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이 막을 올린 지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태극전사들의 희비가 엇갈린 시간이기도 하다.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이 ‘노골드’에 그친 반면 수영에선 이틀 연속 한국신기록이 나왔다. ‘효자 종목’ 양궁은 역시나였다. 혼성단체전과 남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수확했다. 올림픽 첫 출전에 전패를 했지만, 한 경기 한 경기 역사를 쓴 팀도 있다. 바로 럭비다. 1923년 럭비가 국내에 도입된 지 96년 만에 올림픽 무대를 밟은 한국 럭비대표팀은 역사적인 첫 득점에 성공했다. 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올림픽 개막 일주일을 돌아본다.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단체전 시상식에서 지난달 26일 김제덕(위 사진 왼쪽부터), 김우진, 오진혁이, 지난달 25일 여자 단체전 시상식에서 안산(아래 사진 왼쪽부터), 장민희, 강채영이 금메달을 보여주며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역시 효자 종목 ‘양궁’… 선수단 첫 금 수확

도쿄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은 양궁 대표팀의 ‘무서운 막내들’이었다.

김제덕(경북일고)과 안산(광주여대)은 지난달 24일 혼성단체전결승전에서 네덜란드의 스테버 베일러르-가브리엘라 슬루서르 조를 5-3(35-38 37-36 36-33 39-39)으로 꺾었다.

내로라하는 국내 선배 궁사들을 제치고 올림픽 대표로 뽑힌 것만으로도 대단한 ‘막내 궁사’ 김제덕과 안산이 제대로 사고를 친 것이다.

특히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김제덕은 올림픽 동메달 이상의 성적일 때 주어지는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됐다. 또한 17세 나이로 역대 한국 올림픽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기록도 세웠다.

양궁의 금빛 질주는 계속됐다. 하루 뒤(25일) 강채영(현대모비스), 장민희(인천대), 안산(광주여대)으로 구성된 여자 양궁 대표팀이 양궁 단체전 9연패 기록을 달성했다.

한국은 양궁 단체전이 처음 도입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이번 대회까지 금메달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 획득으로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금메달 25개를 딴 양궁은 ‘동계 효자종목’ 쇼트트랙(25개)을 뛰어넘었다.

아쉬움 서려 있지만… 유도서도 연일 메달 소식

유도에서도 메달 소식을 전했다. 과거 일본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태극 마크를 단 재일동포 3세 안창림(KH그룹 필룩스)은 일본 유도의 본산 무도관에서 자랑스러운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창림은 지난달 26일 유도 남자 73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루스탐 오르조프(아제르바이잔)를 만나 종료 7초 전 업어치기 절반으로 승리했다.

두 번째 올림픽 만에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메달을 목에 건 안창림이다. 그는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나섰지만 16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안창림은 도쿄올림픽에선 메달을 하나 손에 쥐고 대회를 마쳤다. 특히 일본 측의 귀화를 마다했던 안창림은 보란 듯이 도쿄에서 메달을 획득해 의미를 더했다. 앞서 2대회 연속 메달을 노렸던 안바울(남양주시청)도 유도 남자 66㎏급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계랭킹 1위 마누엘 롬바르도(이탈리아)를 경기 시작 2분 18초 만에 업어치기 한판으로 꺾었다. 하체 공격을 시도하다 기습적으로 주특기인 업어치기 기술을 펼쳤고, 그대로 상대 선수 몸이 돌아가면서 한판이 선언됐다.

사실 안바울은 이번 대회 금메달 0순위 후보였다. 안바울이 경기를 마친 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안바울은 아쉽게도 준결승에서 바자 마르그벨라슈빌리(조지아)에게 골든스코어(연장전) 끝에 모로 떨어뜨리기 절반을 허용하며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안바울이 더 높은 성적을 이루진 못했지만, 값진 동메달과 2대회 연속 메달 쾌거를 일궜다.

지난달 28일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대한민국 대 이탈리아 결승전. 대한민국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세계랭킹 1위 한국 ‘펜싱’, 역시나 강했다

양궁의 뒤를 이어 금메달 소식을 전해준 종목이 있다. 바로 ‘펜싱’이다.

‘세계랭킹 1위’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8일 단체전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5-26으로 압도적으로 꺾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김정환, 구본길(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오상욱(성남시청), 김준호(화성시청)가 금메달의 주인공이다.

한국 펜싱 선수단의 첫 금메달이자 이 종목 9년 만의 올림픽 메달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한국은 다시 한 번 올림픽 정상에 섰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땐 종목 로테이션으로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열리지 않아 이 종목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한국은 2연패를 달성했다.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김정환은 금메달 하나를 더 추가했다. 구본길도 런던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세계랭킹 1위 오상욱은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메달 소식은 없었지만, 큰 울림 준 팀이 있다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충분히 역사를 쓴 팀이 있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럭비 대표팀이다.

