는 겁니다. 그 한발을 더 내딛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저도 잘알죠. 그런데 그걸 선수들이 정말 해주고 있습니다. 바뀐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하셨죠? 그런 건 없어요. 결국 작은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이뤄진 변화일 뿐이죠. 그게 삶의 진리 아니던가요.”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