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caddie)의 어원은 프랑스 귀족의 젊은 자제를 뜻하는 ‘카데(cadet)’에서 비롯됐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여성 골퍼인 스코틀랜드의 메어리 여왕 (Mary Stuart, 1542~1587)이 1562년 여름 세인트 앤드루스를 방문해 골프에 열중했는데 이때 프랑스에서 데려온 젊은 시동 즉 카데를 대동하면서 경기보조자로서의 캐디가 처음 등장했다. 여왕은 골프에 빠져 1567년 부군인 헨리 당리 경(卿)이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래? 그 폭도 몇 번 아이언을 사용했는가?”라고 묻곤 궁녀들과 계속 골프를 즐겼다. 부군이 암살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젊은 장교와 함께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회의 분노를 사 결국 왕궁에서 쫓겨나 오랜 유폐 끝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해림이 지난 2일 KLPGA 투어 맥콜-모나파크 오픈 첫날 ‘셀프 캐디’ 카트를 몰고 있다.KLPGA

캐디는 그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디까지나 경기보조자다. 캐디가 유능한가 아닌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플레이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골퍼이고 모든 판단과 결정, 그에 따른 결과는 골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김해림(32)이 4일 강원도 평창군 버치힐GC에서 막을 내린 KLPGA투어 맥콜·모나파크 오픈에서 우승했다. 사흘 동안 합계 13언더파로 이가영(22)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홀에서 버디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3년 2개월 만의 우승이자 통산 7승째.

긴 침묵 끝에 부상을 딛고 우승을 거머쥔 그의 투혼도 높이 살 만하지만 사실상 ‘노 캐디’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KLPGA투어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는 1라운드에서 캐디 없이 혼자 손 카트를 끌며 7언더파 65타로 단독 선두에 나섰다. 무선으로 조정이 가능한 전동 카트였지만 캐디 없이 혼자 플레이했다.

비가 내린 2, 3라운드에서는 골프장 소속의 하우스 캐디를 쓰긴 했지만 볼과 클럽을 수건으로 닦는 것과 카트를 이동하는 것 외엔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김해림은 “전용 캐디를 두는 경제적 부담이 컸다. 돈만 밝히는 일부 캐디들의 태도에 화가 나서 캐디 없이 해보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캐디의 역할이 얼마나 되는지,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다. 오래 고민하고 준비해 실행했다”고 말했다.

맥콜-모나파크 오픈 우승한 김해림.KLPGA

프로골프의 세계에선 전담 캐디제도가 보편적이다. 캐디 없이 경기에 나서는 선수가 없지는 않지만 전담 캐디 없이 프로의 세계에서 버텨내는 것은 무리다. 지난해 유러피언투어 오스트리아 오픈에서는 마크 워런(스코틀랜드)이 스스로 캐디백을 메고 출전해 6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캐디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LPGA투어의 린지 위버(27·미국)도 지난해 한동안 캐디 없이 라운드해 주목받았다. 한국에서도 허인회(33)가 2016년 SK텔레콤 오픈에서 캐디가 늦잠 자는 바람에 캐디백을 짊어지고 경기에 나서 홀인원을 한 적이 있다. 캐디 없이 라운드해본 선수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캐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캐디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고, 캐디가 없을 때 경기력에 영향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캐디 없이 플레이했다”는 김해림도 캐디의 중요성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수확은 ‘라운드의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란 깨달음이 아닐까.

물론 경제적 부담이 ‘노 캐디 라운드’의 단초가 되었겠지만 실제로 캐디 없이 라운드해봄으로써 지나치게 캐디에게 의존하는 자세를 떨쳐내고 독자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판단하고, 결단을 내려 모든 샷에 집중하는 것이 왕도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리라.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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