럭비 대표팀은 28일 오전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11∼12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19-31로 패하면서 그대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세계랭킹 31위 한국은 세계 10위이자 아시아 최강자인 일본을 만나 비록 패했지만, 투지를 불태웠던 경기력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특히 선제득점을 올린 장면은 백미였다.

혼혈선수 안드레진 코퀴야드(대한럭비협회)가 경기 시작 46초 만에 중앙 수비벽을 뚫고 트라이를 성공, 5득점을 올렸고 이어진 컨버전킥(보너스킥)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7-0으로 앞서갔다. 올림픽 첫 선제득점이다.

럭비 대표팀은 올림픽 출전 자체가 기적이다. 한국은 럭비 변방국인데다 실업팀 3개, 대학팀 4개에 불과한 열악한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비록 조별리그를 포함해 5경기 전패로 대회를 마친 럭비 대표팀이지만 황무지에서 일궈낸 올림픽 진출 및 영광의 첫 득점은 충분한 성과다.

지난달 29일 오전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수영 남자 100m 자유형 결승전. 황선우가 역영하고 있다.연합뉴스

레이스했다 하면 ‘한국-아시아 신기록 수립’… ’뉴 마린보이’ 등장

‘한국 수영 차세대 기대주’ 황선우(서울체고)도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자유형 100m와 200m에 출전해 시상대에 서진 못했지만 연이은 한국신기록 경신과 아시아기록 수립으로 이름 석자를 제대로 알렸다.

황선우는 29일 경영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서 47초82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전날 준결승에서 47초56 아시아신기록을 작성하며 결승에 진출한 황선우는 살떨리는 결승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당당히 겨룬 끝에 5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아쉽게 메달을 놓쳤지만 황선우의 역영은 아시아 수영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앞서 황선우는 경영 남자 자유형 200m에서도 결승에서 올라 1분45초26을 기록, 7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150m까지 선두로 물살을 가르는 역영을 통해 ‘깜짝 메달’ 기대감을 잠시 키웠지만 막판에 속도가 떨어지며 메달권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200m에서도 기록을 경신한 황선우다.

앞서 열린 이 종목 예선에 나서 1분44초62를 기록, ‘전설’ 박태환을 뛰어넘는 한국 신기록 작성한 바 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이 금메달을 딸 때 작성한 1분44초80 한국 기록을 약 11년 만에 0.18초 줄인 것.

메달에 버금가는 값진 올림픽 첫 무대를 개인 최고 기록으로 장식한 황선우다.

태권도 종주국인데… ’노 골드’ 수

‘수모’를 면치 못한 종목도 있다. 한국은 태권도가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처음으로 ‘노 골드’에 그쳤다. 역대 최다인 6명의 선수를 파견하고도 단 하나의 금메달도 수확하지 못했다.

‘태권도 종주국’ 한국으로선 고개를 들 수 없는 성적이다. 태권도는 지금까지 하계종목에서 양궁(금메달 26개)에 이어 가장 많은 금메달(22개)을 획득해왔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손태진, 차동민(이상 남자), 황경선, 임수정(이상 여자)까지 출전 선수 4명이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선 금메달 1개에 그쳤으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다시 금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며 위용을 되찾았다.

하지만 태권도 세계화와 코로나19로 인한 실전감각 저하 등에 발목 잡혀 한국 태권도는 도쿄에서 ‘노 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실감한 ‘중국의 벽’… 메달과 거리 멀었던 ‘탁구’

한국 탁구도 씁쓸한 결과를 냈다. 도쿄올림픽에서 4개 대회 연속 개인전 노메달로 남녀 단식과 혼합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국 탁구 남녀 단식과 혼합복식에서 8강을 넘은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혼합복식의 이상수(삼성생명)-전지희(포스코에너지) 콤비가 가장 메달 획득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8강에서 대만의 린윤주-청이칭 조에 2-4로 역전패했다. 탁구 남녀 단식에서도 세계 강호들에 막혀 8강을 넘지 못했다.

‘남자 탁구 대들보’ 정영식(미래에셋증권)은 단식 8강에서 세계 1위 판전둥(중국)에게 0-4로 완패했고, 여자팀의 ‘맏언니’ 전지희도 8강에서 세계 2위 이토(0-4 패, 일본)에게 막혔다.

앞서 장우진(미래에셋증권)과 신유빈(대한항공)도 각각 남녀 단식 16강에서 탈락했다.

이로써 한국은 2008년 베이징 대회부터 2012년 런던 대회, 2016년 리우 대회에 이어 이번 도쿄 대회까지 4개 대회 연속 개인전에서 ‘노 메달’에 그쳤다.

한국 탁구가 개인전 메달을 마지막으로 따낸건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2004년 아테네 대회 때 중국의 왕하오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게 마지막이다.



노진주 스포츠한국 기자 jinju217@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