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추절의 대표음식, 포춘쿠키의 유래일 듯

[문화 속 음식이야기] '대지'의 월병이야기
중국 중추절의 대표음식, 포춘쿠키의 유래일 듯

중식 코스 요리에 자주 나오는 후식으로 큼직하고 둥근 중국식 과자 ‘월병(月餠ㆍ 웨이빙)’이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과자로 꼽히는 월병은 마치 쿠키처럼 부드러운 질감에 안에는 팥소나 말린 과일, 견과류가 들어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런데 양이 너무 많은 탓인지, 입가심용으로는 너무 묵직한 맛이어서인지 정작 중국인들은 식사 직후에는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유명 백화점에 중국 과자점이 속속 생겨나면서 월병은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펄 벅의 ‘대지’에도 월병이 등장한다. 중국 화북 지방의 농민 3대의 삶을 그린 이 작품에는 그 자체가 주는 감동 이외에도 ‘파란 눈의 중국인’이라고 불리던 작가가 세심하게 묘사한 청조 말기 중국인들의 풍속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가난한 농부에겐 ‘그림의 월병’

가난한 농부 왕룽은 장가 갈 돈이 없어 마을의 황부자집 몸종 오란을 아내로 맞는다. 마치 물건처럼 노비에서 농사꾼의 아내가 된 오란은 묵묵히 일만 하며 살림을 착실히 꾸려 나간다. 결혼 후 왕룽의 집은 점점 유복해지고 1년이 지난 후에는 아이에게 비단옷까지 입히며 설치레를 하게 된다.

설 음식을 준비하던 오란은 왕룽이 성내에서 사온 라드와 흰 설탕을 쌀가루에 섞어 월병을 만든다. 그 당시에 월병은 황부자집과 같은 대가집이 아니면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것. 왕룽은 아내를 내심 자랑스러워하고 그의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완성된 월병 위에는 산초나무 열매와 푸른 건포도가 장식되어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그러나 과자를 보고 들떠 있는 가족들에게 오란은 냉정하게 말한다. “이 과자는 우리가 먹을 게 아니에요.”라고. “장식이 없는 과자를 한 두개 손님에게 내놓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라드나 흰 설탕을 먹을 처지가 못돼요. 이 과자는 황가의 마나님에게 드리려고 만들었답니다” 이 한마디에 오란이 만든 월병은 더욱 귀한 것이 되고 왕룽은 손님들에게 화려한 월병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른다.

소설 속에 묘사된 것처럼 월병의 주 재료는 라드와 설탕이다. 그러나 소설과는 달리 쌀가루 대신 밀가루가 들어간다. 지역에 따라 월병의 종류는 천차만별이지만 밀가루에 라드, 설탕, 달걀 등을 섞어 반죽해서 껍질을 만들고, 안에 소를 넣은 다음 모양을 만든다는 기본 방식은 같다. 그 위에 나무틀로 각기 독특한 문양을 찍어내고 광택을 내기 위해 달걀 노른자나 물엿 등을 발라 화덕에 구워낸다.

또 한가지 이상한 부분은 이 과자를 설날에 만들었다는 대목이다. 원래 월병은 우리나라의 추석에 해당하는 ‘중추절(中秋節)’에 먹는 과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보름달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으로 만든다.

중국인들은 중추절에 월병과 과일을 놓고 달에게 제사를 지내며 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가족들이 함께 나눠 먹는다. 중추절 이외의 기간에 월병을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광동 지방에서는 특별히 중추절에만 월병을 판매한다고 한다.

생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낸 펄 벅이 월병에 대해 제대로 몰랐다는 것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다른 과자로 착각한 것일까? 중국식 설 음식 중에 쌀가루로 빚은 떡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름은 월병이 아니라 ‘니엔까오’이며 재료에 라드가 들어가지도 않는다.

아니면 혹시 번역상의 오류일까? 영어판 ‘대지’에는 분명 ‘mooncake’라고 나와 있으며 지금도 월병은 영어로 ‘mooncake’라고 불린다.


오란의 소망은 여자의 행복

그 경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가정은 해볼 수 있다. 쿠키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크고 호화스러운 월병은 ‘축제’라는 이미지를 살리는 장치이다. 아마도 독자의 대부분이었을 미국인들에게 쉽게 와닿게 하기 위해 그들이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굽는 것처럼 중국인들이 가장 큰 명절인 설날에 월병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월병을 먹는 중추절의 분위기는 설날만큼 떠들썩하지 않다.)

월병은 작품 속에서 오란의 위치를 설명해 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정작 과자를 만든 오란은 자신이 먹지 않고 황부자집의 마님에게 선물로 바친다. 부자집 노비로 있을 때는 매일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결혼 이후에도 그녀는 집안을 일으키고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를 외면하고 첩을 들인다. 오란이라는 인물이 나타내는 것은 바로 서구인인 작가가 바라본 동양 사회의 어머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딸에게 전족을 해주며 “너도 발이 크면 나처럼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전해들은 왕룽은 “오란을 때린 일도 없고 용돈도 달라는 대로 주었다”며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오란이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왕룽은 그녀가 죽고 난 다음에야 깨닫게 된다.

오래 전, 고이 간직하던 진주를 빼앗아 첩에게 주었던 일이 기억난 것이다. 오란이 간절히 바라던 한 가지는 여성으로서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남에게 주기 위해 만들었던 과자처럼 오란은 남은 삶을 끝내 자신의 것으로 누리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민족ㆍ지방에 따라 다양한 종류

월병은 현대 중국에 와서는 비교적 대중적인 과자가 되어 있다. 그 기원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몽고에 저항하던 한족 군대가 거사 소식을 담은 쪽지를 월병 속에 숨겨 주고 받았다는 야사이다. 서양의 중국 식당에서만 볼 수 있는 ‘포춘 쿠키’는 아마 여기에서 착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복잡한 민족 구성과 지방색 만큼이나 월병 역시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크게 보면 산지에 따라 북경, 천진, 광주, 소주, 조주 등으로 나눠진다. 속 재료로는 팥이 가장 흔하지만 호두, 잣, 해바라기 씨 등 각종 견과류와 연밥, 말린 과일 등도 자주 쓰인다. 남부 지방에서는 코코넛, 파인애플과 같은 열대 과일이 들어가기도 한다.

월병은 ‘과자’로만 알려져 있으나 중국식 햄이나 고기가 들어가 식사용으로 먹는 경우도 있다. 중국 여행을 할 일이 있을 때 다양한 월병을 맛보려면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그 중에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도 상당수 있기 때문. 구입하기 전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물어보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이제는 중국에서도 월병을 직접 만들어 먹는 가정은 드물다. 중추절이 돌아오면 유명 제과점들이 월병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것은 개방 이후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대지’에서처럼 온 가족이 모여 과자를 만드는 낭만은 사라졌지만 펄 벅이 묘사했던 명절의 따뜻함과 들뜬 모습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남아있는 듯 하다.

입력시간 : 2003-10-0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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