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AFP)

법과 규칙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1863년 최초의 표준 규칙이 만들어지고, 오늘날의 축구가 되기까지 수많은 규칙이 생성과 삭제, 수정을 거듭했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는 지금은 당연한 경고와 퇴장, 선수교체가 도입됐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는 승부차기가 시행됐다. 이처럼 지금은 당연한 규칙이 당시에는 새롭고 어색한 규칙이었다. 변화한 규칙을 숙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규칙을 숙지하지 않고 경기에 나서면서, 혹은 관습적으로 하던 행동 때문에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국축구도 규칙 하나에 월드컵에서 손해와 이득을 경험한 바 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비신사적인 행위 처벌 강화

프랑스월드컵을 떠올리면 뇌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다. 바로 멕시코전에서 나온 하석주의 퇴장이다. 앞서 하석주는 전반 27분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만들었다. 한국의 월드컵 역사상 첫 선제골로 환희와 열기는 엄청났다. 승리로 끝나면 하석주는 ‘국민 영웅’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뿐. 선제골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전반 30분, 영웅이 될 준비를 마친 하석주가 퇴장을 당하며 순식간에 ‘역적’이 됐다. 이후 10명으로 멕시코를 상대한 한국은 후반전에만 3골을 내주며 역전패를 당했다. 하석주의 퇴장은 이른바 ‘백태클’에 대한 변경된 규칙 때문이다. 프랑스월드컵 개막 전, FIFA는 비신사적인 행위의 징계 강화를 발표했다. 상대방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줄이려는 조치였다. 이 경우 심판은 경고가 아닌 곧바로 퇴장시킬 수 있었다. 비신사적인 행위의 예시로 백태클이 있었고, 마침 하석주의 태클이 FIFA가 발표한 상황에 들어맞았다. 이전에는 백태클을 당한 선수가 부상을 당할 정도여야 경고가 나오곤 했다. 하석주는 강화된 규정으로 프랑스월드컵 1호 퇴장 선수가 됐다.

2002 한·일월드컵 ‘할리우드 액션 금지’에 가슴 쓸어내려

한국에서 축구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때는 2002년이다. 특히 16강 이탈리아전에서 나온 안정환의 골든골과 ‘반지키스’ 세리머니는 명장면 중 하나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한국은 변경된 규칙으로 이득을 봤다.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로 진행된 연장 전반 13분,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토티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넘어졌다. 송종국과 경합을 벌이다 쓰러졌고, 주심이 달려갔기에 이탈리아의 페널티킥이 예상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토티에게 경고가 주어졌고, 전반 22분에 이미 경고를 받은 토티는 경고누적으로 경기장을 떠났다. 토티에게 적용된 규칙은 심판을 속이는 동작, 이른바 ‘할리우드 액션’으로 불리는 행동에 대한 징계다. 하석주의 사례와 같이 FIFA는 한일월드컵에 앞서 심판을 속이는 동작의 제재 강화를 발표했다. 당시엔 심판을 속여 반칙을 얻어내거나,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것이 빈번했다. 심지어 전략의 일부분으로 여겨지곤 했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과 의도가 보이면 경고를 주는 등의 징계를 하겠다는 의도였다. 축구정신의 핵심 요소인 공정함을 위해 강화된 규칙으로 이탈리아의 에이스 토티는 퇴장을 당했다. 수적 우세 속에 한국은 안정환의 골든골로 역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VAR 도입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은 ‘카잔의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자 FIFA 랭킹 1위 독일을 상대로 한국이 2-0으로 승리했다. 독일은 이 경기 패배로 월드컵 첫 예선 탈락을 했다. 축구사에 길이 남을 이변이었다. 이날 VAR(비디오보조심판)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의 코너킥이 낮게 연결됐고, 독일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김영권이 왼발로 골망을 흔들었다. 그러나 부심은 깃발을 올려 오프사이드를 표시했다. 오프사이드라면 김영권의 득점이 무효가 되는 것. 주심은 VAR 프로토콜을 시작했고, 그라운드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는 OFR(온필드리뷰)를 통해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단했다. 결과는 김영권의 득점 인정. VAR이 없었다면 오프사이드로 득점이 무효가 될 수도 있었다. 2018년 VAR의 도입은 축구 역사상 가장 큰 혁신으로 평가된다. VAR은 일종의 ‘비디오 판독’으로 주심의 명백한 실수나 중대한 상황을 놓친 경우 VAR은 주심에게 알린다. 선수나 감독 등이 신청하는 것이 아닌 경기 중에는 항상 VAR이 작동하고 있다. 언제나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으니 심판의 눈만 피하면 되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경기 규칙은 매년 바뀐다. 축구 규칙을 제정하는 IFAB(국제축구평의회)는 ‘경기규칙 2021-22’을 2021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것을 예고했다. 다음달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에서는 새롭게 수정된 규칙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올림픽에서 어떤 국가, 어떤 선수가 변화된 규정으로 인해 이득이나 손해를 보게 될지 주목된다.



남궁휘 스포츠한국 기자 leno0910@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