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FC안양이 창단한 지 9년. 창단 사령탑을 맡았던 이우형(55) 감독이 다시 돌아왔고, 안양은 올해 K리그2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비록 대전 하나시티즌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승강결정전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10개팀 중 7위권의 예산으로 리그 2위의 성적을 냈다는 것만으로 안양과 이우형 감독은 대단한 성과를 일궈냈다. 그러나 승강플레이 오프가 끝나고 열흘가량이 지난 후 안양종합운동장에서 만난 이우형 감독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시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후회와 아쉬움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는 말에는 역대 최고 성적을 낸 기쁨보다 승격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우형 감독.연합뉴스

시즌 전 연습경기 통해 ‘상위권 자신’… 쓴소리의 이유

2020시즌 10개팀 중 9위를 차지했던 안양에 창단 감독이었던 이우형 감독이 복귀한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은 “잘해 봤자 중위권”이라는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이 감독의 생각과 각오는 달랐다. 이 감독은 선임 당시 구단 수뇌부와의 미팅에서 “계약은 2년을 했지만 당장 4강 플레이오프를 가지 못하면 스스로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만큼 성적에 자신이 있었고, 플레이오프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아무래도 타팀에 비해 많은 돈을 쓰지 못하고 전년도 성적도 좋지 않다 보니 부정적 예상이 많았죠. 하지만 시즌 시작 직전 K리그1 팀들과 세 번의 연습경기를 했는데 경기내용과 결과 모두 좋았어요. 양팀 모두 베스트 라인업을 냈는데 말이죠. 그때 ‘올시즌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죠.”

안양은 3월을 1승1무2패로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이후 5연승과 두 번의 8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해내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한다.

그렇다고 마냥 모든 게 좋았던 건 아니다. 8경기 무패행진 후 2연패를 한 데다 부산 아이파크전 무승부를 하자 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의 자세가 썩어 빠졌다”며 이례적인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그 말을 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러다 실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3경기에서 선수들이 부상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리고 상대를 제압하지 못했다. 일반인들이 볼 때는 그냥 실점한 거라고 볼 수 있지만 축구인이 보기엔 그런 움직임과 동작 하나로 실점까지 되는 게 명백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안양은 다시 8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내달렸으니 이 감독의 작심발언은 성공한 셈이다.

“승격에 목숨 건다”는 마사와 대전, 그 무서웠던 기세

K리그2 막판 축구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일이 있었으니 바로 대전 하나시티즌의 일본인 선수 마사가 한 한국어 인터뷰였다.

그는 해트트릭을 달성한 후 소감을 밝힌 방송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축구 인생은 패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매경기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경기가 있고, 어쨌든 승격(을 위해) 인생 걸고 합시다”라는 어눌하지만 진심이 담겨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만나게 될 대전 선수의 발언을 듣고 안양 이우형 감독은 “그 말이 크게 화제가 된 것을 보고 무서웠다. 그런 것이 바로 ‘기세’다. 대전은 마사라는 선수가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영입되면서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마사 한 명이 잘하는 걸 넘어 그 선수를 통해 다른 선수들까지 상승 효과를 받았다. 여기에 마사의 그 발언으로 대전은 ‘승격에 목숨 건다’는 콘셉트로 응집이 됐다. 그 기세를 막아서야 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토로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대전을 만난 안양은 이른 시간 선제골에도 이후 내리 3실점을 하며 1-3으로 패했다. 이 감독은 “1-1 상황이 아직도 후회스럽다. 결과론이지만 그때 조금 더 공격적으로 선수교체를 했어야 했다.

물론 비겨도 이긴 것과 같은 규정으로 인해 급한 건 상대다 보니 10명의 감독 중 9명은 현상유지를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1명은 아마 공격적으로 교체를 했을 건데 내 후회는 바로 그 10명 중 9명이 아닌 1명이 되지 못한 것”이라며 통탄했다. 그래도 역대 최고 성적… 노장의 꿈은

이 감독은 “감독 생활을 15년가량 했는데 올해가 가장 스트레스가 심했다. 감독을 하기 전만 해도 하루에 8시간을 잤는데 올해는 4시간도 못 잔 것 같다. 자다가 일어나서 지난 경기를 복기하다가 쇼파에서 해뜨는 걸 봤다. 약해 보일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충”이라고 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졌지만 이런 치열한 고민과 스트레스 끝에 이룬 안양의 창단 이래 최고 성적이다. 이 감독은 시즌 중반 FC서울 안익수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K리그 22개팀 최고령 감독이었다.

“솔직히 나에게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고 봤지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리고 냉정히 이곳에서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면 내 인생 다시는 프로 감독의 기회는 없을거라 봤다”며 노감독으로서 배수의 진을 쳤던 심정을 토로했다.

내년이면 56세. 사회적으로는 한창 일할 나이다. 그럼에도 K리그에서 ‘노장’ 소리를 듣는 감독에게 ‘꿈’이 없으랴. 이루고 싶은 꿈을 묻자 이 감독은 “이 나이에 ‘꿈’에 대한 질문은 생소하다”며 웃으면서도 담백하면서도 진솔하게 답했다.

“이 나이에 ‘국가대표 감독이 되보겠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아직 제가 K리그2(2부리그) 감독까지만 해봤어요. 저는 스스로 K리그1(1부리그)에서도 제 지도력이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그래서 제 지도력이 어디까지인지 K리그1에서 검증받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안양을 2022시즌 단순히 ‘승격 가능성 있는 팀’이 아닌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팀으로 바꿀 겁니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승격 세리머니를 하고 안양을 이끌고 제 꿈인 K리그1 감독이 되겠습니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